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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청소년 뮤지컬 영화 <풋!고추 이야기>의 김수랑 감독(오른쪽)
 한국 최초의 청소년 뮤지컬 영화 <풋!고추 이야기>의 김수랑 감독(오른쪽)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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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울지 않았다. 작년 제9회 퍼블릭액세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고 평펑 울었던 그 소년이다. 생애 첫 상에 감사드린다며 울던 열정 가득, 재능도 가득, 그리고 오기도 가득했던 열일곱의 소년. 예정에 없던 특별상을 주느라 심사위원들이 심사비를 모아 상금을 마련했다고 하니, 어쩌면 대상보다 더 소중하고 특별한 상이었을 것이다.

그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소년은 올해 통통 튀는 청소년 뮤지컬 영화 <풋!고추 이야기>를 들고 다시 퍼블릭액세스를 찾았다. 뮤지컬이란 장르를 고등학생이 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신통한데, 나름대로 치밀하고 치열했던 제작과정을 들으니 점입가경이다.

소년은 뮤지컬 영화 뿐 아니라 10회 퍼블릭액세스의 트레일러 영상을 만들고, 폐막식에서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청소년이 영화를 찍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작은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했다. 소극장 무대를 꽉 채운 이들의 공연이 끝나자 폐막식에 모인 관객들은 열광했다. 소년과 친구들 덕에 폐막식은 그 어느 해보다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작품상에 소년의 이름이 불리자 출연배우이자 그의 친구들은 흥에 겨워 난리를 쳤고, 작은 소극장은 그들의 환호로 통통거렸다. 퍼블릭액세스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스타가 될 것 같은 예감. 이 소년 김수랑(인천 계양고2), 참 물건이다!

소년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청소년이 만든 첫 뮤지컬 영화 <풋!고추 이야기>는 제10회 퍼블릭액세스 청소년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각본, 제작, 연출, 편집, 안무, 연기지도까지 영화 전반을 종횡무진하며 장악한 이 특별한 씨네키드의 일취월장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풋!고추 이야기>는 어떤 영화인가?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얘기를 재치 있게 해보고자 했다. 단,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 또래 여자와 남자들이 상대방에게 가진 성에 대한 편견, 어른들이 우리들에 대해 가진 편견들에 대해 뮤지컬이란 형식으로 솔직하게 풀어본 영화다."

- 청소년이 제작한 첫 뮤지컬 영화라 인상 깊다. 제작기간이 얼마나 걸렸나?
"올해 7월부터 석 달 동안 준비했다. 7월 17일 스태프와 배우들 오디션으로 시작했다. 8월 말까지 동네에서 40평짜리 연습실을 빌려 연습했다. 학교에 영상동아리도 없고, 어디 소속된 팀이 아니어서 장비도 하나도 없었다."

- 오디션을 봐서 스태프와 배우를 뽑았다고? 놀랍다. 알음알음 친구들을 모아 배우와 스태프를 충당하는 게 보통인데 어떻게 그런 구상을 했나?
"원래 무용을 좋아했고 영상은 취미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전문적으로 찍는 법을 모르니 촬영스태프는 경험이 있는 친구들로 뽑았다. 조연출과 함께 스태프 3명 먼저 뽑고 배우 40명을 뽑기 위해 포스터를 2천 장 만들어 인천 시내에 일일이 붙이고 다녔다."

포스터 인쇄할 돈이 없어 인쇄소 사장님을 설득해서 협찬가로 아주 싸게 찍은 이야기며, 여학교에서 쫓겨날 뻔한 이야기 등 오디션을 하기까지 눈물겨운 고생담이 이어졌다.

"학교로 포스터를 보내면 붙여주지 않을 것 같아서 직접 붙이고 다녔다.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교실마다 다니면서 붙였다. 여학교에서는 쫓겨나기도 하고. 다행히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주셔서 크게 도움이 됐다."

- 교장선생님은 어떻게 설득했나? 인문계라서 영화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학교에 아무런 시스템이 없어서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다. 면담을 하게 됐다. 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내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그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며 격려해 주셨다. 다른 학교에 우리 포스터를 붙일 수 있도록 공문을 보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수상하고 나서는 학교에 현수막도 걸어주셨다(웃음)." 

 제10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폐막식
 제10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폐막식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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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도인 만큼 경험이 없었을 텐데, 제작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촘촘하게 계획을 세웠나? 포스터를 본 학생들의 반응은?
"2년 전부터 기획했던 영화다. 남들 보란 듯이, 힘들어서 안 하는 걸 해 보고 싶었다. 괜히 했다 싶어 후회도 엄청 한다(웃음). 할 게 너무 많더라. 우선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뮤지컬영화를 좋아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반응이 좋았다. 40명을 뽑는데 뜻밖에 400명이 지원을 해서 이틀 동안 20시간씩 꼬박 오디션을 봤다. 너무 많이 왔다. 보컬, 안무, 연기를 선택하게 해서 봤다." 

- 아니, 그렇게 배우에 대한 수요가 많단 말인가?
"보통 인문계 친구들에겐 이런 기회가 거의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돈도 안 주고, 아무 보상도 없는데 몰려든 것 같다. 뽑힌 배우들의 부모님들께 일일이 편지를 썼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룩 흘러내리는 이 여름에...'로 시작하는 비장하고 진지한 편지를(웃음). '요즘엔 이런 분야가 많이 발달되어 있고, 원하는 진로에 맞춰서 진학에도 도움이 될 기회다'라고 간곡하게 썼다. 전화도 엄청 했다. 요금이 몇 배나 더 나왔다. 다행히 뽑힌 배우들 모두 중도 탈락 없이 함께할 수 있었다.

연습실을 빌렸지만 최대한 비용을 아끼려고 밤에 와서 새벽까지 이용했다. 아침 6~7시에 집에 갔다. 교통비만 겨우 줬다. 다행히 방학이라 성적 저하가 안 보였는데, 그 후과가 요즘 서서히 드러난다(웃음). 연습을 하면서 여학생들의 생리통이 그렇게 심한 걸 처음 알았고, 실제 영화 찍으면서 정말 몰랐던 많은 일들 때문에 힘들었다. 연습하면서 민원도 들어와서 뺨 맞을 뻔하고 그랬다. 밤새 여자애들 남자애들 섞여 있고, 춤과 노래를 하고 그러니까... 좌충우돌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다."

- 뮤지컬 영화라 노래가 무척 중요한데, 곡은 어떻게 만들었나?
"바보처럼 처음엔 '작곡가를 뽑아야지' 그런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오디션에 작곡을 공부하는 친구가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 그 친구가 곡을 만들었다. 함께 해보니 중학생들도 너무나 잘하더라. 원래 고등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바꿔서 중학생도 42명 중 15명이나 된다."

- 각본은 오디션 전에 완성되어 있었나?
"대강의 각본만 있었다. 배우들 뽑은 후에 각각의 캐릭터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썼다. 연습을 하면서 각자의 특징들이 나오니까 여성스러운 남학생 캐릭터라든지 원래 각본에 없던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고, 수정도 하게 되고 그랬다." 

- 연습실을 빌리려면 돈이 들었을 테고, 장비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했나?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에서 장비를 빌렸다. 몇 군데 알아봤는데 가장 싼 데가 거기였다. 인천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반납하고 다시 빌리고 그랬다. 부모님한테 빌리고, 부모님 몰래 친척들한테도 빌려서(웃음) 마련했다. 총 제작비가 150만 원쯤 들었는데 지금 다행히 본전은 뽑았다(웃음). (별로 안 들었다는 얘기에 펄쩍 뛰며) 나한테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용돈이 한 달에 3만 원이었는데(웃음). 50만 원 예상했는데 너무나 돈이 많이 들었다. 편집은 방송반 편집기를 쓰기도 하고. 부모님이 감자 삶아주시고 간식 주시고 그랬다. 형이 고3이었는데도 부모님이 많이 지원해주셨다."

- 고생고생 끝에 완성한 대한민국 첫 청소년 뮤지컬 영화의 시사회 반응은 어땠나?
"배우들은 모두 영화가 처음이라 신기해했다. 촬영장에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시키는 대로 장면만 찍다가 그게 화면으로 편집된 것을 보더니 많이 놀라더라. 아, 이게 그 신이었구나 하면서. 어렵게 찍었다. 내 능력을 떠나 한 명 한 명이 진심을 담은 영화다. 보고 나서 그런 게 느껴졌다."

제작자는 좌충우돌, 배우들은 난생 처음,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오디션 공개모집 포스터 문구대로 '40여 개 전국 및 국제대회'에 출품되었다. 그리고 이내 수상 소식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 수상 성적이 화려하다고 들었는데...
"출품한 지 한 달 만에 수상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9월 8일에 완성해서 전국 40여 곳에 출품했는데 그중 9곳에서 수상을 했고, 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10월 9일, 인천부평청소년창작영상제에 첫 출품을 했는데 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그때가 가장 기뻤다. 그 뒤에 한양전국청소년영상대전에서 최우수상, 10월 14일 공주신상옥청년영화제 특별상, 10월 23일 대한민국청소년창작영화제대상(여성가족부장관상), 10월 24일 제10회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 3관왕, 10월 29일 제15회 대진대학교미디어페스티벌 고등학생영상공모전 1위, 그리고 제10회 퍼블릭액세스 청소년 부문 작품상이 지금까지 수상한 내역이다."

김수랑 감독과 프로젝트 영상 동아리 '와이낫'의 기념공연 폐막식에 선보인 '와이낫'의 공연
▲ 김수랑 감독과 프로젝트 영상 동아리 '와이낫'의 기념공연 폐막식에 선보인 '와이낫'의 공연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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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고추 이야기>는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 본선진출상(미디어대전 센터장상)과, 관객상(씨네21 이사장상), 최우수상(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등 3관왕을 수상했다. 제1회 퍼블릭액세스 대상 수상자인 윤성효 감독이 그해 첫 영화로 대상만 3개를 받았는데, <풋!고추 이야기>는 한 영화제에서만 3관왕을 수상하고, 파죽지세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계속하고 있다. 청소년영화 최다 수상기록을 세울 기세다. 너무 쉬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우쭐해도 되겠다 싶으면서도 성공에 섣불리 취할까 '꼰대스러운' 염려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 너머에 있는 소년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그의 성공을 그냥 축하하고 싶다. 

- 와우! 수상을 이렇게 많이 했으니 상금만 해도 상당하겠다. 포스터를 보니 수상에 따른 배당금액으로 개런티 지급을 하기로 했던데
"제작비는 뽑았고(웃음), 개런티 지급이 남아 있다. 지금 몇 군데 발표를 더 기다리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두 정산하기로 했다. 그게 요즘 제일 큰 고민이다. 연출비를 얼마로 책정하는지, 주연과 조연, 단역들 스태프들의 개런티를 어떻게 지급해야 공정할 수 있는지. 그것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

- 차등지급을 할 것인가? 차등을 두지 않고 고르게 지급하면 안 되나?
"그럴 수가 없다. 물론 열심히 연습해서 1~2분 나오는 단역친구들에겐 무척 미안하다. 하지만 주연 친구들은 단역배우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연습을 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누가 중요하고 안 중요하고가 아니라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기여도를 따질 수밖에 없다. 그걸 어떻게 잡음 없이 배분하느냐가 너무나 고민스럽다. 내가 쥐어볼 수 없는 큰돈이어서 정말 걱정이다."

- 폐막식 때 공연한 짧은 뮤지컬은 언제 만든 것인가? 영화 찍을 때 연습한 것인가? 퍼블릭액세스 트레일러 영상도 만들었다던데...
"영화 끝나고 아쉬워서 한번 만들어봤다. 영화제와 영상제에서 공연할 용도로 만들었는데, 영화 찍으면서 팀워크가 생겨 수월헀다. 2주 동안 서너 번 만나서 만들었다. 트레일러는 작년에 함께했던 친구들과 퍼블릭액세스에서 자원봉사를 하려고 신청했는데, 민언련에서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만들게 됐다. 고마운 마음에 응했다."  

- 작년에 왜 울었나(웃음).
"되게 서러웠다. 인문계에서 영상공부를 하기가 정말 힘들다. 예고나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했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무시당하면서 만들었는데 작년에 퍼블릭액세스에서 상을 받으니 막 감정이 복받쳤다. 이번에 우리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중에도 예고 학생이 있는데 이런 작품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친구들 반응이 안 좋다고 한다. 그런 편견과 무시 때문에 가장 많이 힘들었다."

- 어떤 영화를 찍고 싶나? 영화를 계속 찍을 것인가?
"뮤지컬이란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 다음 영화를 찍게 된다면 청소년 재난영화를 찍고 싶다. 무너진 학교를 배경으로 4~5명이 생존해서 말로만 통하는 그런 식의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다. 새드무비를 찍고 싶다. 지금 조연출이 배급과 홍보 담당을 하고 있다. 메이킹필름도 독립된 한 작품으로 출품할 예정이다. 시나리오가 탄탄하지 못한 단점은, 글 잘 쓰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함께 작업을 하면서 보완할 것이다."

이들은 제작과정을 담은 필름을 다시 독립된 작품으로 출품해놓은 상태다. 메이킹필름을 찍을 스태프까지 따로 뽑아 놓았다니 이 소년 집요하다. 엉성한데 집요하다.

- 퍼블릭액세스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미래의 퍼블릭액세스 응모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준다면?
"무시당하는 것에 자존심 상해가면서 오기로 찍었던 첫 작품 <체스>에 대해 퍼블릭액세스에서 특별상을 주셨다. 만약 그 상을 못 탔다면 아마 나는 영화를 안 했을 거다. 퍼블릭액세스가 나의 동기가 됐다. 그래서 고맙고 특별한 마음이다. 작년에 첫 작품을 낼 때는 영상제를 검색하다 알게 돼서 낸 거다. 수상하고 나서 어떤 성격의 영상제인지 알게 됐다. 대회 자체가 어떻게 찍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시민을 위한 이 영상제의 성격 아닌가? 그래서 퍼블릭액세스를 의미 있게 생각한다."

 제10회 퍼블릭액세스
 제10회 퍼블릭액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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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대신 벽안의 퍼블릭 씨네키드는 공정한 분배라는 화두를 들고 목하 퍼블릭한 고민에 빠졌다. 프랑스·독일문화원을 전전하며 거장들의 영화를 접했던 원조 씨네필들. 독립영화와 도제 시스템을 넘나들며 나름의 경험을 통해 지금 한국영화의 중심에 있는 중견 감독들의 시대를 지나, 이제 디카든 캠코더든 디지털 매체들을 들고 어디서나 찍고, 이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대학 가는 데 수상이 도움이 될 것 같은 동기로, 혹은 그냥 재미로, 혹은 익숙해서 찍는다. 동기는 퍼블릭하지 않았을지라도, 이들의 소통방식은 퍼블릭하다.

퍼블릭액세스는 김수랑과 같은 퍼블릭 씨네키드들에게 기꺼이 판을 벌여주었다. 영화미학적으로 잘 빠진 영화보다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과 고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진정성을 먼저 보는 영상제. '불통정권'의 방해에도 응모 작품 수는 159편으로 늘었고, 특히 청소년들은 여전히 재기발랄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선보여 이 영상제의 의미를 한층 더하고 있다. 

세대와 성별, 장애와 비장애,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넘어 '시민'의 이름으로 '영상'을 통해 소통하려는 퍼블릭액세스의 노력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불통의 시대, '소통'의 가치를 10년 동안 오롯이 지켜온 이 영상제, 벌써 또 다른 퍼블릭 씨네키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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