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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파이를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잘 잘라서 따로 준비해 가거라. 단 음식은 바로 흡수되니까, 쉬는 시간에 잠깐 먹으면 배고픔도 사라지고 집중력도 좋아질 거야. 실내가 더우면 바로 바로 벗을 수 있도록 얇은 옷을 겹쳐 입도록 하고. 심호흡 한 번 크게 해. 잘 할 수 있지?'

기억 너머에서 그 날, 선생님의 말씀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수능 전날, 시험 장소로 배정받은 학교 교정을 친구들과 둘러보면서, 우리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방향 잃고 쫓기듯이 달려온 학창 시절, 단순히 시험 때문에 떨린다기 보다는, 매년 뉴스를 장식하는 대입 시험의 주인공으로, 마침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는 게 더 두려웠던 것 같다.

십 수년 전 내가 수능 볼 때는...

"수능대박 참 쉽~죠잉"
▲ 응원 "수능대박 참 쉽~죠잉"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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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 부터 불과 1년 전, 선배들의 시험을 앞두고, 인근 학교로 새벽부터 급파(?)되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차를 따라주었던 자리에서, 이제는 우리들이 사투 아닌 사투를 벌여야했다. 당시에는 지원 대학에서 직접 치르는 본고사와 수능이 함께 있던 터에 고3, 1년 내내 학교가 들썩였다.

문·이과 각각 성적순대로 소위 S대 반을 따로 뽑아 관리했고, 이중 출석부가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우리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학교 밖으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3 중간에 다시 반 편성을 해, 담임선생님들이 바뀌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대학에 보내야 하고, 명문대를 한 명이라도 더 입학시켜야 학교의 명예와 위신이 선다는 광기 속에서, 혹 학생과 교사 개개인은 동요했을지라도, 학교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대입의 사명(?)을 완수했다. 수능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학교 축제는, 우리가 고3 되던 그 해 폐지되었으며, 체육대회는 축소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어떤 추억의 잔영이든 수능과 연계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가끔은 속이 허해질 정도로 씁쓸해진다. 고등학교의 절대 흔들릴 수 없는 명분과 가치, '대입'이란 목표는, 내가 학생이었던 그때나 교사로 선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뾰루지에 두통, 계속 토할 것 같다고 찾아온 민희

몇 해 전 민희(가명)가 찾아왔을 때, 나는 으레 몇 달 남지 않은 수능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감 탓에 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민희뿐만 아니라, 고3 2학기가 시작되면, 시름시름 앓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늘어나니까.

얼굴에 자글자글한 뾰루지들이 한꺼번에 돋아나는가 하면, 토하고, 머리 아프다며, 생리통이 더 심해졌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나니, 자세히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고 생각했다. 민희는 밥을 쳐다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을 했고, 물만 삼켜도 토했다. 교실에 있기가 싫고, 자꾸만 울고 싶어진다고 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탈수 증상도 있어, 어지러워했다.

증상을 듣자마자, 평소에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나의 전문가적 야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때로는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옥같은 증상의 기전을 되뇌면서, 동시에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여 영양제를 맞는 것도 지혜라고 덧붙였다. 밥 한 공기 정도의 에너지도 안 되겠지만, 바늘을 통해 혈관으로 직접 흡수되니, 기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리란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생리통이 심하다면, 미리 의사 선생님이나 약사 선생님과 상의해 수능 당일 생리하지 않도록, 생리를 늦추기 위해 일시적으로 피임약 복용을 고려하는 것도 영민한 대응라고 강조했다. 민희는 나의 능수능란한 대처 속에서 그렇게 수능을 앞둔 전형적인 고3수험생이 됐다.

그 뒤로 두어 번 비슷한 증상으로 보건실을 찾아왔지만, 내 조언은 물 샐 틈 없이 완벽했다. 지금 당장은 수능 시험이 두렵고 괴롭겠지만, 끝나고 나면 부쩍 자란 느낌이 들 거라며, 모두가 겪는 고통이니 대범하게 견뎌보자며 다독이기까지 했다.

그 후 민희가 그런대로 조금씩 음식도 먹고, 힘도 내는 것 같아, 나는 일견, 의기양양해지기까지 했다.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칠 때, '목숨 걸고 밥 잘 먹고 있지?' 물어보면서, '아, 나는 얼마나 다정하고 세심한 선생인가'하는 자아도취에 빠져 희미한 미소 뒤에 숨겨진 어떤 아픔도 읽어내지 못했다.

목숨 걸고 밥 잘 먹고 있는 줄 알았는데

수능모의고사 2교시 모습
 수능모의고사 2교시 모습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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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수시 발표가 어느 정도 한 고비를 넘기고, 수능을 막바지 앞둔 어느 날이었다. 수업 시간 도중에, 민희가 너무 힘들어 쉬고 싶다며 내려왔다. 운 좋게도 마침 그 시간에는 보건실에서 쉬는 아이가 없었다. 밀린 공문 때문에 마음이 급했지만,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힌 아이를 그냥 눕힐 수가 없었다.

바로 앉히고, 또 다시 교직 생활 동안 수도 없이 되풀이한, 게다가 어느 정도 나름 효과도 있었던, 수능 대비 격려 메시지를 풀어 놓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도무지 못 참겠는지, 민희가 먼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실은… 저, 보건실에 숨으러 온 거예요…. 저는 수능 안 쳐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라 뜨악해 하는 나를 앞에 두고, 민희는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저는 대학 말고, 과자나 빵을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렇다고 고 3까지 버티면서 다 다닌 학교를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교실에 있으면 마음이 자꾸 시려요. 미리 수시에 붙은 아이들은 벌써 대학생이 된 것처럼 마냥 들떠있구요. 마지막이니 선생님들께서 자율학습 시간을 많이 주시는데, 수능 볼 아이들은 모두 마지막 공부 정리하느라 정신없죠.

그런데, 저만 제빵 책이나 뒤적이고 있으니, 괜히 위축돼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정하고 꿈을 찾아가는 것이니, 당당해지라고 담임선생님도 많이 격려해주셨지만, 참 이상하죠. 수능 준비를 안 하는 제가 한심하고, 이제는 죄책감까지 들어요. 선생님들이 이제 마지막이니, 힘내자 하실 때마다, 눈물을 못 참겠어요. 친척들도 모두 제가 수능 볼 줄 알고, 용돈도 주시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아무도 제가 절대로 수능 안 본다고는 생각 안 하니까…. 뭔가 저만 잘못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불안해요."

결과적으로 나는, 민희의 증상을 더 악화시키고만 있던 셈이었다. 불과 십 수년 전, 대학에만 목숨 건 것처럼 보이는 학교를 저주하면서 어딘가에 분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온갖 분노를 일기장에 휘갈겨 썼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입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수능의 소용돌이 앞에서 어찌할 바 몰라 흐느적거리는 아이 한 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뻔한 교사로 변해 있었다.

미안해 민희야, 혼자 얼마나 아팠니?

입으로는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수능 날이면 어김없이 톱뉴스로 수능이 도배되고, 거리마다 수험생을 위한 이벤트가 넘쳐 나는 것까지 모자라,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초점이 '대입'에만 맞추어지는 것을 보면서, 다른 길을 찾아가던 민희는 얼마나 혼자서 많이 아파했을까.

대학이 아닌 다른 꿈을 찾아가는 아이가 가슴이 시려 더 이상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시공간, 아이들이 곧바로 대학 진학의 숫자로, 명문대 진학의 비율로 계수되는 치열한 사투의 현장에서, 낮은 신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끝내 민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가끔은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가슴이 서글프다. 살점을 파고들고 혈관이 찢겨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성인 듯하여, 괴로워진다. 십 수년이 지나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대입 경쟁의 그늘 밑에서, 대학 진학의 빛나는 목표 아래, 모두 괜찮다며, 뭐든 잘 될 거라며, 누구나 그 길을 걸어왔다며,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냉철함. 우리는,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것일까.


태그:#수능, #보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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