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자는 나무 스틸컷

▲ 서서 자는 나무 스틸컷 ⓒ 미카필름

<서서 자는 나무>는 시작과 끝이 눈에 보인다.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들이 금방 눈치 챌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영화의 주인공 구상(송차의)과 아내 순영(서지혜), 딸 슬기(주혜린), 여기에다 소방관 친구 석우(여현수)까지 이미 신파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캐릭터들로 중무장하고 있다. <서서 자는 나무>는 신파가 되기 위한 캐릭터를 갖추고 관객들을 울게 만들려고 작정한 영화다. 문제는 이 영화 보고 눈물 나올 관객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 신파 만들려고 캐릭터까지 착실히 만들어 놓았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단 것은 영화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다.

 

소방관 구상은 뇌종양에 걸렸다. 아내와 딸을 생각하면 더 살고 싶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아내는 7년 전 사고로 공황장애까지 앓고 있으니 자신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과 같이 일하고 있는 소방관 석우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내를 좋아해 왔다. 구상에게 석우는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고 나면 가족을 잘 좀 부탁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드디어 신파영화의 절정으로 치닫는 화재가 발생하고 석우는 화재진압을 위해 현장으로 출동한다. 화재진압 현장에서 석우에게 닥칠 일이 무엇인지 눈에 빤히 보이는 전개다.

 

<서서 자는 나무>에 신파 캐릭터가 다수 나옴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흐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캐릭터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 항상 나오는 작품마다 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지적을 받던 서지혜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법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는 송창의와 여현수까지도 이 작품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면 정말 송창의가 <이산>과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온 연기 잘하는 배우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기에 나오는 영화마다 캐릭터를 무난히 소화했던 여현수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두 배우 연기가 완전히 죽어 버린 것은 시나리오 자체의 결함이 결정적이다.

 

구상과 석우 여기에다 순영까지 다른 배우들이 맡았다고 해도 제대로 된 캐릭터를 보여주기 힘들 것 같다. 인물들의 감정에 높낮이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캐릭터들 자체도 큰 특성이 없다. 예전 70~80년대 나올 만한 신파 인물들이 2010년에 나왔으니 아무리 배우들이 캐릭터를 잡고 싶어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인물 캐릭터를 잡으려면 70~80년대 신파영화 보면서 연구를 해야 만 가능할 것 같다.

 

여기에다 70~80년대 신파영화는 나쁜 남자와 착한 여자의 구도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계모 밑에서 힘든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나름 선악 구조가 확실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다. 하지만 <서서 자는 나무>에는 도통 법 없이 살아도 될 정도의 착한 사람들만 나와서 극적 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신파가 되기 위해서 주인공들의 삶에 희노애락이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면서 지겨움이 배가 되는 이유다.

 

다들 착한 캐릭터에다가 현실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인물들이다 보니 배우들 감정이 제대로 연기에 실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다 못해 70~80년대 신파영화처럼 나쁜 인물이 등장하고 죽기 전에 개과천선이라도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나쁜 인물과 착한 인물이 대비되어서 눈물이라도 흐르겠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것조차 없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눈물을 흘려야 할지 궁금해진다. 분명 신파영화로 만들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서서 자는 나무>는 시나리오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란 결론 외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투적인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뭔가 색다른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70~80년대 신파영화에서 나올 법한 구도조차도 가져가지 못하면서, 관객들에게 눈물 흘리기를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관객들이 눈물 흘리기에 70~80년대 신파영화보다도 못한 스토리 때문에 마지막에는 짜증과 함께 한숨 섞인 웃음이 나올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국내개봉 2010년 12월9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2.11 09:1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국내개봉 2010년 12월9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서 자는 나무 무비조이 MOVIEJOY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