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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아침 롯데마트 개점 시간부터 1시간여 기다린 한 고객이 예약한 치킨을 받아가고 있다.
 지난 9일 아침 롯데마트 개점 시간부터 1시간여 기다린 한 고객이 예약한 치킨을 받아가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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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피자'에 이어 롯데마트가 5000원에 팔리는 '통큰치킨'을 내놓으면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시중가격의 약 3분의1 가격에 치킨을 판매하면서 대기업이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올바르냐는 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치킨가게는 별다른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의 마지막 보루격이라는 점에서 문제의식은 더욱 커졌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글을 남겨 우려를 표명한 것을 계기로 롯데마트는 16일 이후 '통큰치킨'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세업자들과 누리꾼들의 비판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롯데마트가 정무수석의 트위터 글 몇 줄로 판매를 중지한 것이 씁쓸하긴 하지만 '통큰치킨' 판매 문제 자체는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열악한 한국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단순히 롯데마트가 치킨판매를 중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대기업이 영세 자영업자의 시장을 잠식해 가는 사태는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영세자영업의 몰락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급속히 감소하는 자영업자

지난 9일 국세청은 지역별·업종별 생활밀접 사업자수를 최초로 공개했다. 2009년 자영사업자 수는 487만4000명으로 자영업자 500만 시대가 목전에 왔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자영사업자) 수는 2006년 446만5357명, 2007년 452만6730명, 2008년 473만114명으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고 조만간 5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자영업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에 비해 국세청의 자료는 이와 반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자료와는 달리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상의 자영업자 수는 2005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에 놓여있다. 15일 통계청의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1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전년동월대비 16만6000명이 감소한 553만1000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국세청 자료와 통계청 자료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자영업자에 대한 기준과 조사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사업자 등록한 자영업자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반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조사대상주간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자영업자를 모두 포함한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는 표본조사). 예를 들어 사업자 등록 없이 트럭을 가지고 과일행상을 하는 경우 통계청 조사에는 포함되지만 국세청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해 본다면, 국세청 조사에서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자영업자들이 누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적인 자영업자들은 감소 추세에 놓여있고, 이는 자영업의 기반이 빠르게 열악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 수 추이 (단위 : 천명)
 자영업자 수 추이 (단위 : 천명)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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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자영업자 추이를 살펴보면 IMF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감소한 자영업자 수는 IMF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대규모 자영업으로 몰리며 2002년까지 그 수가 급속히 늘어난다. 이 당시 김대중 정부의 인위적 소비확대 정책으로 내수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며 자영업자들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인위적 소비확대에 대한 역풍으로 2003년 '카드대란'이 터지며 다시 감소한다. 카드대란 이후 자영업자 수가 약간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5년을 정점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2006년(5.2%), 2007년(5.1%) 5%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자영업자 수는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2009년, 2010년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회복과는 무관하게 자영업자의 감소세는 지속되고 있다. 이는 수출 대기업의 호황이 내수나 서민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고, 한국경제의 구조가 수출-내수, 대기업-중소기업 식으로 이중화 되고 있는 결과다. 또한 자영업시장이 이미 과포화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한국경제는 더 이상 자영업자가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서민내수 붕괴와 과당경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과당경쟁에 내몰리는 자영업

국세청 자료상 사업체 등록을 한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자영업 업황이 좋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안정적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퇴직한 사람들이 별다른 기술과 큰 자본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업종에 몰리면서 이들 업체들은 여전히 과당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다른 여타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높은 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31.3%로 OECD 평균 15.8%에 비해 약 두 배 가량이나 높고, 유럽연합 27개국의 평균 16.5%와 비교해서도 두 배 가까이나 높다. 공식 월급 없이 가족을 돕는 무급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가게 된다(통계청, 국세청의 조사대상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주요국 자영업자 비중(2008년)
 주요국 자영업자 비중(2008년)
ⓒ OECD FACTBOOK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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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영업의 비중이 높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당연히 과당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번 국세청의 발표를 보면 음식점의 경우 2009년 기준 한 사업자당 잠재고객은 114명이다. 한 사업자가 30가구 정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류점의 경우 자영업자당 595명, 부동산중개업 650명, 미용실 746명, 호프집/간이주점 767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현황에서는 당연히 수익구조가 취약하고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 등의 나라와 비교해 보면 한국 자영업자들의 경쟁강도가 과다함을 더욱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한국은행 '생계형 서비스 산업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자영업종인 음식점의 경우 인구 천명당 사업체 수가 미국(02년)의 경우 3.2개, 일본(06년) 5.7개 인데 비해 한국(05년)은 12.2개였다.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 보면 부동산중개업이 4.1배, 수리업 2.4배, 음식점업 2.2배 더 경쟁강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국세청 조사와는 조사대상 방법에서 차이가 존재).

  각국의 업종별 경쟁강도
 각국의 업종별 경쟁강도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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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한국의 자영업은 영세업종에 몰리고 있다. 이번 국세청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창업자 100명 중 35명 비율로 생활밀접 업종으로 창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창업이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음식점, 옷가게, 호프집 등 생활밀접 업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으로의 창업이 몰리고 그에 따라 서민들이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이러한 과당경쟁 속에서 자영업자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체(자영업)의 영업잉여는 일반 법인회사와 비교했을 때 대략 90년대까지는 같이 증가하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비금융법인과는 달리 정체되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

 개인사업체(푸른선)와 비금융법인(붉은선) 영업잉여 / 단위 : 십억원
 개인사업체(푸른선)와 비금융법인(붉은선) 영업잉여 / 단위 : 십억원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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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년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개인사업체 영업잉여 전년대비 증감율(추세선은 필자)
 개인사업체 영업잉여 전년대비 증감율(추세선은 필자)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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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기존 자영업자들의 시장을 회사자본이 잠식해 들어가며 전통적인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기업들에게 그나마 남은 시장마저 빼앗기고 있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 조사상 개인사업체 수(개인사업체는 자영업체수를 나타낸다. 2인이상이 공동경영하는 사업체도 포함한다. 개인사업체에는 2인 이상의 자영업자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자영업자 수와는 차이가 있다)와 법인회사의 수를 1996년과 2005년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자. 영세자영업자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소매업, 음식점업 등의 분야에서 회사법인(기업자본)의 사업체수가 늘어나며 전반적으로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개인사업체 수는 기업자본에 밀려 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특히 매출액 부분에서는 기존에도 소수의 회사법인이 액수 상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에 더해, 갈수록 회사법인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빠르게 늘어나며 숙박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영업자들의 시장을 점점 더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업종에 대한 선택은 자영업 비중이 크고, 창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분야를 필자가 임의로 선정).

개인사업체와 회사법인간의 사업체수, 매출액 변화 추이 / (  )는 비중
 개인사업체와 회사법인간의 사업체수, 매출액 변화 추이 / ( )는 비중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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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영세자영업 시장잠식... 정부가 나서야

전체적으로 자영업자들의 현황은 한편에서는 지지기반이 급속히 붕괴해 가고 있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과당경쟁에 내몰리며 큰 수익을 올리기 힘든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 치킨,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중소 자영업자들은 대기업에 밀려나며 설 땅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 양극화, 이중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봤을 때 지표상의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서 일반적인 자영업 경기가 쉽사리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의 경제정책은 서민·내수보다는 수출대기업에 맞추어져 왔다. 고환율 정책 등은 수출대기업을 위해 서민·내수를 위축 시키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규제보다는 대기업 총수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정책은 생색내기식이거나 실효성 없는 정책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들이 지속된다면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중소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정책을 펴야 한다.

물론 과도한 자영업의 비중으로 인해 자영업부문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영세자영업자의 몰락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과도한 자영업 비중을 봤을 때 자영업의 붕괴는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호해나가는 것과 함께 사회서비스 분야 등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재교육 강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해 고용구조를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통큰치킨, #자영업 , #과당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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