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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재능교육 을지로 농성장 사옥을 찾았다. 이 날은 재능교육 농성 1090일 째 되는 날이다.
 지난 14일 재능교육 을지로 농성장 사옥을 찾았다. 이 날은 재능교육 농성 1090일 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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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바람이 목도리가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코끝을 강하게 때렸다.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앞 4인용 텐트를 겨우 감싼 비닐은 당장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온도계는 -11℃를 가리키고 있었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의 투쟁이 1090일 되던 지난 14일, 재능교육 을지로사옥 농성장(도심 속 베이스캠프)을 찾았다.

"교사들은 기본급이 없고, 수수료제도(성과급)로 월급을 받습니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현금을 벌어다줍니다. 학습지 회사는 선생님을 많이 뽑을수록 돈을 법니다. 절대 망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유명자 재능교육 노동조합 지부장이 말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고용을 안 해서 난리인데, 학습지회사는 달랐다. 늘 사람을 뽑았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그만두면 다른 사람을 또 구하면 됐다.

2008년 경기가 나빠지면서 학습지를 끊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그해 12월, 회사는 마이너스 성과급 제도와 미수금 자동충당제도를 도입했다. 보험회사에서 운영하는 제도였다. 마이너스 성과급제도는 신입회원 한 명을 늘릴 때마다 교사에게 1만 원의 성과급을 주고, 회원이 그만둘 때마다 월급에서 7000원을 깎았다. 또 미수금 자동충당제도로 인해 미수되는 금액만큼 담당 교사의 월급에서 제했다. 회사는 회사 운영의 손실을 교사들의 월급에서 메웠다.

교사들의 월급이 적게는 20만 원씩 많게는 70~80만 원까지 깎였다. 교사들이 관리자들에게 죽는 소리를 할 때면, 관리자는 "니가 어디서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100만 원이라도 받겠냐, 신입회원을 유치할 생각은 못 하냐, 마인드가 글렀다"고 도리어 꾸짖었다.

천막도 없이 유담포로 2009년 겨울 버틴 그녀

유명자 지부장.
 유명자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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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재능교육 노조는 2007년 12월 21일,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상 파기와 임금 삭감에 반발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측의 입장은 분명했다.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단체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 농성에 앞장섰던 교사들은 해고됐다.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교사들은 하나 둘 재능교육을 떠났다. 싸움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6000명이던 교사는 4500명으로 줄었다.

"싸움이 1000일을 넘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대학 때 응용미술과 사진을 전공한 유 지부장은 카메라 값을 벌기 위해 1999년 재능에 입사했다. 한 1~2년 일하고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꿈쩍도 않는 회사를 상대로 1090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작년 겨울 추위는 매서웠다. 작년 혜화동 농성장에서 천막도 없이 노숙 농성을 할 때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줬던 것은 유담포(일본식 물난로) 한 개였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뜨거운 물을 채운 유담포 한 개를 발에 대고 버텼다. 밤에는 차 중간좌석과 뒷자석을 밀어놓고 잠을 잤다.

"차 철판 바닥의 냉기와 차 안 공기가 끔찍했어요. 히터를 틀 수도 없었고, 용역업체 직원들이 30분마다 찾아와 못 살게 굴었습니다."

"손학규 대표는 고사하고 이정희 대표도 안 왔다"

환구단 앞에 서있는 유명자 지부장
 환구단 앞에 서있는 유명자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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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새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그리곤 3월 22일부터 용역업체 직원들이 농성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건장한 체격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농성을 방해하고, 폭력을 유도했다. 그들은 여자 조합원들에게 성희롱 내용이 담긴 욕설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우리 조합원 귀에 대고 'X같은 년, XX에 전봇대를 꽂아버려라'고 속삭였습니다. 대놓고 욕 하는 것보다 속삭이면 정말 끔찍합니다."

유 지부장의 얘기를 듣는 동안 농성장의 추위를 간신히 막고 있는 텐트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한파가 몰아친 농성장의 밤은 여느 때보다 추웠다. 수첩에 취재 내용을 적는 동안 손가락 마디 마디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유명자 지부장에게 "길 건너에 있는 민주당, 민주노동당에서 지지방문 온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손학규 대표는 고사하고, 이정희 대표조차도 오지 않았다"며 "현대차 같이 표되는 농성장에는 가도 재능교육 같은 표 되지 않는 농성장에는 올 턱이 없다"고 말했다.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김용현 활동가는 "손학규 대표와 악수하면서 길 건너 재능교육 농성장을 지지방문 해달라고 말했지만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능교육 농성장.
 재능교육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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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 사무처장에게 재능교육이 올해 '인터넷소통경영 대상, 브랜드 파워 1위 수상'에 대한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소통경영이요? 재능교육 교사들의 80%가 가임기 여성입니다. 재능교육은 무급육아휴직제도를 운영합니다. 정부에서 출산율이 낮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원할 테니 애 많이 낳으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특수고용직노동자인 우리에게는 정부와 회사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그녀는 임신 9개월까지 수업을 다녔다. 배가 부른 채로 시흥동 주택가 오르막길과 5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도, 출산 후에 2개월 휴직을 했을 때도 회사에서 그녀에게 준 돈은 없었다.

남자아이를 출산한 지 두 달 만에 그녀는 회사로 돌아갔다. 한 집에서 1~2과목 정도를 가르쳤다. 아파트 같이 세대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하루에 15집 이상 돌 수 있었지만, 주택가에서는 제때 밥도 먹지 않고 돌아야 겨우 10집을 돌 수 있었다. 끼니도 거르며 담당 과목을 늘려야 조금이나마 더 받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먹지 못 하고, 퇴근 후에 집에 가서 폭식을 하는 날이 늘어갔다. 방문하는 집에서 먹을 것을 주는 날도 있었다. 남기는 것이 실례가 되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 먹었다.

"학습지 교사는 위장병을 직업병처럼 앓아요. 먹는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폭식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에요."

일은 밤 10시가 되어야 끝났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마트에 가서 홍보를 하고, 영업을 했다. 영업을 하지 않는 학습지 교사는 관리자로부터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았다.

이번이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마지막 겨울이길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김현 퀵서비스 조합원이 잠을 자고있다.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김현 퀵서비스 조합원이 잠을 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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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m도 안 되는 좁은 텐트에서 김현 퀵서비스 노조 조합원과 이정호 사노위 활동가와 함께 잠을 잤다. 덩치가 좋은 사내 셋은 새우잠을 잤다. 침낭 속에 얼굴을 파묻었지만, 코 끝에 얼음을 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말 두겹 사이로 냉기가 스며 발가락과 복숭아 뼈 감각이 무뎌졌다.

출근시간인  오전 7시에 사내 셋이 작은 텐트에서 기어나왔다. 출근 중이던 행인들이 놀라 쳐다봤다. -11℃의 날씨에 작은 텐트에서 장정 셋이 나오니 놀랄 만했다. 지나가던 행인은 "이렇게 추워서 농성하겠나? 투쟁도 좋지만 몸 상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라며 걱정 섞인 말을 건넸다.

유 지부장은 "간 밤에 춥지 않았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난 "생각보다는 덜 추웠다"라고 말 끝을 흐렸다. 유 지부장은 "설마 -15℃까지 내려가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겨울은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맞는 네 번째 겨울이다. 그러나 그들의 겨울은 올해도 매섭게 시작됐다. 사측이 법원에 압류 및 경매를 요청하면서 지난 10월 노조 사무실의 손때 묻은 컴퓨터, 냉장고, 방송차량, 오 사무처장 집에 있는 냉장고, TV 등에 압류딱지가 붙었다.

오 사무처장의 집에 압류딱지를 붙이러 사람들이 온 날 그녀는 재판을 받고 있었다. 혼자 계시던 시어머니가 압류딱지가 붙여지는 걸 보며 적잖게 놀랐다. 오 사무처장은 "사측을 상대로 싸우는 조합원의 개인물건까지 압류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텐트에서 나오는 이정호 사노위 활동가. 추워서 텐트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아침이었다.
 텐트에서 나오는 이정호 사노위 활동가. 추워서 텐트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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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이 지난 10월 8일 서울지방법원에 접수한 집회금지 등 가처분 신청에는 ▲ 회사 경영진 주위 50m 접근 금지 ▲ 회사 입장에 명예훼손을 가할 유인물, 피켓, 현수막, 언론사 정보 제공 금지 ▲ 100m 이내에 1인 시위와 방송차량 진입 금지 등이 담겨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회 500만 원이라는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 회사는 노조의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이 노사 갈등이 아니고, 노노 갈등에 있다고 보고 있다. 전임 집행부와 단협을 맺었기 때문에 지금 노조와는 협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내년 1~3월에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사측도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회사가 이젠 결정을 해야죠. 교육회사가 이미지 버려가면서 4년을 끌었는데… 이해가 안 가요. 정말…."

유 지부장은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들의 투쟁이 네 번째 겨울에 마무리될 수 있을까? 환구단 앞 주황색 4인용 텐트는 매서운 겨울 바람에도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태그:#재능교육, #학습지교사,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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