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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지지도 박근혜 32% 독주'
'박근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32% 1위'
'차기 대선 후보 박근혜 32% `압도적 1위''

공동조사·발표 위력이 세긴 세다. 한 지역도 아닌 서로 다른 9개 지역 일간지들이 일제히 같은 내용을 벽두 의제로 올렸다. 1면 또는 특집면 제목과 레이아웃도 비슷하다. 시무식과 함께 새해 업무가 시작되는 3일자 1면 머리기사와 3, 4, 5면 등에 특집기사로 일제히 다뤄졌다.

온통 '박근혜'와 '한나라당'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년을 맞아 언론이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뉴스를 창조하는 것인지, 가치 있는 의제를 뉴스거리로 보도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의제설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대목들도 읽힌다.

당장 구제역 파문으로 전국 농가가 비상이다. 또 한해를 넘기기 직전, 정부는 보수 언론사에게만 방송채널 사업권이라는 특혜성 선물을 안겨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게다가 연말 단행한 청와대 기습 개각은 '회전문 인사', '꼼수 정치'란 싸늘한 시선이 아직 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발표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전화여론조사 결과 9개 지역 일간지 한날 동시 보도

<광주일보> 3일자 1면.
 <광주일보> 3일자 1면.
ⓒ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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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한신협)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16개 광역시·도 지역 주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 조사결과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32%로 1위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주된 이슈다.

회원사인 9개 일간지들이 3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서로 공유된 의제를 같은 날 지면에 반영한 것이다. 신문사 내부 게이트키핑 구조상 서로 의논하여 합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렇게 맞출 순 없다. '의제담합'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2년 후 대선을 겨냥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미 굳어진 듯하다. '부동', '독주', '압도적'이란 수식어에서부터 읽힌다. 박 전 대표에 이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7.8%, 오세훈 서울시장 7.2%,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각각 6.6%, 김문수 경기도지사 6.4%,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3.3% 순으로 나타나 1위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이들 전국 9개 지역 일간지들은 <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등이다. 한신협은 "2011년 신묘년 새해를 맞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과 차기 대선·총선 등에 대한 국민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역별 인구비례 할당 등을 통해 선정한 3000명을 대상으로 사흘간 일대일 전화면접 조사결과를 벌였다"고 밝혔다.

지역현안들도 함께 조사했지만, 전국 여론조사 응답률이 18.0%(표본오차 ±1.8%)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현저히 낮다. 게다가 시점도 좋지 않다. 정부가 허가해 준 종편과 보도채널 사업자가 보수언론 일색이어서 여론 독과점과 지역 미디어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는 가운데 자칭 '지역 대표 언론사'를 표방해 온 지역신문사들이 발등의 불 대신 먼 대선만을 바라보는 느낌을 주었으니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하다.

<동아일보>, <연합뉴스>와 손잡은 지역신문들 벽두 한목소리 

<매일신문>이 3일 보도한 신년여론조사 결과.
 <매일신문>이 3일 보도한 신년여론조사 결과.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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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부 지역신문들은 "우리도 종편에 참여하게 됐다"며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전일보>와 <매일신문>은 이날 1면에 '대전일보·동아일보 종편 공동제작', '매일신문 참여 채널에이 종편 선정'이란 각각의 제목과 함께 종편 참여에 대한 기대와 의미 등이 담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이들 두 신문 외에도 이미 지난해 한신협은 <동아일보>․<연합뉴스>와 손을 잡고 종편 및 보도채널 사업 협력을 하기로 양해각서 등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신년여론조사를 동시에 내놓아 어리둥절하게 했다.

<부산일보>는 "박 전 대표가 지난해 30%의 '벽'에 막혀 고전한 것을 감안하면 본격적으로 상승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여기에는 박 전 대표가 지난해 말 '한국형 생활복지'라는 정책 발표로 이슈를 선점하면서 준비된 대선주자라는 점이 부각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당 지지도에서는 한나라당이 35.1%로 가장 높았고, 민주당 23.8%, 국민참여당 7.0%, 민주노동당 4.9%, 자유선진당 2.5% 순이었다"고 지역신문들은 보도했다.

이번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전 연령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적합도가 가장 높게 나온 연령대는 50대 이상(43.0%), 가장 낮은 연령대는 30대 이상(22.6%)이었다. 지역별로는 광주(14.3%)와 전남(10.8%)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였다. 경기(22.1%)지역의 적합도도 비교적 낮았다. 반면 경북(55.6%)에서는 적합도가 절반을 넘었고, 인천, 부산, 대구, 강원의 적합도도 40%를 넘어섰다.

전화여론조사 표본, 문항, 응답률 제대로 보면 신뢰도 낮고 외생변수 많아

<부산일보>가 3일 내보낸 신년 여론조사 결과.
 <부산일보>가 3일 내보낸 신년 여론조사 결과.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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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에게 신년 스포트라이트 공세를 가하기는 다른 언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문화일보> 등 신문사 4곳과 MBC와 KBS 등 방송사 2곳에서 새해를 맞아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에서 높게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MBC 조사에서 42.3%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다른 주자들을 압도했고, <한겨레>(37.5%), <문화일보>(35.3%), KBS(34.6%), <한국일보>(33.5%), <서울신문>(29.8%)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MBC 조사에선 박 전 대표에 이어 유시민 전 장관 8.3%, 오세훈 서울시장 7.4%, 손학규 민주당 대표 5.8%, 김문수 경기도지사 5.6% 순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한겨레> 전화 여론조사에선 37.5%의 지지도를 기록해 2위 유시민 전 장관(7.1%), 3위 오세훈 시장(6.7%)을 30% 포인트 이상 앞질렀다. 언론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군에 넣은 <서울신문>과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선 박 전 대표 29.8%, 반 사무총장 12.2%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대부분 전화조사 방법을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는 응답률 저조가 낮은 신뢰도로 이어질 수 있다. 대선후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발생하게 될 외생변수가 가장 큰 관건이다. 게다가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유난히 응답률이 낮고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르겠다는 부동층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응답을 한 사람 중에서도 그냥 한 번이라도 귀에 익은 이름을 택하거나,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선택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ARS 전화조사의 성공응답률이 저조한 경우, 조사 결과가 특정 집단의 의견에 많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여론조사 시간대에 가정에서 전화 받는 대부분의 사람은 가정주부들이라 전체 의견을 반영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비밀투표의 심리상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않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표본에서 처음부터 제외된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전화여론조사는 못 믿을 여론조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화여론조사가 바닥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여론조작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정치', '정치 여론조사' 경계해야 하는 까닭

신뢰도를 의심하게 하는 낮은 응답률은 선거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됐다. 여론조사 기본 전제는 응답자와 무응답자 정치성향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또 무응답층 가운데 의도적으로 응답을 꺼리는 이들이 있다면 조사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느 한쪽에 유리한 여론조사 환경에서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쏟아진다면 바닥민심과 무관한 '대세론'이 형성될 수 있다. 밴드왜건(bandwagon)효과 때문이다. 이는 민심 왜곡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기에 '여론조사 정치' 또는 '정치 여론조사'를 특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권자나 정치권 모두에게 해당된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겪은 직후 '충격'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여론조사 결과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5월 11일 출입기자들에게 "5월 9일 청와대가 자체 조사한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가 51.7%까지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은 "취임 후 최고수준"이라고 평가했지만 지방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참패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뉴스 수용자들의 의식이 과거와는 다르게 '정치 여론조사'에 쉽게 속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결과다. 지방선거가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청와대 주장대로라면,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에 압승을 안겨줬어야 옳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참패'를 겪지 않았던가.

홍준표 의원, "휴대폰 여론조사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 주장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에서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에서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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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러한 신년 여론조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근 "모바일(휴대폰) 여론조사가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잇달아 밝히고 나서 주목을 끈다.

그는 4일 오전 8시 MBC 라디오 최명길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프로그램에서 "한국 여론조사 기관이 흔히 사용하는 전화번호부 여론조사는 전체 유권자를 대표하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바일(휴대폰) 여론조사가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7년 기준으로 전화번호부 등재비율이 57.2%에 불과한데다 집 전화가 없는 유권자는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집 전화 여론조사는 주부, 무직자 등 특정층에 쏠린 '과다 표본'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생활 보호논란에 대해 그는 "사생활 보호문제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강구하면 된다"고 언급해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으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모바일(핸드폰) 여론조사가 과연 가능할지 여부에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릴 만하다.

지역신문들이 공동으로 실시해 발표한 이슈와는 달리 이날 <내일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과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가 이에 대한 관심을 더욱 제고시켰다. "수도권 3040세대와 일반국민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강한 교체 열망을 피력했다"고 전한 신문은 "'총선에서 다음 중 어느 쪽 의견이 우세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수도권 3040세대의 60.3%가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후보 지지'라는 답을 택했다"고 전했다.

"교체바람은 2012년 대선에 대한 조사에서도 재차 확인됐다"는 기사는 "수도권 3040세대의 55.8%는 '야당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한나라당이 한 번 더 집권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33.7%에 그쳤다. 일반국민 조사에서도 '정권교체'(51.6%)가 '재집권'(39.9%)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밴드왜건'·'침묵의 나선' 효과 노리는 '정치꼼수'에 속지 말자

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도 일반국민보다 수도권 3040세대가 훨씬 부정적이었다. 신문은 "일반국민에게서는 '잘한다'(47.0%) '잘못한다'(48.2%)는 평가가 비슷하게 나왔지만, 수도권 3040세대에게서는 '잘못한다'(57.8%)는 평가가 훨씬 높았다.('잘한다' 38.0%)"고 보도했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의 성인남녀 1000명과 수도권 거주 3040세대 630명을 대상으로 했다"고 신문은 밝혔다.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이처럼 질문 문항과 표본, 해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선거철,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악용할 수 있는 '침묵의 나선'·'밴드왜건'효과를 주의해야 한다. '침묵의 나선'은 1966년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이 발표한 이론으로 '하나의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다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의 고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침묵하려 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선거철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며 이를 유도하는 정치인들과 언론사, 여론조사기관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더 있다. '밴드왜건(bandwagon)'효과다. '편승효과'라고도 하는 이것은 1950년대 미국의 하비 레이번슈타인(Harvey Leibenstein)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또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 '너도 따라라'라는 논리로 대중을 설득시킨다는 효과이론이다.

즉 행진할 때 대열의 선두에서 행렬을 이끄는 악대차를 의미하는 '밴드왜건'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유 없이 호기심 때문에 따라가는 심리처럼, 어떤 재화의 수요가 증가하면 사람들이 덩달아 움직이면서 수요가 더욱 증가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에서도 곧잘 적용된다. 특히 선거철, 어김없이 등장하곤 하지만 속아 넘어가는 게 늘 문제다. '밴드왜건'과 '침묵의 나선' 효과를 노리는 '정치꼼수'에 더 이상 속지 말자.


태그:#박근혜, #한신협, #신년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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