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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241GP에서 사망한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사건 당시 발견 된 김 중위의 현장사진을 보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241GP에서 사망한 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지난해 10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사건 당시 발견 된 김 중위의 현장사진을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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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년이 지났습니다.

1998년 5월 어느 날,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상근 간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기 위해 당시 50대 후반의 단정한 신사가 인권위원회를 방문했습니다. 말하는 어투나 눈빛이 남다르다 여겼는데, 후에 알고 보니 아들 김훈 중위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불과 넉달 전, 별이 세 개나 되는 중장으로 36년간 군에 복무했던 육사 출신 장군이었습니다.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식을 잃은 그 고통과 상처가 어떠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조목조목 자신이 느끼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토로했고 그는 다만 억울함이 없는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김훈의 죽음이 적어도 국방부의 주장처럼 자살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에 우리가 아버지에게 주문했습니다.

"이런 사건은 보다 많은 이들이 알아야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MBC <PD수첩>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일순 당혹해 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안 된다는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통상 거의 대부분의 민원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언론 보도를 바랍니다. 거절하는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일평생을 바친 군을 사랑하기에, 그래서 그 국방부의 일부가 벌이고 있는 잘못 때문에 전체 군이 국민들에게 매도당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보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눈과 입술이 떨리는 모습을. 이것이 정말 아들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그 수없는 내면의 갈등 앞에서 난감해 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을 저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짝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그리고 우리도 몰랐습니다. 그 후 이 사건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될 줄 말입니다. 이 사건 전반에 깔려있는 너무나 명백한 여러 의혹에 대해 조금만 더 세밀하게 바라본다면 국방부 역시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12년간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조사만 공식적으로 모두 5번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건군 사상 최초의 1999년 '특별합동조사단'을 비롯한 군 수사 3회, 그리고 '국회 국방위원회 진상 소위원회'와 2009년 12월 마무리된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까지 지난 12년간의 세월은 참으로 모질고 험난한 진상규명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12년간의 싸움속에서 아버지는 '제대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군에 대해 가진 신뢰, 그 믿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짝사랑이었는지 말입니다. 자신이 청춘을 바친, 또 자신의 뒤를 이어 자랑스런 군인이 되겠다며 육사에 지원한 아들을 말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고도 했습니다.

육사 졸업식 날, 자신의 손으로 임관하는 아들의 군복에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던 그 순간이 너무나 아프게 떠오른다는 그 아버지의 눈에선 슬픔과 고통이 담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이 지난 12년간 함께 지내면서 제가 본 장군의 눈물이었습니다.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장소에서 '눈물'을 봤다?

 고 김훈 중위의 모습
 고 김훈 중위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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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요. 육사 총동창회와 재향군인회가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김훈 중위의 죽음에 여러 의혹이 있다는 의견을 살펴보고 논의한 결과, 유족 측의 입장에 일리가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김훈 중위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여러 국가기관의 의견도 중요한 참고사항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국방부측의 자살 정황 주장이 군의문사위 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8년 국방부 특조단은 김훈 중위가 사망한 당일 오전 6시경,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목격했다는 사병의 진술을 근거로 '이것이 자살의 정황'이라고 했습니다.

또 소대장실에서 발견된 한 권의 책을 근거로 들기도 했습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로도 알려져 있다)이었습니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이 책을 읽은 후 '합리적인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김훈 중위의 눈물을 봤다는 사병의 증언은 처음부터 의아했습니다. 그 사병이 김 중위를 봤다고 하는 그날, 그 시각, 그 장소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때였던데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특조단이 공개한 목격 사병의 진술서에는 '김훈 중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라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흘러내린 것도 아닌, 그저 글썽이는 수준의 눈물을 어두운 그 새벽에 봤다는 것은 억지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방부는 그것이 '자살의 징후'라고 우겼습니다.

결국 군의문사위의 조사결과, 당시 목격 사병은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은 국방부에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며 김훈 중위의 눈물 역시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 필요했던 누군가에 의해 증언이 조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의 주장을 '자살 정황' 중 하나로 여전히 고집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해석은 더 기가 막힙니다. 수백만 부가 팔린 이 책을 읽은 후 합리적인 자살을 생각했다는 문학 평론은 아마 이 나라 국방부 특조단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반박한다면 국방부가 외면한 또 한권의 책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발견된 김훈 중위의 같은 책상 위에는 몇 권의 책이 더 있었는데 당일 펼쳐진 책은 <3분으로 여는 아침 성공 체크>였습니다. 국방부 논리대로 본다면 오히려 김훈 중위는 정말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휼륭한 초급 장교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전혀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유치한 대응을 하게 만드는 국방부가 참으로 야속합니다.

육군의 '확인 사살'... 김훈 중위 또다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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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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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구구절절한 김훈 중위에 대한 야속한 난도질은 지난 12년간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 12년간 김훈 중위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곁에서 지켜본 제 가슴팍을 다 적시고도 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9년 1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특별합동조사단이 주최한 김훈 중위 사인 규명을 위한 '법의학적 공개토론회'장에서 어머니가 외친 그 울부짖음은 아직도 제 귀를 쟁쟁하게 울립니다.

어렵게 마련한 진상규명의 기회에 아들 김훈의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던 어머니는 그날, 참담하게 무너집니다. 국방부가 자살 소견을 가진 국내 법의학자 등 7명과 유족이 추천한 단 한 명의 타살 소견 법의학자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조직, 이 자리에서 법의학 역사상 다시 보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표결 방식으로 '자살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에 총을 쏴서 실험해 주십시오. 나는 내 몸을 자식에게 바치겠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가 토론회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며 울부짖던 그 절규에 저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은, 당시 자살이라며 결론 내린 국내 법의학자라는 사람들은 권총 사망사건을 단 한 건도 다뤄보지 못한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비전문가들이 내린 이날의 표결 결과를 국방부는 오늘까지도 김훈 중위에 대한 '대단한 자살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국방부가 오는 23일(화),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또다시 육군의 재심의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육사 총동창회(회장 오영우 육군 예비역 대장)가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국가기관 세 곳의 조사 결과에서 김훈의 사인이 자살은 아니라고 결론내리자 이를 근거로 김훈의 순직 처리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재심의 결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을 김훈 중위 아버지에게 알려준 날이 11월 9일입니다. 발표 전까지 이런저런 사실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결론을 내려 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23일 개최될 재심의는 그야말로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너무나 친절한 국방부를 탓하면 안될까요? 공식적인 결론 이전에 미리 찾아와 자살 처리를 귀띔하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국방부 처사에 아버지의 가슴은 또다시 찢어집니다.

12년 전 그때나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어쩌면 이리도 국방부는 변한 것이 없을까요. 정권이 세 번 바뀌고 국방부 사람들도 바뀌었는데 정말이지 변한 것이 너무 없는 국방부의 사건 처리 방식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물론 이 사건을 처리한 당시 주요 인사들은 지금 더 높은 직급의 책임자로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김훈 중위 사건이 '사실 관계보다는 꼭 자살이어야 한다는 억지가 계속되는 이유'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소한 잘못은 있으나, 결론은 문제 없다는 국방부

무 자르듯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자살의 입증 책임은 온전하게 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2년 동안 국방부와 김훈 중위 사인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싸워오면서 국방부의 참으로 이상한 고집 때문에 난감했습니다.

도대체 국방부가 김훈 중위에 대해 자살이라고 고집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국방부의 1, 2차에 걸친 부실한 군 수사는 결국 특조단의 출범을 야기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조단이 구성되어 재조사하게된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 규명을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기존 결론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시 눈물을 목격했다는 엉터리 진술 확보와 인근 부대 경비병에게 총성을 듣지 못했다는 '총성 미청취 각서'를 쓰도록 요구하는 등의 진실 은폐 의혹입니다. 군 의문사위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같은 특조단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과정상에서 소소한 잘못은 있으나 자살이라는 기존 수사 결과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유족은 군 수사관을 포함하여 경찰과 검찰, 그리고 민간 전문가까지 모두 참여한 가운데 내려진 결론인 군 의문사위의 '진상규명 불능'에 대해 국방부가 수용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강하게 항의합니다.

늙은 부모는 얼마나 더 고통을 겪어야 할까요

대를 이어 군을, 그리고 조국을 사랑했던 김척 예비역 중장의 가족은 이제 더 이상 '자랑스러운 군인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버린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국방부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겁니다.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역 장성의 자식이라서 다른 일반 사병과 다르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서 억울하지 않게 대해 달라는 것이 지난 12년간 김훈 중위 가족의 한결같은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기대는 늘 무너졌습니다. 합리적인 토론장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내린 결론은 군사작전의 그것처럼 늘 지켜야 하는 성역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보낸 12년 동안 그 가족들의 눈물은 법정에, 부대에, 그리고 낯선 거리 곳곳에 무수히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23일, 육군이 김훈 중위 사망 재심의 결과라며 또다시 내릴 '자살 처리'에 그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의 입술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20대 청춘부터 50대 후반까지 월남 파병 등 전쟁터와 야전 사령관으로 30년이 넘도록 충성했던 이 나라와 국방부를 상대로 그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전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7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50대 후반의 신사에서 이제는 늙은 아버지가 되어 제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 충성하던 늙은 노병을 상대하는 대한민국 국방부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의 이익으로 하라'는 법 격언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명확하게 자살을 입증하지 못했고 국가기관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김훈 중위의 사인은 결코 자살로 예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벽제의 군 영현실에 12년째 방치된 고 김훈 중위와 그 늙은 부모가 이 모진 고통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지 제 가슴은 다시 먹먹해집니다.

김훈 중위가 묻습니다. '저는 정말 어떻게 죽은 것인가요?' 23일, 국방부가 또 다시 답한다고 합니다. '너는 자살이라고….' 그러면 또 다시 우리가 묻습니다. 정말 국방부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이냐고. 이렇게 우리는 또다시 싸울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천천히, 또박 또박, 그리고 집요하게. 아버지 김척과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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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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