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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빨리 일터가 정상화 되도록 학교측은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일터가 정상화 되도록 학교측은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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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화) 방학 중인 아들(15세)에게 홍익대학교로 '체험학습' 가자며 어른들께 갖다드릴 김장김치를 등산배낭에 담았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홍익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 줬더니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이다. 하긴 하루아침에 청소·경비 노동자를 해고했으니, 아들인들 수긍이 가겠는가. 눈발이 휘날리는 홍익대 정문 옆에는 경찰기동대 버스가 차도를 막고 있어서 주위를 지나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하듯 지나갔다.

"밥값 300원? 떡꼬치 한개 값인데 뭘 먹어"

문헌관 복도에서 생활하는 청소 경비 노조원들
 문헌관 복도에서 생활하는 청소 경비 노조원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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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홍익'이란 말이 단군신화의 인간을 존중해라 뭐 그런 뜻 아닌가?"
"맞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 학교 이름에 담겨 있지."
"근데 밥값이 300원이라고? 이건 장난하는 거지, 말도 안 돼. 300원으로 뭘 먹으라는 거야? (초등) 학교 문방구에서 파는 젤리 3개 아니면 분식점의 떡꼬치 한 개 값인데. 헐~~"

아들도 어이없고 황당해 하는 한끼 밥값 300원. 시쳇말로 껌 값도 안되는 300원에 대해서 아빠인 나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어 보고서야 노동자들이 있는 문헌관으로 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기물통에서 끓고 있는 생강차 향이 마치 찻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붉은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감기 예방를 예방하기 위해 생강차를 끓였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비정규직 없애는 법을 만들면 되잖아?"

아들 또래로 보이는 몇 명의 여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금세 눈물을 쏟을것처럼 훌쩍이자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성이 어깨를 토닥거리며 안아주었다. 나와 아들을 본 아주머니는 촉촉해진 눈을 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 한잔 하라며 컵을 건넸다.

"고생 많으십니다. 어른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아들과 함께 왔습니다."

김치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김치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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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건네는 나와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아주머니께 김치를 드렸더니, 고맙다며 후원 방명록에 서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곧 복직하실 겁니다'라고 적었다.

여기에 있는 청소·경비 노동자분들은 주간에는 모두 함께 있다가 야간에만 교대로 하루씩 집에 갔다가 온다고 한다. 맨바닥에 종이박스나 은박매트리스를 깔고 지내기에는 연세들이 많아 보인다.

아들은 낯선 풍경에 약간 긴장된 얼굴로 대자보를 읽어보거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내게 물었다. 친할머니가 대학교에서 정규직으로 청소일을 하다가 IMF 이후 비정규직 제도가 생겨서 쫒겨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의 비정규직제도의 문제점등을 설명해 줬다.

"아빠, 비정규직을 없애는 법을 만들면 되잖아? 한나라당이 여당이라서 안되는 건가?"
"비정규직법은 민주당이 집권할 때도 있었지만 없애지는 못하고 개선하는 시늉만 했지."
"그럼 한나라당하고 민주당하고 똑같네. 차이점이 뭐야?"
"음... 차이점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럼 좋은 놈은 누구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들어봤냐? 그들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데 그 정당들의 정책에는 비정규직을 없애는 정책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국회 의석 수가 몇 개 안 되서 법안을 통과시킬 힘이 없지."

밥값 300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밥값 300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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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지지방문... 홍익대는 대화 나서야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낮은 투표율, 언론의 문제점 등 아들과 한참을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고 있는 아주머니 한분께 인사를 했다. 홍익대에서 5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다는 서복덕(57)씨는 '선복직 후협상'도 할 수 있는데 학교측이 무반응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알아서 주겠지 했는데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었어요. 같은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일한 00여대에서는 더 많이 줬더라고요.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최저임금에서 조금 더 올려 달라는 것이고, 그것도 안 되면 협상으로 풀어보자고 하는데도 대화를 안해요. 아무래도 노조 만든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170여 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복직을 바라는 여론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홍익대 이사장이 피해다닌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시간 끌기식으로 버티면 제 풀에 꺾일 거라는 착각은 학교 이미지와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문헌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성금과 물품을 전달하려는 따뜻한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태그:#홍익대학교, #비정규직, #문헌관, #300원, #생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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