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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일출을 본답시고 너무 일찍 산행을 하는 바람에 추위에 벌벌 떤 적이 있습니다. 벌벌 떨며 해를 기다렸건만, 구름만 잔뜩 깔려 결국 해를 보지 못한 채 하산했던 추억이 생생합니다.

 

이번 새해에는 일출 시각을 정확히 알고 해맞이를 보고자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해맞이 명소에 간들 북적거리는 게 싫어서 집에서 가까운 '보문산(대전시 부사동 소재)'에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새해 아침,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니 일곱 시가 넘은 상태였습니다. 부리나케 일어나 차를 몰고 보문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주차 공간이 없어 몇 분간 헤매다가 겨우 주차를 하고 대전지역 해맞이 명소인 보문산성으로 뛰어갔습니다. 

 

오전 7시 42분이 일출 시각인데, 산행 시작을 7시 25분에 했으니 제아무리 가까운 산이라도 불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래도 붉디붉은 일출은 아니더라도 쨍하게 떠오른 태양이라도 보고 싶어 포기하지 않고 뛰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이는 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지만 저처럼 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보문산성까지 30분은 족히 걸리는데, 축지법을 쓰지 않는 한 해맞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를 절반 가량 앞둔 지점에서 해맞이객들이 하산하고 있었습니다. 하산하는 무리 가운데 선두로 보이는 분께 물었습니다.

 

"오늘 일출 어땠습니까?"

"해요? 안 떴어요!"

"왜요?"

"왜라뇨? 구름만 잔뜩 꼈다니까요!"

 

그러자 뒤따르던 아줌마 한 분이 넋두리를 했습니다.

 

"역시 해는 따땃한 안방에서 테레비로 보는 게 최고여~~!"

 

게을러터져서 늦게 오르던 나는 왠지 모를 쾌감에 젖었습니다. 그 쾌감이란 아주 고약한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오른 사람이나 늦게 오르는 사람이나 똑같이 해를 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묘한 만족감이었습니다. 남에게 잘못된 거 은근히 고소해하는 못된 심보였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고약하고 못된 심보를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저보다 부지런한 분들이었습니다. 밀물처럼 내려오는 분들에게 올라가는 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눈길이라서 길도 미끄러운데 나를 피해 내려가느라고 다들 고생한다 싶었습니다.

 

목적지 보문산성에 오르는 동안 일출을 보지 못한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하산했습니다. 목적지에 오르기 전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보였습니다. 그마저 구름 틈으로 삐져나온 어설프고 초라한 햇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담아두기로 했습니다. 산이란 게 초입부터 정상까지 다 산이듯이 해 또한 구름이 있거나 없거나 존재하는 거고 떠올랐다고 믿었습니다.

 

정상에 올라 해맞이를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동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인연 깊은 사람들을 위해 기원했습니다. 지역 언론사에서 해맞이 객을 상대로 새해 소망을 물으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일출은 못 봤지만 새해 소망은 밝았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절간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다 다른 고드름이겠지만, 대충 봐서는 비슷비슷한 고드름을 보며 새해에는 누구나 공정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불탑 아래 동자승 인형들이 눈을 맞으며 웃고 있습니다. 동자승에겐 눈도 이불이 될 수 있듯이, 시련조차 행복으로 치환할 줄 알게 되기를 나 자신에게 빌었습니다. 연통에서 훈훈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우리네 사는 세상에도 훈훈한 일들이 많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새해 첫날, 온종일 지난 한 해 있었던 크고작은 일들을 정리했습니다. 새해에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열정과 사랑으로 제자들을 보듬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난다면 좋겠습니다. 새해 일출을 보지 못했으나 작년 겨울 지리산 종주 때 천왕봉에서 만난 일출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태그:#해맞이, #일출, #보문산, #동자승, #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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