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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족예술인총연합회 박충의 회장(왼쪽)과 인천민족미술인협회 김재석 사무국장이 김 작가의 그림 '누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인천민족예술인총연합회 박충의 회장(왼쪽)과 인천민족미술인협회 김재석 사무국장이 김 작가의 그림 '누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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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은 내가 주변에서 바라보고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 중심에는 '쉰 살'이 있다. 인간의 삶에는 시간의 한계가 있고 그 안에서 육체 또한 그 궤를 같이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안하고는 별개로 그 한정된 시간이 배인 육체의 모습은 시대를 담고 있다. 이제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 내 안의 작가적 정체성을 찾아, 나이 듦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인천지회(이하 인천민예총) 미술위원회(인천민족미술인협회·이하 인천민미협) 김재석(47) 사무국장은 이번 3회 개인전을 하면서 "그동안의 현장·노동미술의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며 순수한 내면의 정체성을 다시 회고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낸 김재석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쉰 살을 살다'가 18일부터 24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인천민미협의 2010 정기전 '인천의 몸'도 함께 진행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김정현 작, '힘들다. 1-2'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서방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김정현 작, '힘들다. 1-2'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서방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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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작, 삼성노조 김성한. "무노조가 기조라는 삼성에서 노동운동을 한다."
 김재석 작, 삼성노조 김성한. "무노조가 기조라는 삼성에서 노동운동을 한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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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미술학도였던 김재석은 전북 정읍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1970~80년대)의 시대상은 참으로 어두웠고, 생활은 그야말로 하루를 연명하기에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그는 노동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공장과 건설현장을 돌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85년도에 남들보다 늦게 미술학도가 됐어요. 하지만 미술을 배우기보다는 근근이 등록금 내고 생활을 유지하느라 노동현장에서 뒹굴 때가 더 많았지요.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예술 한다고 하면 왠지 부유층의 취미 같고, 뜬 구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많아 적잖이 방황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고 나서 보다 더 생산적이고 쓸모 있는 일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노동자들의 현장 곁에서 그들의 삶을 표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장 활동을 하느라 40세 때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김 작가는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가시밭길 같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이라고 넌지시 전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돌아오는 현실의 무게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삶을, 새로이 방점을 찍고 그들의 순수한 내면적 삶 속에서 다시 재조명해보자는 이야기다. 사람 만나는 것이 제일 쉬었다는 그의 말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의미를 함께 전하는 듯했다.

현장 리얼리즘(현실주의)의 단초를 보다

김재석 작, 모란꽃이 핀다. "이미영. 기륭전자 지회 노조원. 막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6년여 동안의 엄청난 시련을 싸움을 이기고 정규직으로 복직을 했다."
 김재석 작, 모란꽃이 핀다. "이미영. 기륭전자 지회 노조원. 막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6년여 동안의 엄청난 시련을 싸움을 이기고 정규직으로 복직을 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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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작, 문정현 신부 "길 위의 신부. 그 뒷 모습에서 삶의 실천을 배웁니다."
 김재석 작, 문정현 신부 "길 위의 신부. 그 뒷 모습에서 삶의 실천을 배웁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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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작,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신현창 지회장. "1000일이 넘는 천막 농성을 지켜내며, 원직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석 작,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신현창 지회장. "1000일이 넘는 천막 농성을 지켜내며, 원직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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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지엠대우 비정규직회의 신현창 지회장을 그린 '1000일 묵은 천막주인'과 기륭전자에서 함께 동고동락을 해온 시인 송경동의 자화상, 무노조가 기조라는 삼성에서 노조운동을 펼치는 김성한 조합원의 초상, 기륭전자 이미영 조합원을 그린 '모란꽃이 피다', 종교인이면서 노동운동가인 문정현 신부를 그린 '길 위의 신부' 등을 담아냈다.

현광인 민예총 정책위원은 그의 서평 '현장 리얼리즘의 단초를 보다'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본 한 미술교사는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작품에 그려진 인물들의 자세는 그리기가 어려운 포즈라는 것이다. 즉 작품은 미술적 구도에 근거하여 이미 설정된 선에 따라 그려져야 하는데 김 작가의 초상들은 기존의 구도로는 그려내기 어려운 선(線) 작업이라는 것이다"라고 한 뒤 "다시 말해 작가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노동자형상을 찾아내어 그 자체를 화폭에 담아내려 한 것이다. 그의 작업 태도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의 형상을 현실 그 자체에서 탐구하려 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 위원은 "그가 찾아낸 것은 노동자 개개인의 타자적 속성이다. 노동자의 타자성은 노동자적 집합체에 대해서 이질적인 것, 낯선 존재이다. 작가는 노동자의 타자성을 얼굴에서 찾고 있다"며 "즉, 노동자 내부에 상실과 구원, 묵인과 갈등, 예속과 자유 등을 모두 담고 있다. 작가는 자본에 의해 집요하게 대상화된 노동자에게서 타자의 몸짓과 시선을 찾아내고 있다. 그가 그린 얼굴과 표정 그리고 눈빛은 노동자의 타자성을 사건의 현장에서 포착한 것들이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현 위원은 그를 보고 '현장리얼리스트'라고 명명한다. 이유인즉슨, 현장에서만이 노동자의 타자적 속성을 포착할 수 있으며, 그 외의 어떤 재현방식도 타자의 사건적 속성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며 그는 "그것이 바로 현장의 특이성이다. 이것이 전형성의 리얼리즘과 식별되는 지점이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김재석 작, 건설노동자.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촛불집회를 하고 있었다. 햇볕에 화상을 입어서 붉어진 팔, 그 위에 썬크림을 대충 발라져 있었다."
 김재석 작, 건설노동자.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촛불집회를 하고 있었다. 햇볕에 화상을 입어서 붉어진 팔, 그 위에 썬크림을 대충 발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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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한 작, '사학우책탑도. 디지털프린트 2010' "우리 아이들은 이 늦은 밤까지 무엇을 이고 있을까요?"
 정평한 작, '사학우책탑도. 디지털프린트 2010' "우리 아이들은 이 늦은 밤까지 무엇을 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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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미술공부를 하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 김 작가는 현재 삼산동 지역주민과 함께 공공예술의 문턱을 낮추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보듬어주려 하고 있다. 늙는 다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삶을 순응하려는 그의 마지막 꿈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한 길(=현장·노동미술)을 고집하면서도 진정 내 것이 되지 않으면 남에게도 보일 수 없다는 원칙으로 살아왔습니다. 작가적 역량과 전문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현장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죠. 이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그림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일상의 힘듦보다 더 깊은 절망을 이겨내고 환하게 웃는 노동자의 미소를 생각하며, 이제는 어둡고 무거운 그림보다는 밝고 예쁜 그림으로 관객과 호흡하고 싶습니다."

김재석 작, 청계상가에서. "청계상가에서 짐을 나른다. 오랜시간동안 그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아드님 또한 이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무릎이 아파서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모델료라고 5만원을 드리니 받지 않으셨다. 아주 극렬하게 사양하신다. 담배라도 사 피시라고 하니 2만원만 달라고 하신다."
 김재석 작, 청계상가에서. "청계상가에서 짐을 나른다. 오랜시간동안 그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아드님 또한 이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은 무릎이 아파서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모델료라고 5만원을 드리니 받지 않으셨다. 아주 극렬하게 사양하신다. 담배라도 사 피시라고 하니 2만원만 달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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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작, 이찬영 "그가 이야기를 하면 뭐든지 시원해진다. 주변 사람들을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한다. 자바르떼 인천 지부장을 하고 있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한 여인의 남편이고, 술을 무척 사랑한다."
 김재석 작, 이찬영 "그가 이야기를 하면 뭐든지 시원해진다. 주변 사람들을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한다. 자바르떼 인천 지부장을 하고 있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한 여인의 남편이고, 술을 무척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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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석 작, 시인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을 들어보자. 이 시대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다. 그를 보는 것은 편하지가 않다. 그곳에는 언제나 함께 들어야 할 짐이 있기 때문에...그는 44살이다."
 김재석 작, 시인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을 들어보자. 이 시대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다. 그를 보는 것은 편하지가 않다. 그곳에는 언제나 함께 들어야 할 짐이 있기 때문에...그는 44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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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천민미협 정기전 '인천의 몸'에서는 ▲고창수의 '비오는 거리' ▲김영옥의 '열우물 풍경' ▲류우종의 '가난이 그들을 죽인다' ▲박충의의 '소나무 숲' ▲성효숙의 '대우 비정규직 3년째 천막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예술치유 후 퍼포먼스' ▲정평한의 '사학우책탑도' 등 18점의 작품을 담아냈다.

전시장에서 만난 인천민예총 박충의 회장은 "오직 한 길만을 걸으며, 진정 민중적 삶의 애상을 노래했던 우리 작가들이 이제 일상의 터전에서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려한다"며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교육을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민주적 의제들로 대중과 호흡하려한다. 문화예술은 더 이상 작가들만의 것이 아닌 주민과 함께 상생을 노래할 수 있는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이진우 작, 기찻길 옆 열우물 공장 풍경
 이진우 작, 기찻길 옆 열우물 공장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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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의 작, 소나무 숲
 박충의 작,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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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부평신문> / 참조.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를 전공한 김재석 작가는 92년 해맞이 그림전, 93년 현장 미술전, 95년 황해 미술전, 2003년 '노동 미술전', 2005년 '항쟁미술 전국순회전', 2006년 함께사는 세상을 위하여-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전국순회전, 2007년 코리아 통일 미술전, 2008년 기륭전자 1000일 투쟁 기념 걸개그림 제작기획, 2009년 끝나지 않은 전시-사람아(용산 레아), 노동미술 굿, 2010년 높빛 평화예술제-평화를 상상해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태그:#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인천민족미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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