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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가명·24)씨는 청년실업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씨는 지난 2008년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간 편의점에서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다 그만 둔 상태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청년실업 방안을 마련한다고도 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뉴스도 연일 보도됐지만, 지방 2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씨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사, 커피, 심부름 등 잡일만 해야 했던 행정인턴제도는 일회용 일자리에 불과했고, 정부가 새로 내놓은 청년인턴제나 청년창업 등 '청년 내 일 만들기'의 경우, 2년제 대학을 나온 이씨가 끼어들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이씨는 '청년 실업시대'라는 현실과 지방 전문대 졸업생인 자신의 처지만 재확인해야 했다.

서울 소재 학생들 만나면 작아지는 영아씨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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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졸업한 학교는 '전국에서 취업률이 가장 높은 학교'라고 홍보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씨 동기들은 기껏해야 비정규직, 인턴으로 취업했고 정규직인 경우도 카페 직원, 텔레마케터가 전부였다. 이씨가 처음 취직한 곳은 대기업 소속의 편의점이었다. 회사는 강남에 있는 계열사 편의점에 지점장 자리를 내주겠다며 이씨를 서울로 파견했다. 그렇게 이씨는 '강남 편의점'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150만 원을 받았다.

이씨가 '강남 편의점'으로 출근하고 한참 뒤, 회사에서는 영업직 사원을 보냈고 그에게 편의점 운영관리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일을 가르쳐 준 것은 이씨 쪽이었다. 영업직 사원은 무슨 일이든 이씨에게 물어봤다. 실전에서 일을 배운 이씨에 비해 공채로 들어온 사원은 일에 능숙하지 않았다. 이씨보다 늦게 입사했고 직급도 더 낮았다. 그러나 이씨에 비해 연봉이 50%가량 더 많았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졸자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서울 소재 학생들을 만나면 주눅 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최근 편입을 결심했다. 어디라도 좋으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는 "지방대를 나와 연 2천만 원을 벌었다면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해 연봉 3천만 원을 벌 거"라고 했다. 그가 편입하려면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 붓는 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

"공정? 공평함? 서울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이미 다 짜여진 인(IN) 서울 판에 들어가야 하는데, 싫어도 따라가야지 어쩌겠어."

소개팅 하는데도 학벌이 중요하다고?

학벌로 인한, 공정하지 못한 '부당한' 대우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무의식에서도 느껴진다고 한다.

한영은(가명·25)씨는 남자친구를 소개 받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처음 하는 소개팅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대학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방은 대구에 있는 한 국립대 학생이었다. 상대방이 한씨에게 질문했다.

"학교 어디 나왔어요?"
"전라도에 있는 J전문대요."

순간 상대방의 표정이 달라졌다. 학교 이름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분위기는 얼어버렸다. 나중에 주선자에게 "상대방이 '딱히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전해 들었다.

한씨는 "사람들이 아닌 척 내숭을 떨어도 전문대 출신에 대해서 무시하는 감이 조금씩 있는 것 같다"며 "일부러 무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도 언제나 그런 상황이 닥치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한씨는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얕잡아 본다는 느낌이 들면, 유학 차 일본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버릇이 생겼다. 한씨는 "선진국에서 공부한 경험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학벌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고 씁쓸해 했다.

"난 88만원 세대에서도 소외되었다"
 <88만원 세대> 겉그림.
 <88만원 세대> 겉그림.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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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신에 따라 '학벌사회'를 뛰쳐나온 이들도, 여전히 '학력차별'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에 상처받고 있었다.

일찍이 고등학교를 접고 꿈으로 뛰어든 김민수(가명·25)씨. 그는 17살이던 2001년 과감히 자퇴서를 냈다. 그리고 장애인 생활보조, 고시원 총무를 하며 몇 편의 독립영화를 제작했다.

그렇게 자신이 가고자 하던 길을 가던 그는 지난 6월 '타블로 학력 위조설'에 대해 동료 감독과 이야기하던 중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학벌주의는 싫지만… 그래도 연출부 중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영화과 졸업생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니? 현장에 있는 연출부원 모두 지방대 출신이라, 일을 빠릿빠릿하게 못한 것 같아. 학벌이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닐 거야."

지금껏 지방대를 나온 연출팀과 아무 문제없이 촬영을 해 온 김씨는 감독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감독이 김씨에게 자신의 경험을 학벌에 기대 보편적인 사실처럼 말할 수 있었던 건, 대학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그가 그만큼 학벌로부터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영화판이든 회사든 원서를 넣기만 하면 떨어졌고, 그 이유를 "대학을 안 나와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실상 자유로운 게 아니라 학벌사회에서 아예 열외된 상태였던 것이다.

김씨는 자신이 "88만원 세대에서도 소외되었다"고 말했다.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대학교육과 신자유주의 시대 속의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대학생이 '88만원 세대'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작 88만 원도 벌지 못하는 김씨는 '88만원 세대'의 목소리에 함께할 수 없었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김씨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대학이라는 타이틀인지도 모른다. 김씨는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시선과 이름을 갖기 위해서는 일단 모두 대학에 진입하거나 대학이 없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항조차 명문대생이 독점한 사회, 대한민국

최근 '공정사회'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때문일까. 이 유행어를 만드신 대한민국 CEO 대통령 이명박은 학력 차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공정한 청년실업', '공정한 학력차별'. 이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는 '공정사회'는 유행어가 아닌, 구체성이 실현될 때 만들어진다. 이를 테면, '학력차별 철폐'와 관련한 다양한 대안을 소통하는 것 말이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의 이름 앞에 출신 대학이 호명 당하는 건 지독한 학벌사회의 풍토 때문이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열외 되거나 비주체로 대우를 받고 있다.

단적으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23세에 생을 마감한 고 박지연씨의 투쟁은 한 명문대생의 '대학포기' 선언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저항조차 '명문대생'이 독점한 사회에서 자퇴할 대학도 가지지 못한 청년, 88만 원을 벌지 못해도 '88만원 세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청년, '지잡대'에서 인(IN)서울을 꿈꾸는 청년은 언제나 사회의 벽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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