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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 있는 강원도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인 한혜경씨와 엄마 김시녀씨.
 춘천에 있는 강원도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인 한혜경씨와 엄마 김시녀씨.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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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놓은 밥이라도 혼자 먹을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한혜경씨 어머니인 김시녀씨의 얼굴에 딸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배어나왔다. 혜경씨는 2005년 소뇌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서울대병원에서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종양이 많이 자란 터라 완전히 절제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용변을 볼 수도 없다. 뇌종양 후유증으로 언어와 보행, 시력 등 모두 장애 1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 딸의 사지가 묶인 이후 김씨는 간병하는 데만 전념했다. 하고 있던 식당일도 관뒀다. 그러다보니 가세가 기울었다. 혜경씨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산 춘천의 6400만 원짜리 25평 아파트는 병원비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김씨에게 혜경씨는 '똥조차도 버릴 것 없는' 착한 딸이었다. 1995년, 집안 형편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딸만 생각하면 미안했다. 하루는 혜경씨네 회사에서 가족들을 초청했다. 식사도 대접하고, 에버랜드에도 데려가주었다. 혜경씨가 사는 회사 기숙사는 웬만한 춘천의 아파트보다 더 좋았다.

"우리 딸이 취직 잘 했구나.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구나."

이때부터 김씨에게 삼성전자는 '우리 딸이 일하는 좋은 회사'였다. 동네사람들에게도 삼성제품을 추천했다. 김씨는 그렇게 계속 행복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입사 8개월이 지나자 혜경씨가 2~3개월에 한 번씩만 생리를 했다. 2년이 지난 후에는 생리가 완전히 멈췄다. 김씨는 '전자파 때문에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안 좋아진 혜경씨는 5년만인 2001년 회사에서 나왔다.

행복했던 모녀에게 찾아온, 불행의 그림자

 집회 중 발언을 마치고 오열하는 한혜경씨. 뇌종양 수술로 눈물샘을 제거하여 눈물을 흘리진 못한다.
 집회 중 발언을 마치고 오열하는 한혜경씨. 뇌종양 수술로 눈물샘을 제거하여 눈물을 흘리진 못한다.
ⓒ 반올림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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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씨는 LCD 사업부 모듈공정 SMT(Surface Mount Technology)공정에서 일했다. 혜경씨가 담당했던 인라인(In Line)업무는 회로기판 위에 솔더크림을 주걱으로 떠올려주는 것이었다. 혜경씨가 올린 솔더크림을 기계가 훑어서 마스크 표면에 골고루 묻혀주는 것이다. 이 업무는 SMT 라인에서는 가장 비중 있는 공정이다. 특히 SMT의 일곱 공정 중 다른 공정은 장비 1대당 작업자가 1명인데 반해, 혜경씨는 장비 5대를 혼자서 맡았다.

최근 선옥남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납(Lead, Pb)은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고, 고농도의 납 노출은 뇌암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또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중추신경계통 장해와 관계있는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 혜경씨는 춘천시 동면 장학리에 위치한 강원도 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춘천에서 유일한 재활병원이다. 혜경씨는 오전 9시 운동치료, 11시 작업치료 등 뇌종양 제거 수술로 없어진 균형감각을 증진시키기 위해 재활 치료 중이다. 몸 전체가 쉴 새 없이 흔들려, 목 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생겨 두 차례나 수술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요즘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오전과 오후 일을 하면 100만 원 좀 안 되게 벌 수 있다. 혜경씨는 원룸비와 입원비를 이중으로 낼 수 없어 곧 퇴원할 예정이다. 병원생활을 접고 5년 만에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집에서 혼자 있게 될 딸이 걱정이다.

"백혈병 항암치료는 너무 처참하고 비참해요"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집회 중 오열하고 있다.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집회 중 오열하고 있다.
ⓒ 반올림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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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교육이요? 받은 적 없어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안전교육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 맞는 안전교육을 해야죠. 우리가 작업하는 물질들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교육은 12년 동안 없었어요."

2005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급성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황민웅씨와 정애정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만나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남편 황씨는 평소 성실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무뚝뚝했지만, 속이 깊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인 황씨는 삼성 같은 대기업의 경쟁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결혼을 앞두고는 책임감이 생겨서인지 더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2004년 정애정씨가 둘째아이를 임신했을 때, 황민웅씨에게 급성백혈병 진단이 내려졌다. 정애정씨에게 황씨의 항암치료 과정은 도려내고 싶은 기억이다.

"백혈병 항암치료는 너무 처참하고 비참해요. 합병증도 엄청 심했어요. 잘 생기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나 아직까지 믿을 수가…."

둘째아이 태어난 지 한 달만에 사망한 황민웅씨

 서울대 산하협력단 조사결과(왼쪽)와 지난 4월 2일 삼성전자가 트위터에 게재한 게시물이다.
 서울대 산하협력단 조사결과(왼쪽)와 지난 4월 2일 삼성전자가 트위터에 게재한 게시물이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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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정씨가 둘째아이를 낳았을 때, 황씨는 무리해서 외출허가를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집까지 가는 몇 걸음도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를 만질 힘도 없었다. 황씨는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다 병원으로 돌아갔다. 둘째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인 2005년 7월 23일, 황민웅씨는 20일 후에 잡아 놓은 골수이식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했다. 4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이었다.

정애정씨는 두 달 후에 기흥공장으로 복귀했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없었다. 살았으니까 그냥 살 수밖에 없었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교대 근무를 하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독하게 2년을 버텼다. 어느 날 선배로부터 남편이 산재일지도 모른다는 전화가 왔다.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해 삼성과 싸우는 건 두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남편과 제가 함께 근무했던 회사에 대한 기억, 남편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게 제일 괴로웠어요."

황민웅씨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기흥공장 1라인, 5라인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지난 9월 28일 참여연대가 입수해 공개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노출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황씨가 보수설비를 담당했던 기흥공장 5라인은 2009년 2월~7월까지 6개월간 가스 검지기 경보가 46회나 발령됐다. 가스 누출 시간은 10분 이내가 약 89%였고, 최고 5729초(1시간 35분)까지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에 앞선 4월 2일 삼성전자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물질은 모두 알려져 있고, 역학조사에도 제출되었으며 근무하는 직원들도 알고 있습니다"라며 "모든 설비는 표준화된 작업절차를 임직원에게 교육하고, 주의사항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며 오래 전부터 시행해 왔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위험에 빠진 개도 구해주면서 왜 우리사회는..."

 지난 국감에서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제출한 근로복지공단의 공문.
 지난 국감에서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제출한 근로복지공단의 공문.
ⓒ 이미경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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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씨와 고 황민웅씨, 둘 다 삼성전자에서 5년 이상을 일해 왔고 한 명은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1급 장애인이, 한 명은 사망에까지 이르렀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씨와 황씨 외에 현재까지의 피해자만 100여 명에 이르고 사망자 또한 35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스러져 간 삼성반도체 기흥·온양 공장에서는 아직도 2만 5천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은 내부 공문을 통해 삼성전자의 백혈병 피해 근로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가 보조 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지역본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피해자 가족들은 19일 오후 2시, 신영철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은 근로복지공단 건물에서 하루를 꼬박 지샌 뒤에야 신 이사장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만남에서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돌아서야만 했다.

"이사장님, 우리 혜경이 몇 번 보셨죠? 저는 이사장님한테만 잘 보이면 되는 줄 알고 이사장님께 엎드려 절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우리 딸 혜경이랑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딸 치료만 좀 잘 받게 해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

본래 법과 제도는 이들을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 지난 5월, 김시녀씨가 재심사청구를 하러 공단에 찾은 날의 일화를 말해 주었다. 공단 직원들과 피해자 가족들과 전단지 게시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공단 직원 한 명이 "대리석 상처난다"며 전단지를 붙이지 말라고 했다. 김시녀씨는 "내 새끼는 대가릴 갈라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목까지 갈랐는데... 그까짓 대리석이 문제냐. 이 얘기를 듣고 서러워서 한 동안 이종란 노무사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말했다.

"SBS에 <동물농장>이라는 프로 있잖아요. 거기 보면 위험에 빠진 개도 구해주잖아요. 그런데 일하다 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개만도 못 한 건가요? 우리 사회가 그럼에도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나요?"  

2010년 '공정사회'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단상

 반도체의 날 퍼포먼스 모습.
 반도체의 날 퍼포먼스 모습.
ⓒ 반올림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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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일부로 산업재해보상법 시행규칙에 따라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병판정위)를 근로복지공단에 설치했다. 질병판정위는 업무상의 질병판정을 신속·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그러나, 지난 6월 한국노총이 공개한 '연도별 심의대상 질병 요양결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업무상질병 산재 요양신청을 한 1만33건 가운데 불승인된 비율이 60.7%(6천89건)에 달했다. 질병 판정 업무의 신속·공정한 판정을 위해 세워진 기관이 오히려 산재승인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질병판정위의 산재 승인 판정은 5~10분 이내에 끝나는 졸속 판정의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질병판정위 내에 병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산업의학과 의사들의 비중이 늘어나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과 같은 경우, 산재 승인 판정에 협소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사회보험제도의 목적에 맞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반도체 사업장과 백혈병 발병과는 통계적인 유의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업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애써야할 고용노동부도, 근로복지공단도, 결국 아무도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황유미(1985~2007), 박지연(1987~2010), 김경미(1980~2009), 황민웅(1975~2005), 이숙영(1976~2006) 등등. 이들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온양공장에서 근무했으며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젊은 나이에 힘없이 스러져 간 이들, 죽어서도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사연은 '공정사회'를 외치는, 2010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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