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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범국민연대와 야권연합추진특위 1차회의'에서 위원장을 맡은 이인영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주주의 민생복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범국민연대와 야권연합추진특위 1차회의'에서 위원장을 맡은 이인영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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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새벽 방송된 '무상복지'를 주제로 한 SBS <시사토론>을 뒤늦게 다시 보고는 한숨만 나온다. 보편적 복지의 확충을 두고 "무책임한 포퓰리즘", "나라 망하는 길"이라는 한나라당 측의 공세에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 중"이란 등의 수세적인 반응 밖에는 내세우지 못하는 민주당 측 논리. 더욱이 재원마련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 "국민들의 부담이 덜 가는 수준에서 모색해 보겠다"는 투의 지극히 소극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며, 보편적 복지체제의 확립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답답함만 쌓여갔다.   

아마 대부분의 민주당 쪽 사람들이 아직까진 이런 식이지 않을까 싶다. 무상의료·보육, 반값 등록금 등 대단해 보이는 몇몇 정책을 구호로 내세우긴 했지만, 당내에서조차 "재원마련에 대한 구체성이 없다", "속도조절해야 한다"는 식의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 구호를 꺼내들고 '동물의 왕국'을 넘어 복지국가의 길로 가겠단 지향을 밝혔다면 저렇게 순진하게 반응해선 안 되지 않을까.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건, 지금껏 취해왔던 성장일변도의 사회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겠다는 뜻이다.

관성에 젖은 '현실론'을 넘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라면 "앞뒤 볼 것 없이 색연필 들고 쫙 그어 버리겠"단 각오 정도는 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자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세금복지? 재정파탄? 이런 공세를 기다렸다는 듯 되받아치며, 부자감세철회는 물론 과감한 재원마련방안 등을 설파해 나가야만 반격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벌써 7년여가 지난 민주노동당의 "부자에겐 세금을, 서민에겐 복지를"이란 2004년 총선구호가, 2011년 민주당의 어정쩡한 태도보다는 백배천배 낫다. 

팍팍한 서민들 삶... 악의적 공세 참을 만큼 한가하지 않아

복지의 혁명적 확충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평균적인 서울 노동자가 집을 하나 얻으려면 12년 이상의 월급을 한 푼 쓰지 않고 모아야 가까스로 가능하다. 그래서 집 마련에 있어서도 부모 능력이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상황이 강화되고 있다. 연간 1000만 원에 달하는 초고액 등록금은 곧 학자금 대출로 연결돼 젊은이들에게까지 '빚 권하는 사회'가 됐다. 이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2만5000명을 넘어섰다.

청년고용율은 IMF 때보다도 낮은 사상최소치인 40.3%(2010년)를 기록해, 극도로 악화된 노동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젊은이들의 결혼을 늦추고,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 인간의 종족보존 본능까지 사회환경에 의해 제약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만 것이다.

초혼연령상승과 더불어 양육비, 사교육비 걱정 등으로 '출산파업'은 날로 심해져, 2009년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떨어졌다. 이는 세계 186개국 중 184위에 속하는 정말 심각한 수치다. 조선시대 농민들도 애 키우기 힘들어서 억지로 애를 안 낳진 않았을 텐데,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와 '문명인'을 자처하며 힘겹게 생존투쟁하는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르신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한 명 정도의 노인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 노인빈곤율(45.1%)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 중이다. 더 심각한 것은 양극화 심화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의 증가다. 상대적 빈곤율뿐 아니라 양극화 심화를 나타내는 5분위배율, 지니계수 등은 해마다 수치가 상승하고 있다. 반면 중산층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복지병'은커녕, 복지가 없어서 많은 사회적인 비용증가와 갈등증폭을 우려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경제적'으로 봐도, 위와 같은 생계부담에 짓눌려 수요가 억제되고, 경제가 활력을 잃어 버린 게 우리의 현주소다.   

갈 때까지 간 이런 상황에서 "망국 포퓰리즘", "무차별 퍼주기"란 식의 매도와 "파이를 좀 더 키워야 복지가 가능하다"는 아마도 영원토록 재방송될 이 주장에 대해 우리는 단호히 거부의사를 밝혀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점잖은 그들'이 그런 몰상식적 발언이나 일삼는 걸 들으며 기다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호는 요란했으나 결국 수세에 몰린 일본 민주당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안을 거부하고 의회 출석 거부 등 마찰을 빚어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후 시청 브리핑실에서 전면무상급식안(서울시의회)과 순차적·단계적 무상급식안(서울시)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시의회에 공식 제안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의회에서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안을 거부하고 의회 출석 거부 등 마찰을 빚어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후 시청 브리핑실에서 전면무상급식안(서울시의회)과 순차적·단계적 무상급식안(서울시)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시의회에 공식 제안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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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친복지'세력을 자처하는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구호만 요란하고 실현방법이나 의지는 소극적이거나 수세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일본 민주당을 보라. 집권 전 아동수당 신설, 고교수업료 무상화 등의 획기적인 복지정책을 내놨다가 지금은 완전히 후퇴한 얘기만을 하고 있는데, 한국 민주당도 마찬가지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 하는 소리다.

집권 전 일본 민주당은 부유층 증세와 같은 적극적인 대처보다 "낭비성 예산을 줄여 시행하겠다"는, 지금의 한국 민주당과 흡사한 소극적 주장으로 일관했다. 결국 얼마 되지도 않아 "정권 교체를 위해 요구한 사업 및 예산 중 필요성이 낮은 건 삭감, 폐지한다"며 전면후퇴를 선언하기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적당한 선에서 편하게 이뤄보려는 안이함을 벗고, 대대적인 전환을 요하는 적극적인 실현의지를 표명하는 게 주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선 크게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건, 철지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계급적 시각'이다.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면, 분명 지금보다 불편해질 소수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혜택을 보게 될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로 명확히 구분된다.

복지국가의 형성은 적당히 강자들에게 허리 굽히고 도움을 청해서 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의 힘이 셌던 유럽은 물론이고, 폴 크루그먼의 표현대로라면 '대압착 시대'를 열었던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경우에도 루스벨트 대통령이 막대한 부를 '범죄'인양 취급하며 전쟁하듯 기득권과 맞섰기 때문에 복지확충을 이뤄낼 수 있었다. 크루그먼은 "당시 뉴딜정책 지지자들은 계급투쟁이라는 단어 사용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며 "요즘의 진보주의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예의바른지 새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독일 비스마르크 정부 사례처럼, 복지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수진영에게 이용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극렬했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권세력은 이를 무마하기 위한 측면에서 '복지카드'를 꺼내든 것이었다. 아무런 저항이나 요구가 없는데 대뜸 복지가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보편적 복지를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으로 다 좋다고 주장하는 건 허구다. 누군가는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양보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민간보험사 등의 금융자본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편적 복지실현은 관료, 재계, 언론 등 우리사회의 막강한 주류집단과 대격돌을 피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대장정이다. 이를 부담스러워하며 회피해서는 결코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없다. 

재원마련 청사진 없는 복지구호, 부메랑 될 가능성 커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안 처리에 항의하며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개장식에 참석한 가운데, 서울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오세훈 시장이 직무를 거부하고 친환경무상급식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며 오 시장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안 처리에 항의하며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개장식에 참석한 가운데, 서울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오세훈 시장이 직무를 거부하고 친환경무상급식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며 오 시장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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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재원조달방식의 과감성과 명확성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 하에서 세금 제대로 걷고 잘 쓰는 조세정의를 이룩하는 건 기본이다. 나아가 누진적 증세, 혹은 사회복지목적세 등의 추가적인 세수확대 방안을 충분히 논의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왜소한 우리의 복지재정규모에서 적극적인 돌파를 회피한 채, "국민 부담 없이 하겠다"는 등의 무마하는 수사로 일관하는 건 보편적 복지를 위한 토대마련을 하지 않겠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사회복장부담률)의 경우, 우리는 OECD 최하위권인 GDP의 25.6% 인데 반해, 북유럽의 경우 덴마크 48.2%, 스웨덴 46.4%나 되고, 주요 유럽국들도 모두 40%를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현재의 턱없이 부족한 부담수준 가지고는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복지를 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불량한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강화에 더해 누진적 증세, 사회보장기여금 인상 등을 통해 국민부담률을 북유럽까지는 못하더라도 OECD 평균 정도는 목표로 해,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우선순위에 따라 현재의 재원을 제대로 걷고 잘 활용해 복지를 늘리겠단 주장을 선행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그런 '현실적'인 소극적 대처 말고, 적극적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SBS 토론을 보며 느낀 거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코 보수진영의 '세금복지', '부자복지'라는 공세에 자신 있게 맞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인당 월평균 12만 원의 민간의료보험료를 내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료를 1만1천 원 더 내 보장성 90%를 이룩하자는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이 대표적인 적극대응의 사례다. 의료비 지출은 세계 1위면서 국민들이 받는 전반적인 의료서비스는 형편없는 미국의 시장적 의료체계가 말해주듯, 연금, 의료, 교육, 보육 등의 공공적 성격이 강한 서비스는 시장보다 공적인 수단으로 제공하는 게 훨씬 정의로울 뿐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하다. 보편적 복지를 구호로 내세웠다면, 이런 점을 공세적으로 설파해가야만 실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세적 대응과 회피 넘어 적극적 복지공세 펼쳐야

지난해 5월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유럽 복지국가 67% vs. 미국식 신자유주의 사회 24.2%', '세금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 복지혜택을 72.1% vs.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복지를 22.7%'로 나타났다. 물론 이 수치가 절대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관에서 6년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 비해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월등이 늘었다는 걸 보면, 지금과 같은 정글식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염증과 대안사회에 대한 열망이 우리사회에서도 무르익고 있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단순히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롱금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과 대안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피력해야 한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살펴보듯, 분위기와 토양은 그리 나쁘지 않다. 이제는 '포퓰리즘' 운운에 대한 수세적인 대응과 회피를 넘어, 적극적인 복지공세를 펼칠 시점이다.


태그:#무상복지, #보편적 복지, #무상급식, #복지국가, #무상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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