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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사무실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 있어야 할 사람 대신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기자 앞에 우뚝 선 개는 무언가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보다 조금 늦게 칸막이 뒤에서 일어난 주인이 "풍경아, 괜찮아"라며 등을 한번 쓰다듬자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활짝 웃으며 기자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노영관(34)씨.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한 개는 노씨와 5년째 동고동락 중인 안내견 '풍경'이다. 사무실로 들어온 낯선 사람이 주인에게 위험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자 풍경이는 책상 아래 자기 자리에서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삼성이 다시 사업에 복귀해야 한다"

 30일 경기도 수원 사무실에서 안내경 풍경이와 포즈를 잡은 노영관씨.
 30일 경기도 수원 사무실에서 안내경 풍경이와 포즈를 잡은 노영관씨.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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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 성균관대학교 캠퍼스 안에 차려진 노씨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30일 오전. 최근 삼성이 장애인 안내견사업을 대폭 축소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올 6월까지는 회사생활을 하다가 지난달 장애인활동보조기구를 생산하는 벤처기업 '네오엑세스'를 창업했다.

노씨는 삼성의 장애인안내견사업 축소와 관련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자체가 홍보를 위한 일면이 있겠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라며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안내견사업을 하는 삼성의 목적은 홍보가 전부였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1993년 에버랜드 인근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에 '삼성안내견학교'를 세우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청각장애인 도우미견·구조견 등을 양성해 장애인들에게 무상분양해왔다. 삼성안내견학교는 2009년 말까지 시각장애인 안내견 130마리,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62마리, 인명구조견 28마리 등을 분양했다. 이를 위해 삼성은 매년 30~40억 원을 투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에버랜드 리조트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삼성은 청각도우미견과 인명구조견 등 사회공헌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하고, 75명의 관리인력 중 73%에 해당하는 55명에게 퇴직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훈련사들뿐 아니라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퍼피워커), 안내견 사용자인 장애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씨는 "처음에는 뭐가 잘못됐고, 누가 잘못했고,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라며 "지금도 문제의 책임소지가 불분명하지만 1차적으로 삼성이 다시 사업에 복귀해야 하고, 이후에는 삼성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 전문적인 비영리단체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이 그동안 잘 해와서 정말 감사했지만, 지금은 그만큼 배신감이 더 크다"라고 덧붙였다.

노씨는 풍경이를 만나기 전, 다른 안내견과 함께 삼성의 TV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2008년 삼성화재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란 시리즈 광고다. 삼성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안내견과 그 주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사실상 삼성의 기업 이미지 광고였다. 최근 '또 하나의 가족'이란 모토로 나오는 삼성전자의 광고처럼 말이다.

노씨와 안내견 '아름'이는 광고 네 번째 편의 주인공이었다. 안내견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은퇴를 하고 '홈케어'라는 제도를 통해 위탁 가정에 맡겨져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게 된다. 아름이도 그런 과정을 통해 노씨와 헤어져 다른 위탁가정에 맡겨졌고, 광고촬영을 위해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아름이와 노씨의 우정을 담은 영상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고, 그들은 삼성안내견학교를 상징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노씨는 초등학교 6학년때 '망막박리'라는 질환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지난 1999년 대학에 입학하며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처음 만났다. 몸이 불편해 일찍 은퇴한 토담이, 그 후 5년 동안 함께 한 아름이에 이어, 지금 풍경이가 세 번째 안내견이다.

삼성안내견 학교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셋이나 얻은 노씨는 그만큼 이 사업을 잘 알고 있었고 애착도 강했다. 그에게 비장애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장애인안내견의 중요성과 삼성의 안내견사업 축소의 문제점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노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안내견, 시각장애인의 외출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2008년 삼성안내견학교를 소재로 제작된 삼성화재 TV광고
 2008년 삼성안내견학교를 소재로 제작된 삼성화제 TV광고
ⓒ 영상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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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17년 동안 해온 장애인안내견 사업을 갑작스럽게 축소했다. 기업의 사정이 나쁘면 사업을 축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사업을 축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해결책이나 대안은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삼성 쪽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부도 또 하나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장애인안내견 사업은 제도도입부터 법적인 분야까지 삼성이 모두 맡아 왔는데 삼성이 손을 떼버리니 이 제도를 보호 해줄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다. 삼성의 공백이 드러난 셈이다.

장애인안내견 보급은 더 활성화해야 사업이다. 삼성은 수요자가 없어 발굴해야 했다고 하지만, 사실 장애인 중에는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해 사업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삼성 쪽에서 안내견을 분양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대상자들을 필터링했기 때문이다. 기업 홍보라는 목적과 부합하는 인물만 찾는 것이다. 삼성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을 분양받는 사람은 최소한 대학생이다.

대학을 나왔다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되는 장애인만이 대상이 됐기 때문에 수요가 적다고 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자기역할을 다 하면서 자립해 살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선별적인 기회부여가 아닌 보편적인 기회부여가 돼야 한다."

- 안내견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어떤가? 장애인들에게 안내견은 어떤 의미라고 할 수 있는가?
"우선 생활의 편의적인 면에서 봤을 때, 안내견이 있다는 것은 시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약하지만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과 약하지만 보인다는 것 자체는 아주 큰 차이다. 또 그 외에 서로 격려를 주고받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주인은 개를 칭찬하고 개는 주인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반복된 훈련으로 학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말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보행능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흰 지팡이만 사용할 때는 어지간하면 잘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내견하고 생활하면서는 아예 '외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게 된다. 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됐다. 예전에는 나갔다 오면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지금은 산책 등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물론 개를 보는 시선이지만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사회생활을 더욱 건강하게 할 수 있었다."

- 10년 넘게 안내견들과 함께 해 왔는데, 삼성의 안내견 관리인력 축소 등으로 인해  다른 안내견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건가?
"솔직히 그런 일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삼성안내견학교가 이 상태로 간다면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막상 닥쳐 봐야 알 것 같다. 아마 모든 게 무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될 것 같다.

"삼성의 목적은 홍보가 전부였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

 삼성안내견학교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할 강아지를 일반 가정에 위탁해 사회화훈련('퍼피 워킹')을 시켜왔다.
 삼성안내견학교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활동할 강아지를 일반 가정에 위탁해 사회화훈련('퍼피 워킹')을 시켜왔다.
ⓒ 삼성안내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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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은 관리인력을 감축한 이후에도 시각장애인 안내견 분양은 계속 하겠다고 해명하고 있다. 
"단순히 규모가 축소되고 인력이 줄어 내보내는 안내견 수가 줄 수 있다는 걱정만 하는 게 아니다.  삼성 측은 홍보인력만 줄였다고 했지만 실제로 훈련사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훈련을 받아온 개들이 있기 때문에 몇 개월 사이에 외부에 보여주는 안내견 숫자는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안내견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훈련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10마리가 훈련에 들어갔다고 해도 모두가 안내견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일부는 탈락한다. 그러나 숫자를 채우자고 마음을 먹으면 불합격되어야 할 강아지들이 안내견으로 될 수 있다. 외국과 달리 국내는 장애인의 보행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안내견들에게 훨씬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한다. 안내견에게 단 한 가지 위험요소만 있어도 장애인에게는 큰 위협이 될수 있다. 안내견 훈련의 완성도는 장애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노씨는 그가 처음 만난 안내견인 토담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1999년 노씨는 토담이를 만났지만 1년여 만에 헤어져야 했다. 토담이가 유전적으로 건강상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담이의 엄마에게서 나온 다른 강아지들한테서 간질 증상이 있었고 토담이에게도 약하지만 그런 증상이 있었던 것.

노씨는 "토담이가 가끔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이 있다"라고 훈련사들에게 말했다. 노씨는 토담이의 증상이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안내견학교 측은 "길을 건너다가 그런 증상이 일어나면 어떡하냐"며 토담이가 어렸지만 강제 은퇴시켰다. 이런 점들에 대해 삼성안내견학교도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노씨는 설명했다. )

- 그런 삼성안내견학교가 왜 갑자기 이런 구조조정을 하게 됐다고 보는가? 본인이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삼성 직원이 찾아와 "우리는 너를 이용했고, 너희도 우리를 이용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던데, '이용했다'는 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삼성 안내견 사업이 사회적으로 좋은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아이템 자체가 식상해졌다.  더 이상 안내견 사업이 회사홍보용으로 이용할 가치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이제 삼성에서 안내견사업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삼성의 사회공헌사업 자체에 기업홍보의 일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목적은 아닐 것이라 믿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삼성의 목적은 홍보가 전부였다는 걸 확인해 씁쓸하다.

무엇보다 삼성 측에서 '사업을 축소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 가장 화가 났다. 마치 비대하게 운영됐던 사업을 정상화시킨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 어불성설이다. 지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은 전국적으로 겨우 6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성 안내견 학교, 비영리단체로 전환해야"

- 이번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선 이 사태의 책임자가 불분명하다. 안내견을 훈련시키는 에버랜드 쪽인지 지원을 하고 있는 삼성화재 쪽인지, 누가 사업 축소를 결정하고 집행했는지부터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런 후에 삼성이 사업에 복귀하는 것이 옳다. 전적으로 삼성에 의존하고 있는 사업을 아무 대책 없이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후에 2~3년 안에 안내견 양성이 가능한 비영리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계속 이 사업을 삼성에 맡겨놓을 수는 없다. 이를 위해 다른 기업이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런 장애인 안내견을 육성하는 사업을 한 기업이 도맡아 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 차이가 차별을 만들지 않는 세상.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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