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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외래약제비 차등인상안을 의결했다. 이번 의결이 시행되면 의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부담해야하는 외래 약제비는 두 배 가량 차이가 날 전망이다. 하지만 중증환자의 대형종합병원 외래 약값 또한 이번 인상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기존의 대형종합병원(대학병원)들 보건복지부가 외래약제비 차등인상안을 의결했다. 이번 의결이 시행되면 의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부담해야하는 외래 약제비는 두 배 가량 차이가 날 전망이다. 하지만 중증환자의 대형종합병원 외래 약값 또한 이번 인상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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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제도개선소위원회를 열고 '대형병원 경증환자 집중화 완화대책'의 일환으로 의료기관 종별 외래 약제비 차등화 방안을 의결했다.

대책의 골자는 환자의 외래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의료기관 종별로 차등 인상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모든 의료기관에서 동일하게 30%로 적용되던 환자의 외래 약제비 본인부담비율이 의원은 30%로 현행 유지되지만, 병원은 40%, 종합병원은 50%, 상급종합병원은 60%로 각각 인상된다.

감기 같은 경증 질환으로도 쉽게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일부 환자들로 인해 정작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환자들이 기회를 놓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의료서비스의 효율성면을 놓고 보자면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집중화는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방법'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복지부의 방침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면서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먼저 이번 대책이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집중화를 완전히 해소할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환자가 부담할 약제비가 60%로 인상된 상황에서도 지불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금전적 부담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2009년 7월에 상급 종합병원의 외래 진료비를 올렸었던 전례가 있다. 이후 당국에서 내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인상 후, 소폭 둔화되기는 하였으나 경증 환자의 내원 증가율이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으로 볼 때, 환자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중인 의대생 윤아무개씨(26, 여)는 "현재 대학병원에는 1차 진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도 무방한 경증 환자들이 많이 오고 있다. 환자들은 돈을 더 내더라도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고, 병원들이 이런 환자들까지 받고 있는 이유는 중증질환만 받으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말로 개선을 원한다면, 환자에게 10%씩 약제비를 올려 받는 것보다 중증환자 1인당 대학병원에 얼마씩을 지원하는 등, 대학병원을 중증환자 전문병원으로 만들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의료기관 접근권이 제한될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당국의 새 방안에 의하면, 인상된 약제비를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중병이라 해도 하급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 쏠림 해결책,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서 찾아야"

이것은 한 백혈병 환자가 보내준 상위 종합병원 영수증 중 일부다. 영수증에는 4개월 간의 병원 치료비용들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사진에 표시한 비급여 항목이 바로 이번 시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최대 두 배로 오르게 될 약제비 항목. 본 기사의 인터뷰이인 이씨의 경우 백혈병 이외의 합병증 약값이 5만 원이었지만, 합병증이 많은 다른 환자의 경우 두 배 인상안으로 지게 될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욱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 상위 종합병원의 외래 영수증 이것은 한 백혈병 환자가 보내준 상위 종합병원 영수증 중 일부다. 영수증에는 4개월 간의 병원 치료비용들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사진에 표시한 비급여 항목이 바로 이번 시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최대 두 배로 오르게 될 약제비 항목. 본 기사의 인터뷰이인 이씨의 경우 백혈병 이외의 합병증 약값이 5만 원이었지만, 합병증이 많은 다른 환자의 경우 두 배 인상안으로 지게 될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욱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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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당초 다빈도 50개 경증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계획이 중증질환자를 포함한 모든 환자로 확대된 것이다. 또 처음부터 3차 상급 종합병원에 간 환자와, 1차 의료기관인 의원을 거쳐 3차 의료기관인 상급 종합병원에 간 환자의 약제비 부담 비율을 60%로 동일하게 책정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형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당국의 이 같은 결정은 환자들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수원에 사는 박아무개씨(26, 남)는 "몸이 아픈데도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좋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며 새 방안에 대한 우려를 보였다.

중증환자들의 경우 1차 진료기관인 의원에서 진료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존재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일부 중증 질병 환자의 경우, 의원에 합병증 치료를 위해 내원하면 상급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원 내에 안전한 치료 장비의 부재 또는 중증질환자를 치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를 염려해서 벌어지는 일로, 이 경우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상위 의료기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듯 동네 의원에서의 환자 떠넘김 현상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어떤 대안도 없이 이번 인상안을 시행한다는 것은 자칫 일부 중증환자의 불편과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백혈병 환자인 이아무개씨(39, 여)는 "중증질환자에 속하지만 합병증으로 내원할 경우 현재도 30%에 해당하는 약제비를 부담한다"며 "가벼운 질병 때문에 동네 의원을 가도 백혈병 환자임을 숨기지 않는 이상 돌아오는 대답은 인근 대학병원을 찾아가서 진료 받으라는 소리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대형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약제비 부담마저 올리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대학병원의 환자쏠림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으로 주치의제도를 꼽기도 한다. 주치의제도를 통해 동네 의원을 환자가 믿고 찾아갈 수 있도록 동네 의원들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자는 대안이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이번 개정안의 문제는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환자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환자들이 동네의원의 의료서비스 질에 만족 못하고 있고, 의원 또한 부담스러운 환자들은 대학병원으로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의 이번 시책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안"이라고 비판했다. 해법을 환자에게서가 아니라 환자들이 믿고 신뢰할만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주현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이번 방안의 취지는 감기 등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며 아직 확정안은 아니다. 각계의 반응을 들어 재심의를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공인혜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약제비 본인부담비율 인상 , #보건복지부, #대형병원, #중증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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