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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KBS <추적 60분>.
 KBS <추적 60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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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류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KBS <추적60분>이 3주 만에 전파를 탔다. 22일 방송된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편을 보면서 "KBS의 '뒷북'에 청와대와 KBS 측이 지레 겁먹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동안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보도에 인색했던 KBS가 밀린 숙제이긴 하지만 심층취재에 나선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날 방영된 내용도 '지나치게 중립적'이라고 할 정도로 찬반 양측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KBS가 반정부 이슈를 왜 다루나"라고 하고, KBS 사측은 두 차례나 결방 시켰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은 정부와 KBS 사측의 '4대강 알레르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삽화일 뿐이다.

'의미' 있지만 '뉴스'는 없었던 <추적60분> 4대강 사업 보도

22일 방송된 <추적60분> 방송화면.
 22일 방송된 <추적60분> 방송화면.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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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이었던 '경상남도와 국토해양부 간의 사업권 회수 논쟁', '대형 보 건설로 인한 농경지 침수문제', '불법 폐기물 매립지 문제', '대규모 준설로 인한 지천의 홍수피해' 등은 수차례 반복돼 왔던 논란들이다.

사업권 회수 논란은 6·2지방선거에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당선된 직후부터 '뜨거운 이슈'였고, 경남 의령과 합천보 일대 농경지 침수와 관련한 주민들의 우려는 1년 가까이 묵은 이야기이다. 또 경남 김해에서 발견된 매립 폐기물 문제는 경상남도와 국토해양부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며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지난여름 집중호우로 경기도 여주군의 신진교가 무너진 것도 벌써 3개월 전 이야기이다.

특히 <추적60분>팀이 국제적인 하천전문가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를 독일까지 찾아가 만나는 장면은 '왔을 때는 뭐하고, 비싼 돈 들여 또 저기까지 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프라이제 박사는 지난 9월 4일 방한해 11일 동안 낙동강과 남한강 일대 4대강 공사현장을 조사했고, 출국 전에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독일 하천 전문가 "홍수 발생�수질 악화될 4대강, 중단해야")

물론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항상 새로운 의혹을 파헤치거나 대단한 특종일 필요는 없다. 사회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재조명해 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일 수 있다. 

<추적60분>이 이번 '4대강' 편에서 거론한 문제들은 사회적 해결이 절박하지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특히 KBS가 그런 문제를 다시 상기시켜 주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또 그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나 취재원들의 멘트를 생생하게 전달한 것은 다른 매체와 비교가 되지 않는 부분으로 그 영향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추적60분>이 '뒷북'으로나마 'KBS가 아직 공영방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족할 수 있다. 

논란의 판 키운 건 청와대와 KBS... "왜 KBS가 반정부 이슈를 다루나?"

KBS 새노조가 14일 공개한 KBS 정치외교부 12월3일자 정보보고 사본.
 KBS 새노조가 14일 공개한 KBS 정치외교부 12월3일자 정보보고 사본.
ⓒ KBS 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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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추적60분> 제작진의 노력도 두 차례나 결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많이 퇴색됐다.

KBS는 지난 8일 처음 불방이 됐을 때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4대강사업위헌·위법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이 국토해양부장관 등을 상대로 낸 '하천공사시행계획 취소소송'(낙동강소송)이 이틀 뒤인 10일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었던 것. 

하지만 <추적60분> 불방과 동시에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 등 새해 예산안과 주요 쟁점이었던 '친수구역개발을 위한 특별법'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KBS가 정부의 외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비판적으로 다룬 보도가 나가면, 날치기 통과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정부가 우려했다는 얘기다.

의혹은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KBS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KBS가 왜 반정부적 이슈를 방송을 하느냐, 수신료 인상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으니 참고하라"고 말한 사실이 담긴 KBS 정치외교부 정보보고가 공개되면서 더욱 커졌다. 

이에 제작진과 KBS 새노조가 크게 반발하자, 사측은 강희중 CP에게 "신변을 정리하라"고 문책하며 사퇴압력을 넣었고,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며 15일 방송도 보류시켰다. 이런 사측의 압력에 KBS PD들은 16일 PD협회 총회를 열고 <추적60>분 결방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청와대 측은 "일반론적인 언급일 뿐이었다", KBS 측은 "현수막을 떼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아 추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을 지우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첫 결방 때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15일 결방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어, 날치기 예산안 처리 이후 불교계의 반발 등 여론이 악화되자 또다시 결방 처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만 짙어졌다.

결국, <추적60분> 제작진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만회하려고 한 데 반해, 사측은 KBS의 공공성과 독립성에 상처만 입힌 꼴이 됐다. KBS 새노조는 이번 사태와 관련 "외압에 의한 굴종과 자기 검열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KBS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PD수첩>과 <추적60분>의 '클로징 멘트'를 보라 

지난 8월 방송된 <PD수첩> '수심6미터의 비밀'편. 한반도 대운화 평명도와 4대강 사업 평면도를 겹쳐 놓은 장면.
 지난 8월 방송된 <PD수첩> '수심6미터의 비밀'편. 한반도 대운화 평명도와 4대강 사업 평면도를 겹쳐 놓은 장면.
ⓒ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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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를 지난 8월 한차례 결방을 겪고 방송된 MBC <PD수첩> '수심6m의 비밀'편과 함께 정부의 '방송장악 의도'라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같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주제로 하지만 두 프로그램의 성격은 달랐다. <PD수첩>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대운하 사업의 연관성을 파헤치며, 청와대가 개입한 '비밀팀' 의혹을 제기한 반면, <추적60>분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얽힌 논란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프로그램이 가진 의미의 경중을 떠나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파급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시민들도 <추적60분>의 방송 내용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추적60분>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 원본을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적잖게 보인다. 그러나 원본의 내용이 방송본과 크게 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제작진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4대강 재판' 결과에 대한 내용이 추가됐을 뿐, 50여 분간의 방송에는 다른 내용이 들어갈 틈이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정부 측의 주장도 충실하게 담겨 있다. 결국 여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방송을, 청와대와 KBS가 '오버'하면서 관심을 키운 꼴이다.

왜 청와대는 "KBS가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느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사측은 명분도 없이 두 차례나 방송을 보류시키면서 외압 의혹을 키웠을까? 정말 의혹이 제기된 대로 '욕을 먹더라도 시간을 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산안 날치기 후폭풍에 대비해 여론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한 '작전'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정부와 KBS가 <PD수첩>을 통한 학습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PD수첩>보고 놀란 가슴, <추적60분>보고 놀라'는 꼴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던 <PD수첩> 보도 때문에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4대강'이란 단어만 들어가도 '알레르기성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비판'하는 내용도 아닌데 청와대 비서관이 "KBS가 왜 반정부적 이슈를 방송하냐"라고 항의한 것을 보면, 그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된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국가적 사업으로, 방송뿐 아니라 언론이라면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주제다. 설령 4대강 사업이 현재 추세로 공사가 끝난다고 해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와 관련한 보도는 계속돼야 한다. 그때마다 또 이 같은 해프닝이 일어나야 할까?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부정적인 보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추적60분>과 <PD수첩>의 사회자 마지막 멘트가 잘 알려주고 있다. 두 프로그램의 결론은 같았다.

"낙동강 소송을 판결한 법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대안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적시했습니다. 국토부와 경남도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추적60분> 강희중 CP)

"현재 정부는 다른 문제는 모르지만 보와 준설문제는 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사업의 기본골격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골격이기 때문에 더 빠른 시일에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에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잘한 것은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입니다." (<PD수첩> 홍상운 PD)


태그:#4대강, #추적60분, #PD수첩, #청와대,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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