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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안의 장맛을 보면 대강 집안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다는 게 옛날 어른들 말씀이셨다. 어찌 장맛 하나로 그 집안을 평가하겠냐마는 그 집만의 고유한 맛을 지키는 저력은 결국 그 집안의 가풍과 화목과 가세가 유지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비유이겠다.

하여튼, 그렇게 중요한 장맛. 음식 맛의 기본을 결정하는 장을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았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번갈아 담아 주시는 장을 홀짝 들어다 먹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어제, 장의 출발점인 메주를 만들게 되었다.

어머니의 장솜씨, 이어받은 사람이 없네

 메주콩을 충분히 물에 불린 다음
 메주콩을 충분히 물에 불린 다음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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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솥에 안쳐 장작불로 푹 익힌다.
 가마솥에 안쳐 장작불로 푹 익힌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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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 장솜씨는 근동에 소문 난 솜씨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갈 만큼 황금색에 가까운 잘 익은 된장. 날된장만 찍어 먹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할 만큼 기가 막혔으니 그 된장으로 끓인 찌개는 또 얼마나 환상적이었겠는가?

메주를 빼고 난 간장도 맛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간장을 걸러 서너 번 폭폭 끓이셨는데 진간장 대용으로 쓸 간장은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여 간간하면서도 구수하고 달콤한 맛을 창조하셨으니 가히 선수 반열에 들 만한 분이 우리 어머니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처절하게 깨달았다. 어머니 맛 비슷한 장맛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어머니 휘하 집안 여자들, 며느리건 딸이건 어머니 장맛을 전수한 여편네는 하나도 없었고 어머니와 함께 우리 집 장맛은 영원히 사라졌다. 아쉬운 대로 친정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장으로 음식 간을 했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익히는 장이라 그런지 영 별로였다.

만들기도 힘들고 맛도 별로인 장담그기가 귀찮았던 친정엄마가 장 만들기 은퇴 선언을 하신 것은 내가 시골로 이사오고 난 뒤부터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장은 시골 장독대에서 익혀야 제 맛이 난다고 강변을 하시면서 동네 할머니들이 띈 메주를 사서 장을 담그라는 것이었다.

메주 띄우기, 재료 대령하고 수다떠는 '시다'가 되다

 잘 삶아진 콩을 꺼내
 잘 삶아진 콩을 꺼내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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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구에 넣고 찧는다.
 절구에 넣고 찧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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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 힘들어~~메주콩이 으깨지고 있다.
 아고, 힘들어~~메주콩이 으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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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맛있다. 완성된 메주반죽
 우와, 맛있다. 완성된 메주반죽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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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옆 집 할머니가 띄워놓으신 메주를 사서 담긴 했는데 제조 공정에서 장독과 장독대만 내가 협찬했을 뿐 나머지 모든 과정은 할머니 전담이었다. 할머니가 가꾼 콩으로 띈 메주를 할머니가 직접 담가 주신 장.

간장과 메주를 분리해 다릴 것은 다리고 으깰 것은 으깨, 간장과 된장으로 갈무리하는 것도 할머니가 해주셨다. 나는? 할머니가 "물 퍼와, 소금 퍼와, 달걀 갖고 와" 그러시면 쪼르르 달려가 주문한 재료 대령하고 "하하하~~맛있겠다. 할머니 없으면 나 못 살아" 이러면서 옆에서 까불고 수다 떨고 그러는 게 다였으니 배운 게 있을 턱이 있나.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이제 옆 집 할머니한테 모든 것을 떠맡기는 것이 어려워졌다. 허리는 꼬부라지고 다리는 아파 유모차 없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양반에게 어떻게 빈대를 붙겠는가. 고민고민 끝에 내린 결단. 용감하게 내가 직접 장을 담겠다고 선언했다.

 메주만들기, 할머니가 시범을 보여주신다.
 메주만들기, 할머니가 시범을 보여주신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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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 토닥토닥, 아기궁둥이 어루만지듯 뚝딱 메주를 만드시는 할머니
 몇 번 토닥토닥, 아기궁둥이 어루만지듯 뚝딱 메주를 만드시는 할머니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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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메주, 약간 굳혀 매달기만 하면 된다.
 완성된 메주, 약간 굳혀 매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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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메주 매달 대나무 시렁
 준비~~메주 매달 대나무 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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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덩어리'의 유래를 깨닫다

콩 대두 한 말을 사서(콩이 흉작이라 작년 대비 배 가까이 올랐다) 할머니 집으로 처들어갔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콩을 씻어 충분히 불린 다음 가마솥에 안치고 불을 지폈다. 콩 삶는데도 노하우가 필요하단다. 너무 덜 삶지도 너무 많이 삶지도 않아야 좋다는데 그 적당한 정도는 몇 년 더 해봐야 감이 잡힐 것 같고.

다음엔 메주방아 찧기 도전. 할머니 막내 아들과 번갈아 찧었으니 망정이지 나 혼자 했다간 팔 나갈 뻔 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절구 밖으로 삶은 콩 튀어나가기 딱 알맞고, 푹푹 찧다 보면 으깨진 콩에 달라붙은 절구공이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고. "절구공이를 살짝 비틀어 빼야 빠진다마시..." 할머니 막내아들의 지청구를 원없이 들으며 하긴 했는데 사실 시늉만 했고 할머니 막내아들이 거의 다 해줬다.

할머니는 으깨진 메주콩을 몇 번 토닥거리는 것으로 메주를 후딱 만드시던데 나는 그것도 잘 안 됐다. 갓 낳은 아기처럼 흐물흐물한 반죽을 메치다 보면 여기 툭, 저기 툭 우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난리가 아니니 이래서 못 생긴 여자를 메주덩어리라고 하나보다.

드디어 할머니 모자의 도움을 받아 메주 열 덩이 완성. 정말 오지다. 할머니 비닐하우스에 매달려 온 몸에 누런 실, 하얀 실, 검은 실, 푸른 실... 색색의 곰팡이로 치장을 하고 내년 정월 말날을 기다리는 메주. 최고급 신안 갯벌 천일염 해수에 풍덩 입수해 색색의 곰팡이 켜켜이 불려내면 간간하고 구수한 간장, 된장의 재탄생으로 생을 꽃피울 메주를 신주 단지 모시듯 매달고 나서 문득 내가 진짜 주부가 되었구나 하는 벅찬 감회가 인다.

비록 어머니 장맛을 전수 받지 못한 뼈아픈 실책을 범했지만 할머니 장맛이라도 옳게 전수받아 우리 아이들한테 전해주고 싶다. 엄마가 정성드려 만든 장을 아들, 딸한테 보내 미각을 물려주고 대대로 "장맛은 이 맛이야." 우리 조상의 맛을 간직하게 한다면 성공 아닐까? 뒤늦게 배운 실력으로 며느리, 딸한테 맛있는 장 담그기 비결을 전해 줄 처지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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