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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에 있는 한 공립 초등학교가 영어로 진행하는 졸업식, 이른바 '영어몰입형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어 학교 안팎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 일부 학부모는 교장에게 항의하는 한편, 봉화교육지원청 공식 사이트에도 항의 편지를 올려놓는 등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5학년은 영어로 송사, 6학년은 영어로 답사

경북 B초 사이트에 올라온 할로윈데이 행사 모습.
 경북 B초 사이트에 올라온 할로윈데이 행사 모습.
ⓒ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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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이 학교 교장과 교사, 학부모 등에 따르면 농촌 학교인 B교는 지난 11월 중순쯤 교사 전체가 참여하는 교무회의를 열었고,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쳐 내년 2월 졸업식을 영어로 진행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이에 따라 최근 영어로 사회를 보고, 영어 송사를 할 수 있는 5학년 학생 일부를 뽑아 놓고 연습 준비에 나선 상태여서 파행 교육과정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6학년 졸업생 5명도 답사를 영어로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몇몇 중고교 졸업식에서 교장이 영어로 인사말을 해 말썽이 된 적은 있었지만, 초등학교가 행사 전 과정을 영어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학교에 4학년 자녀를 보내는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아무개 학부모는 이날 봉화교육청 홈페이지 '교육장과의 대화'란에 올려놓은 편지에서 "저희 학교의 졸업식을 모두 '영어'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란 맘에 글을 올린다"면서 "영어로 전달된 졸업식에 아무리 통역이 있더라도 제대로 마음이 오가고 진정한 감동이 생길 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이 학부모는 "우리나라의 여러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나라의 말로 하는 졸업식은 생각만 해도 마치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망측한 맘이 앞서는 일"이라면서 "졸업식이 교육의 연속선 안에 있는 어떤 장이라면 그것은 정서와 인성교육의 장이어야 하는 것이지 지식교육의 장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초 소양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연장선에서 진행하는 졸업식을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사에 따르면 '다양하고 색다른 졸업식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올해 교육청으로부터 하달됐다고 한다.

교장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 새로운 경험 필요"

이 같은 반대 의견에 대해 이 학교 박아무개 교장은 "무한경쟁시대와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 살아갈 아이들은 앞으로 국제행사나 회의에서 공용어인 영어를 써야 한다"면서 "이번 졸업식을 통해 작지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영어 졸업식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장은 '영어졸업식은 좀 지나치다는 의견이 있다'는 물음에 "어차피 영어가 정규 교과이고 (정부도) 영어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전철에서도 영어 안내멘트를 하고 있다"면서 "이번 졸업식은 영어로 진행한 뒤 우리말로 통역하거나 자막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행사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장은 최근 일부 학부모 항의를 받은 뒤 지난 2일 '영어졸업식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이 또한 학부모와 학생 이름을 적도록 하는 등 기명으로 실시했다.

전교생 39명에 5학급 규모인 이 학교는 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석사학위를 받은 박 교장이 올해 3월 부임한 뒤, 학교에서 '할로윈데이' 행사를 공식 진행하는 등 영어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화교육청은 영어 졸업식에 대해 '상황파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 교육청 배아무개 교육지원과장은 "학교 행사이기 때문에 학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면서도 "일부 구성원의 반대 움직임이 있다면 상황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태그:#영어몰입교육, #영어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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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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