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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준씨가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이태준씨
▲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준씨가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이태준씨
ⓒ 김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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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일, 27세의 청년 김영배씨가 "총 대신 양심을 선택하겠다"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감옥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선택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전과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국방부는 대체복무계획을 폐기해버렸고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던 차에 나온 병역거부선언이라 아쉬움이 더 컸다. 그는 6월 24일 선고재판에서 법정 구속되어 영등포구치소를 거쳐 현재 영등포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그는 항소하지 않았다.

봄이 지나고 겨울 바람이 아프게 느껴지는 11월 9일 오후 2시 김영배씨의 후배였던 이태준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영배씨와 그의 후배 이태준씨 모두 나의 선배들이다. 그들은 '대학생사람연대'라는 학생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을 똑같이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선·후배들 군대 보내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감옥 보내는 것에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병역거부자는 입영일자에 배정받은 부대에 가지 않고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의사를 밝힌다. 병무청은 병역거부 소견서를 요청하고, 병역거부자가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써놓은 글을 근거로 검찰에 고발을 한다. 재판이 진행될 것이고, 이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계절은 변하고 있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의 시계는 분명 멈춰있다.

"파병을 국익으로 미화하는 조직에서 평화의 목소리 낼 수 없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이태준씨의 선택을 지지하며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이태준씨의 선택을 지지하며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 김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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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2시, 사회당 중앙당사무실에서 이태준씨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자신의 소견서를 담담하게 읽어나갔다.  

"파병을 국익으로 포장해서 미화할 것을 요구하는 조직,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은 뒷전인 채 전쟁불사를 외치는 조직, 저는 그 조직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최근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에 특전사 파병을 강행키로 한 것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제대로 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이명박정권의 태도에 대한 정면비판이었다. 그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직접행동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불온도서를 지정하고, 특정 신문조차 읽지 못하게 하는 검열 속에서 군대선전물을 낭독하며 국가주의를 습득해야 합니다. (중략) 지금껏 해온 (저의) 모든 행동들이 반사회적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태준씨는 대학시절 포이동 266번지 현장 활동, 바람개비 인연맺기학교, 대학생사람연대 활동 등을 통해 장애아동, 빈민,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연대해왔다. 이 모든 행동들이 군대에서 부정되는 것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심정을 밝힌 것이다. 그는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복무제도를 도입해달라고 국가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국방의 의무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기자회견 제목도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면서 이태준씨가 국가에 요구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대체복무제를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 인식하던 틀을 뒤바꿔 봅시다. 국방 패러다임에서 공적참여 패러다임으로 '확대'해보자는 말입니다. 군사 분야 외에 복지, 생태, 의료 등 많은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복무제 형태를 도입하는 것, 그래서 군복무는 그 사회복무제 중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존재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꿈일까요?"

그는 이어 징병제를 시행하는 83개국은 대부분 4~12개월 수준의 징병기간을 유지한다면서 한국에서의 복무기간 축소논의가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 3일 국방부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군복무기간을 21개월로 동결하거나, 18개월 단축시기를 2016년에서 2030년까지로 늦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복무제도도입과 복무기간단축은 그가 질문했던 것처럼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왜 감옥에 가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불가능한 꿈에 공감해서 그를 응원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기자회견에 함께한 사회당 안효상 대표는 오늘이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사회구성원의 한사람인 이태준씨가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야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에 자괴감과 미안함이 든다."

안 대표는 "우리 모두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마지막 지지발언에 나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박정경수씨는(2006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선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때 결코 혼자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모이신 분들께 당부 드릴 게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리고 A4 용지 세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이태준씨와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태준씨가 활동했던 장애아동 주말학교 '바람개비'의 자원활동 선생님들의 지지 글도 이어졌다. 그는 이 학교를 만든 장본인이다. '나눔과 연대가 발하는 빛 - 바람개비 인연맺기학교 전 교사대표 이태준 자원교사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며'라는 제목의 지지 글에는 그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이름도 나온다.

"이태준 선생님을 보며 발그레한 볼로 방긋 웃는 다희에게, 자기가 제일 친하다고 자랑하고 싶어 항상 앞을 다투어 뛰어가는 기현이에게, 선생님을 돕겠다며 항상 반장역할을 하던 수환이에게, 일년 만에 선생님에게 인사할 수 있었던 나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밑에는 그를 지지하는 17명의 자원활동 선생님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적혀 있다. 이 아이들이 이들 선생님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이태준 선생님이 '왜 감옥에 들어가나요'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죄를 지었나요?'라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럼 왜 감옥에 가나요?'라고 묻는다면 '평화를 위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이 만난 세상은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 아닐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김영배, 이태준씨의 후배로서, 그들이 활동했던 <대학생사람연대>의 대표로서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나는 이런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준씨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는다면, 최소한 대학생사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들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되어있는 청년들은 750여 명 정도다.


태그:#이태준, #양심에따른병역거부, #대학생사람연대, #사회당,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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