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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타는 게 좋아서 시작한 배달일. 20대 중반까지 배달일을 하면 쪽팔려서 안 된단다. 새해 소망은 "사고 안 나는 것". 사진은 영화 <비트>의 한 장면.
 오토바이 타는 게 좋아서 시작한 배달일. 20대 중반까지 배달일을 하면 쪽팔려서 안 된단다. 새해 소망은 "사고 안 나는 것". 사진은 영화 <비트>의 한 장면.

차윤석(20·가명)씨가 배달 일을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다. 그쯤에 오토바이 타는 게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토바이도 타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피자집, 치킨집, 중국집…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이제 관둘 거예요."

'배달업계'에서 스무 살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대개 윤석씨처럼 중고교 시절에 처음 오토바이를 접하며 일을 시작하고 군대에 가면서 일을 그만둔다. 4년째 배달 일을 하고 있는 김진표(21·가명)씨는 "나이가 많아서 창피하다"고 말했다.

"스물 둘 셋쯤 먹고도 이 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제 나이도 많죠. 스물한 살인데 아직도 오토바이 타고 있으면 창피해요. 어린애들이나 하는 건데... 군대 갔다 오면 다른 일 해야죠."

그는 "빨리 군대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뭘 하려 해도 군대가 걸린다. 갔다 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는 4월로 입대 날짜도 받아 놨다.

"친구들은 벌써 다 들어가 있어서 외로워요."

위태로운 도로 위의 삶... "그래도 이 일이 편해요"

누군가 오토바이를 두고 '과부 제조기'라 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단 두 개의 바퀴만으로 위태롭게 도로를 질주한다.

"아찔한 순간이 많죠. 차가 비상등 안 켜고 막 들어온다든지... 사고 나면 어떻게 될까, 무섭죠."

배달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5000원 정도. 가게에 따라 이보다 더 주는 곳도 있다. 홀서빙이나 단순 노무직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편이지만 '위험수당'이 포함됐다고 생각하면 짠 편이다. 그런데 왜 이 일을 계속 하는 걸까.

"어릴 땐 오토바이 타고 놀고 이런 게 재밌으니까 했죠. 돈도 많이 벌고. 나이 먹으면서는 좀 짜증나죠. 막 다치고."

유명 피자 프랜차이즈 점포 앞에 세워진 배달 오토바이
 유명 피자 프랜차이즈 점포 앞에 세워진 배달 오토바이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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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 넘어져서 찰과상을 입는 정도의 자잘한 사고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윤석씨도 뼈가 부러져서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배달 일을 계속 하는 건 "익숙해서"라고 진표씨는 말했다.

"갖다 주고 오면 그냥 끝이고. 다른 것보단 편한 거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표씨는 아예 월급제 직원으로 치킨집에서 일하고 있다. 일은 편하다. 종일 서 있을 필요도 없고,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가게에서 TV를 보며 쉬기도 한다. 사장님이 젊은 분이라 말이 잘 통한다. 심적으로도 부담이 덜하다.

"어릴 때부터 배달만 해와서 다른 일 한다고 생각하면 겁부터 나요, 어려울 것 같고"라는 진표씨도 다른 일을 시도해 본 적이 있기는 하다. 대형 인터넷서점의 물류창고에서 책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2주 만에 그만뒀어요. 못 해먹겠더라고요."

일주일 5일, 하루 13시간씩 오토바이를 탄다

동네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박정진(19)씨는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뒀다. 노는 게 더 좋아서 그랬다. 부모님은 처음엔 잔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간섭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5일, 하루 13시간 동안 피자 배달을 한다. 가게는 새벽 0시면 닫지만 돈 계산을 하고 나면 1시가 다 돼서 집에 도착한다. 가게는 늘 바쁘다. 배달 알바생이 셋이나 있지만 늘 주문이 밀린다. 몸은 피곤하지만 가족 같은 가게 분위기가 즐거워서 계속 일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섣달 그믐에도 일을 했다. 피자가게에서 연말연시의 공휴일은 대목이다. 누군가의 휴일이 즐겁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 아주 바빠야 한다.

모두들 흥청망청하는 때에 못 놀아서 "섭섭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일 끝나고 놀았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어차피 친구들도 다 일을 해서 특별히 부러울 사람도, 아쉬울 것도 없었단다.

일하기 싫을 때는 없을까. "눈 오고 추울 때는 하기 싫죠. 비 올 때도." 날씨가 궂은 날은 사고 위험이 더욱 높은데, 오히려 그런 날일수록 배달 주문은 더 쏟아진다. 눈비를 뚫고 갔는데 늦게 왔다고 싫어하면 화가 난다. 동네 가게다 보니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하는 '30분 배달제' 같은 것은 없지만 빨리 갖다 줘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늦게 왔다고 마음대로 값을 깎는 경우도 있었어요. 주소 입력이 잘못 돼서 옆 동으로 갔다가 다시 찾아 가느라고 늦었는데, 원래 3만1000원인데 늦었으니까 3만 원만 받으라고 막."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그냥 욕하는 거죠, 사장님하고 둘이서"라고 체념한 듯 웃으며 말하는 정진씨. 그가 일하는 가게는 그나마 인간적인 가게인 듯했다. 일부 악덕 점포의 경우, 30분 안에 배달을 못해 할인해 줘야 하면, 알바생이 그 비용을 물어내기도 한다고.

정진씨는 언젠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지금은 일하는 게 재미있다. 우선 어느 정도 더 일을 하다가 영장이 나오면 군대에 가게 될 것이다. 도로 위의 삶을 살던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새해 소망은... 사고 안 났으면 좋겠어요"

동네 피자가게
 동네 피자가게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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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닥에서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진표씨는 좀 더 철든 소리를 한다. "일단 군대 다녀오고 나면, 기술을 배우든지… 뭐가 됐든 경험을 많이 해 보고 싶어요. 학교도 다니고 싶고." 그는 이미 대학에 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등록금 낼 돈으로 차를 샀어요. 차가 되게 갖고 싶었거든요." 머쓱하게 웃는다.

진표씨 부모님도 처음엔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었다. 어차피 집에서 용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서로 눈치를 볼 일은 별로 없다.

"어릴 때는 막 가방이나 신발 같은 거 비싼 것도 사고 싶고 그러니까 한 거죠. 부모님이 다 충족을 안 해주니까. 그래서 남들은 못 사는 거, 50만 원짜리도 막 사고 그러면 좋았고."

대학교 3학년, 스물두 살인 나에겐 갓 스물이 된 남동생이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원서접수를 하고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동생은 아직 한 번도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스무 살 된 게 끔찍해." 새해가 되자 동생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된 게 두려워서, 계속 고등학생이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동생에게 새해 소망이 뭐냐고 물어봤다. 냉큼 얼굴에 웃음이 가득 고였다. "장학금 타서 하루만에 애들이랑 술 먹는 걸로 다 쓰기? ㅋㅋㅋ 아님, 술 먹고 놀다가 F만 안 맞는 거?"

내 동생 같은 친구들. 그러나 조금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이 청년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새해 소망 있어요?"
"사고 안 났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청년 노동의 질 향상을 통해 청년층의 더 나은 삶을 도모하는 청년 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는 지난 12월 '30분 배달제'의 중단을 촉구하는 첫 기자회견 이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의 노동에 꾸준히 주목하고 있다. cafe.daum.net/alabor @union1030



태그:#피자배달, #30분배달제, #배달알바,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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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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