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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은 젊은이답지 않게 토종 입맛을 갖고 있다. 갓 버무린 생김치, 나물, 전, 된장국. 어려서부터 어른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잘 먹는 바람에 할머니, 할아버지 귀염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모처럼 시골집에 아들이 내려온다기에 반찬 장만을 했다. 전이나 나물은 후다닥 만들 수 있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생김치까지 담는 것이 영 귀찮아졌다. 그래서 광주에서 김치 맛 좋기로 소문난 아줌마 집에서 두어 쪽 사서 참깨 듬뿍 얹어 밥상에 놨더니 아들이 얼른 한 젓가락 집어먹고는 품평을 늘어놨다.

"맛있는 생지다. 그런데 이 맛이 아니야.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생지 맛이 최곤데... 엄마는 왜 할머니한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놓지 않으셨어요? 나는 김치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나. 아~ 정말 우리 할머니 표 생지 먹고 싶다."

작년산 묵은지. 폼은 그럴듯하다만 어머니표 맛이 아니란다.
 작년산 묵은지. 폼은 그럴듯하다만 어머니표 맛이 아니란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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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청김치. 미식가인 아들한테 점수 따려고 무청김치도 담갔다.
 무청김치. 미식가인 아들한테 점수 따려고 무청김치도 담갔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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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해주신 반찬에 길이 든 아들. 중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할머니 표 김치 맛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으니. 이 맛이 아니라고 한탄을 하는 아들놈을 보자니 28년 전이 생각난다.

아마도 결혼 한두 달 후였을 거다. 집들이 명목으로 단칸 신혼방에 남편의 후배들을 초대했다. 그때만 해도 부엌과 요리하고는 친하지 않았던 때라 엄마한테 SOS를 쳤고 김치를 비롯한 반찬 몇 가지를 친정엄마가 해서 보내주셨다.

하여튼 엄마가 해주신 반찬에다 찌개와 불고기까지 곁들여 한 상 차리니 그럴듯한 손님상이 되었다. 초대받은 후배들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접시마다 추가를 신청해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후배가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 먹는다며 김치 한 보시기를 깨끗이 비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이 혀를 끌끌 찼다.

"허어~ 이 김치가 맛있다고? 너 서울 오더니 입맛 다 버렸구나."

남편의 그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장모님이 해주신 김치인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내 앞에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가. 각시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절한다던데 아무리 장모님 표 김치 맛이 별로라도 절은 못할지언정 저렇게 말을 하냔 말이다. 결혼 몇 년 차도 아니고 겨우 몇 십 일차 새 사위 주제에 말이다. 지금 같으면 후배 아니라 후배 할배 앞이라도 작살을 낼 텐데 그때는 너무 얼떨떨해 충격만 받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해 김장철이 왔다. 엄마가 또 우리 먹을 김치를 담가 보내셨다. 경기도 태생인 우리 엄마는 김치에 멸치젓을 쓰지 않는다. 새우젓, 황석어젓을 적당히 섞어 시원하게 담는 것이 특징인데 워낙 솜씨가 좋으셔서 친척들은 우리 엄마가 만든 김치를 제일로 칠 정도다.

엄마가 김치를 보내주신 다음에 이번에는 시어머님이 김치를 담가 오셨다. 얼마나 양념을 많이 했는지 배추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빨갛게 무장한 김치. 전라도 김치의 진수를 처음 대면했으니 얼마나 기가 질렸겠는가. 어마어마한 김치 양념에 차마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밥상에 앉으신 어머니가 우리 엄마가 해주신 김치를 힐끗 보시며 한 번 집어 잡숫더니 "맛도 뭣도 아니고마. 서울 김치는 찌개를 끓여도 맛이 없어야" 이러시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사돈이 해 온 김치를 그것도 며느리 앞에서 이렇게 깔아뭉개다니. 어머니와 남편 두 모자의 무례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입맛이란 게 간사해서 결혼 몇 년간은 어머니 표 김치에 적응을 못했는데, 살다보니 전라도 김치가 갈수록 맛있어졌다. 엄마가 해주신 김치는 처음 한두 달은 시원하고 맛있는데 봄이 오면 한번에 맛이 가버리는 것 같았다. 전라도 김치에 입맛이 길들여져 나중에는 엄마가 김치를 주겠다고 하셔도 손사래를 칠 정도까지 되었다.

반면에 어머니 표 김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고 구수해졌다. 2년산 묵은지, 3년산 묵은지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때 알게 되었다. 배추김치를 비롯해 갓김치, 알타리김치, 쪽파김치... 구수한 멸치젓을 듬뿍 갈아 넣은 다음 생새우, 새우젓을 첨가한다.

어디 그뿐이랴. 청각, 갓, 쪽파, 미나리, 무채, 마늘, 생강 갖은 양념에 다진 돼지고기까지 볶아 넣은 뒤 걸쭉한 찹쌀죽을 섞어 고춧가루와 버무리면 그야말로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김장양념이 완성된다.

어머니가 해주신 찐~한 전라도 김치는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날과 함께 영영 이별이 되었다. 어머니가 김장하실 때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보긴 했지만 어머니 맛은 도저히 재현할 수가 없었다.

김장을 할 때마다 남편이 타박을 했다. 김치를 푹 절여야 하는데 왜 배추줄기가 살아나도록 싱겁게 간을 했느냐, 양념은 왜 이렇게 허옇게 하냐? 잔소리 백단이다. 그런데도 할 말이 없는 게 내가 봐도 전라도 김치는 아니거든. 멸치젓을 많이 넣긴 하는데 어머니가 하신 김치처럼 맵고 짜고 구수한 그 맛. 그 맛이 실종된 것이다.

대충 서울 플러스 전라도식이라고 할까? 약간 구수하고 약간 시원한 맛. 그런데도 내 김치 맛을 본 지인들은 너무나 맛있다고 조금 나눠달라고 야단을 했다. 전라도 김치처럼 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울 김치처럼 맹맹하지도 않은 맛이 입맛을 당긴다는 것이다. 다만 오직 한 사람, 남편 입맛에만 안 맞는다니 정말 골치가 아팠다.

텃밭의 배추. 배추값이 금값이라고 난리를 쳐 마당의 빈 땅 촘촘히 심은 배추.
 텃밭의 배추. 배추값이 금값이라고 난리를 쳐 마당의 빈 땅 촘촘히 심은 배추.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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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올해부터는 배추 간을 할 때부터 옆에 달라붙어 감수를 하겠다고 나섰다. 무조건 짜게, 멸치젓 왕창 넣은 양념폭탄. 남편이 원하는 김치 스타일이다. 김장을 할 때 제일 난제는 어머니가 쓰시는 양념 종류는 통달을 했는데 과연 그 양을 얼마만큼 넣어야 적당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광주에서 유명한 김치 명인 할머니를 소개받았다. 평생 김치장사를 해 번 돈으로 육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는 할머니신데 그 할머니 장점이 사철 만드시는 김치 맛이 일정하다는 데 있단다.

손맛도 손맛이지만 계절에 따라 배추 절이는 소금의 양과 절이는 시간을 달리하고 양념의 양 또한 배추의 양에 맞춰 넣는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의 레시피를 빌려왔다. 이번 김장에 참고하시길.

김장김치 맛있게 담는 법

배추 약 50~60포기

소금 : 5포기에 소두 1되
마늘 : 반 접
고춧가루 : 10 포기당 2근
쪽파 : 큰 단으로 한 단
갓, 청각, 미나리 고명 정도로 적당량
무 : 서너 개 (무채)
멸치젓 : 식성에 따라 조절
생새우 : 2만원어치 (아마도 2Kg쯤?)
새우젓 : 만 원어치 (둥근 플라스틱 한 통 정도?)
찹쌀 죽 : 소두 1되 반
양파, 배 : 4~5 개
멸치, 다시마

배추 절이는 법
1) 간간한 소금물에 배추를 적신 후 배추 밑둥 포기 사이 사이에 소금을 뿌린다.
2) 3시간쯤 뒤 배추를 뒤집어 세로로 세운다(줄기가 잘 절여지도록).
3) 2시간마다 한 번씩 고루고루 절여지도록 배추 위치를 옮겨준다.
4) 겨울에는 8~9시간 절이면 된다.

양념 만드는 법
김장 하루 전에 멸치육수를 만들어 고춧가루를 풀어놓는다.
(다시멸치, 다시마, 무, 양파, 생강 등을 넣고 끓인 육수)
갖은 양념에 야채 썰어놓은 것을 섞고 찹쌀 죽, 젓갈류를 넣어 버무린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고루고루 바른다.


태그:#김장 김치, #전라도식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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