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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신해철 측 "스카이병원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 묻겠다"

 누드비치에서의 망중한.
ⓒ TW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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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년 詩>

시드니 누드비치에서

- 윤필립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먼 길을 떠나지 않는다'

굿 다이, 오스트레일리아!*

하늘은 크낙하고
바다는 게으른 수평이다

텅 비어서 창백한 대기 속에
유령처럼 서있는 유칼립투스 몇 그루

인적 없다
더 이상, 거짓을 늘어놓을 사람이 없다

욕망에 찌든 도시의 옷을 벗고
5억년 묵은 땅에 눕는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보드랍게 안아주는 터의 영(spirit of place)*

느릿느릿 흘러가던 구름이
살근살근 보채는 바람에게 이른다

"오늘을 살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요"

*Good day Australia의 호주 스타일 발음.
*호주 대륙은 약 5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D. H. 로렌스 소설 <캥거루> "모든 대륙은 그 터 고유의 위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Every continent has its own great spirit of place)"에서 인용.
*윤필립(尹筆立)은 윤여문 기자의 필명.

 시드니 지역 누드비치 안내문.
ⓒ NSW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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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맞는 시드니의 새날 새아침은 뜨겁다. 2011년 1월 1일, 기상청이 예보한 시드니의 기온은 섭씨 31도. 하늘까지 쾌청하다고 하니,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새날을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예보에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시드니 일대에 거주하는 자연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가 되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이글거리는 백사장 위에서 새해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누드 비치의 새해맞이!

그러나 호주에서는 '누드 비치'보다는 '누디스트 비치(Nudist Beach)' 또는 '프리 비치(Free Beach)'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것 말고, '자연주의자들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호주 누드 연합회 회원들이 그렇게 부른다.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지난 40년 어간에 10개 가까운 누드비치가 시드니 일대에 생겼다. 비록 시드니가 '물 항(港)'이라고 하지만, 4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큰 도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일이다. 도심에서 불과 20~30분 거리에 누드 비치들이 있는 것.

 바위 뒤에 감춰진 호주의 누드 비치.
ⓒ Australian Nudist Federati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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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해변

오페라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서큘라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대양 쪽으로 가다 보면, 멀리 아름다운 등대가 보이는 왓슨스 베이에 당도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를 연상케 만드는 곳이다.

그뿐이 아니다. 왓슨스 베이는 시드니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 하나뿐이고, 단 한 번뿐인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수십 미터의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

2007년 연말에는 '채널10'의 뉴스 앵커 샤메인 드래건이 생방송 20여 분을 남겨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그녀가 자살한 것. 뉴스를 함께 진행했던 남자 앵커 빌 우드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동료의 죽음을 전해야 했다.

"조금 전까지, 저와 함께 오늘 저녁 뉴스를 준비했던 샤메인이 왓슨스 베이에서 자살했습니다."

샤메인이 바다로 뛰어든 장소는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바로 그곳이다. 같은 장면을 뉴칼레도니아에서도 찍었는데 실제 영화에 사용된 장면은 후자 쪽이었다. 한편 '석양 무렵에 자살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서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샤메인 드래건과 함께 뉴스를 진행했던 빌 우드가 샤메인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다.
ⓒ 채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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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레이디 베이 비치'

이렇듯 빠삐용은 자유를 향해서 뛰어들었고, 샤메인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서 뛰어든 바위 언덕을 산책한 다음, '사우스 헤드 등대' 쪽으로 10여 분쯤 걸어 가다보면 수줍은 여인처럼 숨어있는 작은 백사장을 만나게 된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주의자들의 천국인 '레이디 베이 비치(Lady Bay Beach)'. 1976년 합법적인 누드 비치로 지정된 이곳은, 합법화 과정에서 크게 공헌한 제인의 이름을 따서 '레이디 제인 비치(Lady Jane Beach)'로 불리다가, 1993년 지역주민 투표를 거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레이디 베이 비치 입구.
ⓒ NSW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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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은 '숙녀 만(灣) 비치'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더 많이 찾는다. 명상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들과, 바위에 앉아서 바다 쪽을 향한 명상을 즐기는 남성들이 어울리는데 남성의 숫자가 많은 것.

가족 단위의 누드 족(族)이 많은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자연주의자들의 삶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지향하기 때문에, 벌거벗은 상태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대목이다.

 시드니 레이디 베이 비치.
ⓒ 호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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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토끼들이 '월광욕'을 즐기는 해변

'레이디 베이 비치'는 야생 토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해변 입구부터 등대까지 차량이 다니지 않는 적요(寂寥)한 숲이기 때문에 토끼들이 많이 서식하는 것. 특히 둥근 달이 휘영청 떠있는 밤에는 안개 빛깔의 백사장 위로 수많은 토끼들이 나들이를 나와서 일광욕이 아닌 '월광욕'을 즐긴다.

2011년은 신묘년(辛卯年)으로 토끼의 해다. 언제부턴가, 호주에서도 아시아권 국가들의 십이 간지(奸智)에 의거한 '올해의 동물'을 소개한다. 며칠 전부터 신문방송에서 토끼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토끼가 영민한 동물이라는 소개도 곁들여서.

이렇듯 동서양의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호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2011년은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두 나라 정부는 수교 50주년을 더욱 뜻 깊게 하기 위해서 '한-호 우정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한국과 호주는 전통적으로 순한 동물인 토끼처럼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다. 그런데 2010년은 호랑이해여서 그랬는지,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상태에 준하는 살풍경한 장면이 여러 번 발생했다.

바야흐로 호랑이해가 가고 토끼해가 왔으니, "호랑이 없는 굴에선 토끼가 왕'이라는 속담처럼 토끼를 닮아서 오순도순 지내기를 소망해본다. 시드니 누드 비치의 구름이 바람에게 이른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평화롭게) 사는 토끼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시드니 하버에 나타난 토끼 인형.
ⓒ The Weekly Tim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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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충남 부여 생 1987년 호주로 이민 시인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호주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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