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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랜만에 가족들이 이름하여 서울나들길 걷기에 나섰습니다. 요즘 올레길, 둘레길 이란 이름으로 걷기 여행이 유행이라는데, 우리 가족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볼까요?

그 전에도 무작정 걸어다니기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대학로(종로구)→동대문(동대문구)→남대문(중구)을 돌아보기로 하고 여유있게 집을 나섰습니다.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골목에 선 딸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골목에 선 딸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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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걸었습니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사람들도 적고 길거리 공연도 없이 잎이 노랗게 물든 큰 은행나무가 우리 가족을 반겨줍니다. 거리에 붙은 연극포스터를 구경하며 낙산공원 쪽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어느 극장 매표소에 잠깐 들렀습니다.

지난달 <오마이뉴스> 10주년 한라산 등반 때 탔던 항공권을 지참하면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개그연극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당근(?)으로 쓸 요량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연극시간표를 챙긴 후 다시 걸어갑니다.

대학로의 연극포스터를 구경하며 걷는 가족.
 대학로의 연극포스터를 구경하며 걷는 가족.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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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같은 연극골목을 벗어나니 한적한 골목길에 감나무가 있는 집이 보이고 돌담에 핀 꽃들도 신기합니다.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장난도 치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탑니다. 같이 걸으며, 따로 떨어져 걸으며 한적한 동네 풍경을 봅니다.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 아내가 묻습니다.

"모든 길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으니 걱정말고 따라오시요."
"여기 위로 가면 길은 없는데요?"

동네 사람이 아니였다면 막다른 길까지 갈 뻔했습니다. 친절한 설명을 들은 후 다시 돌아나왔습니다.

"모든 길은 서로 통하지만 때로는 막다른 길로 들어설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히히히."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자 한적한 골목길 동네가 나왔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자 한적한 골목길 동네가 나왔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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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가 보이면 달려가서 잠깐이라도 놀아본다.
 놀이터가 보이면 달려가서 잠깐이라도 놀아본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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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시작한 걸음인지 길을 잘못 들어도, 오르막도 힘들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낙산공원의 나무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니 길게 둘러쳐진 성곽길이 나타납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내려다 보면 아래에 마을이 작은 미니어처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흐릿한 안개 사이로 저 멀리 고층아파트와 빌딩들 때문에 더 작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포장비닐을 덮은 지붕과 낡은 기와집 사이로 벽에 페인트칠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들도 보입니다.

낙산공원의 성곽길에서 포즈를 잡는 딸
 낙산공원의 성곽길에서 포즈를 잡는 딸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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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 아래로 단풍숲과 작은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성곽길 아래로 단풍숲과 작은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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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준비한 쨈을 넣은 식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성곽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좁은 도로 옆으로 오래된 중국음식점이 홀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변이 개발로 인해 모두 철거 중인 가운데 어떤 사정으로 홀로 남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식당 한 곳 또한 섬처럼 철거지역에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걸으면서 장난을 칠 만큼 아직은 생생하다.
 걸으면서 장난을 칠 만큼 아직은 생생하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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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호 흥인지문 (흔히 동대문 이라고 부른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 (흔히 동대문 이라고 부른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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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동을 지나서 계속 걸으니 저만치 보물 제1호 흥인지문(동대문)이 보입니다. 주변으로는 높게 솟은 의류쇼핑몰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지만 왠지 보물유적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 같아 보입니다. '패션원조 평화시장'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을 보면서 아들이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빠 '박태일'이라고 알아? 옛날에 평화시장인가 거기서 투신인가 뭔가 하고 영화로도 나왔는데…."

이름은 '전태일'이라고 올바로 알려주고, 노동법을 지키라는 외침 속에 몸을 불사르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40년 전에 고발했던 청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줬습니다. 전태일 이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 아들의 생각을 읽어봅니다.

작년 봄 전태일 동상 앞에 선 아들과 딸
 작년 봄 전태일 동상 앞에 선 아들과 딸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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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붐비는 초대형 쇼핑몰에 들어가봤습니다. 낯익은 상표들의 청바지 가격을 들쳐보다 '헉' 소리가 나옵니다. 10~30만 원대의 가격에 고급스러움을 느껴보기도 전에 얼른 돌아섰습니다. 우리 가족의 옷차림이 촌티(?)나서 였는지 종업원이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만 왠지 불편해서 오래 있지도 않았습니다

근처의 평화시장 골목길로 들어가니 상인들이 손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며, 간단한 외국어와 손짓으로 어렵지 않게 물건을 주고 돈을 받습니다. 1만 원짜리 청바지를 발견한 아들은 맘에 드는 디자인을 골랐습니다.

판매하는 할머니가 아들 목에 바지 허리춤을 갖다 대더니 틀림없이 맞는다며 까만 비닐에 넣어줍니다(집에 와서 입어보니 허리에 딱 맞습니다). 다용도 가방도 1만 원에 구입하고, 딸은 5천 원짜리 핸드백을 골랐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시장통 쇼핑이 부담스럽지 않음을 느껴봅니다.

평화시장에서 1만원에 청바지를 구입한 아들
 평화시장에서 1만원에 청바지를 구입한 아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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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을 비켜나와 황학동으로 가다가 신당동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니 슬슬 배고픔과 함께 다리가 무거워집니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으로 들어서니 '며느리도 몰라'로 유명세를 탄 할머니의 떡볶이집 앞에 줄을 선 사람들로 넘칩니다. 방송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할머니의 아들이 한다는 옆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에 추가로 라면과 밥까지 볶아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아내가 이 근처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그 당시는 한 사람이 오백 원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오천 원은 있어야 될 만큼 물가가 오른 것을 떡볶이에서도 봅니다.

나들길도 식후경이라 신당동 떡볶이를 먹었다.
 나들길도 식후경이라 신당동 떡볶이를 먹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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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으면서 걷습니다. 남대문 쪽으로 걷다 보니 광희문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슬슬 다리가 풀리는지 딸은 자주 쉬거나 앉으면서도 괜찮다고 야무진 성격을 보여줍니다. 어느새 걷다 보니 충무로에 왔고, 애완견 판매점들이 즐비한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에 온 것처럼 유리창 너머 강아지를 구경하고 있지만, 개들은 밖의 사람들에 익숙한 탓인지 눈길도 없이 그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을지로와 청계천을 지나 종로5가로 넘어와 대학로 길로 접어 들었는데 아이들이 거의 기진맥진한 얼굴입니다. 딸을 업거나 안아서 조금이라도 힘을 덜어주지만 자주 쉬기를 반복 하다가 거의 다 왔음을 아이들도 알고 있는지 더딘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 딛습니다. 온종일 흐린 날씨 속에 거리에는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네온사인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드디어 출발지인 샘터 파랑새극장 앞에서 다섯 시간이 넘는 도보여행을 마쳤습니다.

힘들면 땅에 앉지만 아직 괜찮다는 표시를 하는 딸
 힘들면 땅에 앉지만 아직 괜찮다는 표시를 하는 딸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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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을 남겨두고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마지막 길을 남겨두고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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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아이들은 개그연극표를 끊어서 들여보내고, 아내와 단 둘이 20년 전 자주 데이트를 하던 대학로를 걸으며 우리의 취향대로 허름해 보이는 선술집을 찾아 파전과 막걸리를 앞에 두고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느끼며 오랜만에 유익한 휴일을 보낸 것을 자축했습니다.

5시간여의 나들길을 무사히 마치고 출발지로 다시 돌아왔다.
 5시간여의 나들길을 무사히 마치고 출발지로 다시 돌아왔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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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3구(종로구, 동대문구, 중구) 구역 중에서 혜화동(대학로)→낙산공원→신창동→동대문→신당동→충무로→종로→혜화동으로 돌아오는 5시간여의 도보여행이었습니다.


태그:#서울, #나들길, #둘레길, #대학로, #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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