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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29일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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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뉴스는 다급하다. 조지워싱턴 핵항공모함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한미합동군사훈련 3일째다. 포격으로 초토화되어 무인의 섬처럼 되어버린 연평도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주민과 취재진이 방공호로 대피했다는 소식도 안방에 여과 없이 흘러든다.

연평도 포격 5일째인 11월 마지막 일요일은 숨가쁘고 위태로웠다. 저 뉴스를 보면서 서울의 하늘 아래서 세 아이를 둔 가장인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라면 사 놓고 차에 기름이라도 가득 넣어 놓고 가까운 방공호라도 알아 놓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채널을 돌려 오늘도 변함없는 연예인들의 말장난 프로나 끊임없이 재방송되는 금메달 스포츠 중계에 눈을 맞추고 있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고 마음만 제 홀로 절박하다.

전쟁과 연말 세일... 안보의 기준은 어디인가

2010년 총결산 세일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붙인 백화점. 입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대형마트. 물건은 넘치고, 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은 느긋하고 한가롭다. 일주일 먹고 쓸 것들을 카트에 실어 계산대를 빠져 나가는 젊은 부부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푸드코트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어떤 불안감도 없다.

저 젊은 부부에게 전쟁 불안감이, 때늦은 점심을 무엇으로 할지의 고민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다. 한쪽에서는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는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데, 또 한쪽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코미디, 스포츠 프로가 방송되고 백화점 대형마트는 연말 세일에 사람이 넘쳐가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 앞에서 국민이 가져야 할 안보 의식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가지는 전쟁의 불안감은 과한 것인가. 아니면 모자라는 것인가.

지난 23일 북한의 포격에 연기가 치솟는 연평도를 뉴스 속보로 보면서 믿기지가 않았다. 2003년 미국이 바그다드를 폭격할 당시 뉴스 속보를 보는 이상의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연평도라고, 북한과 가장 인접한 지역,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연평도가 북한의 포격을 당하고 있다는 긴박한 멘트를 전하는데도 일상은 계속 되었고 비상은 TV 화면을 넘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지 않아 드러난 연평도 속살은 너무나 참혹했다. 집들이 불타고 사람이 죽고 신발도 채 신지도 못하고 섬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무서웠다. 사람들이 살던 곳, 자식을 낳고 삶을 이어가던 곳. 그러나 지금은 포탄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곳. 그곳이 서울과 똑같이 대한민국의 주소를 쓰는 땅이라는 사실이 각인되었을 때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24일 새벽 주민들이 섬을 떠나기 위해 짐보따리를 들고 부두로 몰려들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하룻밤을 대피호에서 보낸 연평도 주민들이 24일 새벽 섬을 탈출하기 위해 짐보따리를 들고 부두로 몰려들고 있다.
ⓒ 옹진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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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 딛고 있는 곳, 내 아이와 아내와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서울이 포탄이 날아들고 집이 부서지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어떨지, 상상만해도 무서웠다. 두려웠다. 안보 불감증이라고? 안보 민감증을 넘어 안보 불안증에 병원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포격 6일째,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합동 훈련이 열리고 북한의 대응도 가파르다. 이 사실을 전하는 방송은 전쟁을 실황 중계하는 것 같다.

항공모함이 축구장 몇 배의 크기라는 둥, 항공모함의 유지비용이 얼마에, 평양까지 얼마에 도달해 얼마만큼 폭탄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까지 국민들에게 참 친절하게도 설명하고 반복학습까지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생존권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방송이 집단적으로 안보 불감증에 걸린 것인지, 나처럼 심약한 사람들이 병적인 안보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무섭고 두려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을 수 있는지를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 많은 공중파 방송도, 정치권에서 연일 확전 운운하는 사람들도.

하루 230만 명이 죽는단다, 그래도 전쟁하자고?

 24일 오전 옹진군청은 전날 오후 북한군 포격을 받아 대피호로 피신한 연평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23일 밤 북한군의 포격을 피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대피호에 들어온 연평도의 한 가족이 밤을 보내고 있다.
ⓒ 옹진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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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예측을 오래 전부터 데이터화하고 통계화한 것은 미국이었다.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클린턴 정부가 실시한 북미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는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 명의 사상이 예상되며, 개전 일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한 100만 명 사망에 남한측 민간인 사상자도 500만 명이 나올 것이라 예측했다. 10년 후인, 2004년 합동참모본부에서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는 전쟁 발발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 국군,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230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고 한다.(<시사인> 142호. 2010.06.03) 

하루 사상자 230만 명. 수치는 과학이지만 현실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 서울 하늘 아래서 하루에 230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상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연평도에서 하루 2차례 포격에 군인·민간인 4명이 죽고 820가구 1400여 명이 도망치듯 섬을 탈출했다. 연평도는 무인의 섬으로 변해가고 가재도구도 챙겨 나오지 못한 주민들은 졸지에 피난민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땅 연평도가 하루 만에 이렇게 되리라 예측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비록 국지전이라고 하지만 연평도는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잃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확전을 못 했다고 나무란다. 전투기로 미사일 폭격이라도 해서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말은 넘쳐나는데 피난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전이 되면 230만 명이 죽어 나간다는 통계 속 그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방안도 대책도 없다. 안보 불감증.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 그들은 집단으로 심한 안보 불감증을 앓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떠한 변명도 민간인의 터전을 포격하고 민간인을 폭사시키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민간인 사망에 대한 유감 표명은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또 남북 대결구도가 낳은 참상이라는 북측의 말도 포격에 대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북한은 포격에 대한 책임이 있다. 책임지는 자세를 국제 사회에 보여야 한다.

더불어 어렵게 만들어 왔던 남북 관계를 일거에 파탄낸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남북의 관계가 어디 당국자와 당국자의 관계, 정권과 정권의 관계 뿐인가? 통일과 평화를 원하는 칠천만 겨레, 60년 가까이 헤어져 상봉의 그날만을 기다리며 얼마 남지 않는 여생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이산가족들, 그 사람들에게 북한 당국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반성은 당연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전쟁보다 평화를, 응징보다는 화해를

 연평도 포격과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에 전쟁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28일 밤 서울 종로2가 보신각앞에서열린 '전쟁반대 평화기원을 위한 시국기도회'에 대학생들이 '전쟁은 절대 싫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참석하고 있다.
 28일 밤 서울 종로2가 보신각앞에서열린 '전쟁반대 평화기원을 위한 시국기도회'에 대학생들이 '전쟁은 절대 싫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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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전쟁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있을 수 있지만 230만 명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시뮬레이션의 1/10, 아니 1/100 정도라도 현실이 되다면 공멸이 있을 뿐 어떤 승자도 있을 수 없다. 민족의 공멸. 230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전쟁을 앞에 두고 확전을 주문하고 힘의 우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말은 날마다 거칠어지고 언론과 방송은 아무런 여과도 검증도 없이 확전 논리를 재생산하고 포장해 내고 있다.

묻고 싶다. 확전과 힘에 의한 굴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들. 당신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230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전쟁의 확전'을 부추기는 것은 승리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인가, 전쟁 시뮬레이션도 읽어 본 적 없는 무지의 소치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배수의 진이라도 치고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대통령 담화를 앞두고 확전 일로로 치닫고 있는 최악의 남북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냉정한 주문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책임 문제는 호되게 몰아치더라도 공멸은 면할 수 있는 제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바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나만의 바람이 아닐진대 대통령의 담화 내용은 매몰찬 기운만 있을 뿐 어떠한 처방도 없었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한미합동군사훈련도 그렇다. 자국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뒤로 미룬 채 군사강국을 불러 들여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것이 호가호위(狐假虎威) 아니고 무엇이냐는 소리도 있다. 남북의 문제에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중국이 개입하고 이러다 서해가 국제적 화약고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평화. 얻어 맞은 입장에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화해와 공존. 국민이 포격에 죽어가고 천여명이 피난민이 되는 초유의 사태에서 나약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 국민의 생존권이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공멸을 공존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정치인이 할 일이고 대통령의 사명이다.

평화와 화해. 공존의 목소리는 이적이 되고 확전과 응징이 애국이 되는 전쟁 직전의 상황에서 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내 아이들이 살아갈 땅을 지키기 위해, 평화와 화해를 주문한다. 정치인들이여. 부화뇌동하는 언론이여. 제발 안보 불감증에서 그만 깨어나시라. 230만 명이 죽어 나갈 수도 있다지 않는가? 남과 북 칠천만 겨레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은가? 전쟁보다는 평화를 , 응징보다는 화해를 이야기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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