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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전이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오류동 집주인인데요."
"아, 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집 계약때문에 전화 드렸는데요. 저번에 1000만 원 올려주신다고 했던 거, 좀 당겨서 주실 수 있는가 해서요. 우리 계약 일자가 원래는 12월 26일인가, 27일인데 요번에 저희가 전세 들어가는 집주인이 12월 15일까지 입금을 요구하네요. 가능할까요? 죄송합니다."

집주인의 이야기인즉슨 지난주에 합의한, 전셋값 인상분 1000만 원을 열흘 정도 앞당겨서 달란 이야기였다. 즉답하기가 어려워 아내와 상의한 뒤 답을 주겠노라며 우선 전화를 끊었지만, 막상 뾰족한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전세금을 올려주기로 결정한 거, 승낙할 수밖에.

태어나 처음 듣는 '전셋값 올려 달라'는 소리

많은 미분양 물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포한강신도시의 모습. (자료사진)
 많은 미분양 물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포한강신도시의 모습. (자료사진)
ⓒ 김포한강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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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와 같은 대답이 처음부터 쉽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이미 10월부터 전세 계약만료 기간인 12월 말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는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연일 떠드는데 우리 집주인은 감감 무소식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약 연장이 되는 건지, 아니면 갑자기 집을 빼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결국 전셋값 인상에 대해 먼저 운을 뗀 것은 우리 부부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인가도 싶었지만, 쉬쉬거리고 있다가 갑자기 집주인이 전세를 빼달라고 하면 그것이 더 큰 낭패라는 생각에 먼저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전세계약에 대해 물어봐야만 했다.

자기네도 처음 전세를 놓는 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전화를 망설였다는 집주인. 2년 전 찾아갔을 때 집주인의 장서에 사회과학서적이 많았던 터라 혹시 전셋값을 안 올리지 않을까 언감생심 바랐지만 역시나 헛된 희망일 뿐. 집주인은 쭈뼛거리며 전셋값을 1000만 원 올려달라고 이야기했다.

막상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얘기를 들으니 야속한 마음이 우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전셋값 올려 달라는 소리. 신혼 시절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악착같이 돈을 모아 겨우 집 한 채 사셨다던 어머니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을 거 못 입고, 한 끼 밥 불려 두 끼 먹으면서 돈을 모아야만 겨우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었다던 어머니의 오래된 푸념.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경험을 거울삼아 다세대 주택 세를 놓을 때 웬만하면 전셋값을 올리지 않으신다. 세입자 입장에서 가장 서러울 때가 전셋값 오를 때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막상 집주인의 사정을 듣고 나니 마냥 야속해 할 것도 아니었다. 우리 집주인의 경우는 아이를 낳은 뒤 지금의 오류동 아파트를 전세 놓고 친정 근처인 서울 광진구에 전세로 들어간 경우인데, 그쪽 집주인이 전셋값을 4000만 원 올리더라는 것이다. 현재 광진구 전세시장의 시세가 3000~4000만 원 인상이라나. 집주인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노라며 우리에게 거듭 사과를 해왔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린다고 미안해하는 상황. 결국 나의 전셋값 1000만 원 인상은 집주인을 잘못 만나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전셋값 대란의 여파인 듯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어 보이는 끝도 없는 전셋값 인상. 도대체 이 상황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올려줄 것인가, 이사할 것인가...기로에 서다

저 아파트에는 언제쯤 사람들이 꽉 차게 될까?
▲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청라지구의 아파트들 저 아파트에는 언제쯤 사람들이 꽉 차게 될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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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구해야 하는 1000만 원. 혹자에겐 1000만 원이 계약 기간 2년 동안 쉽게 모을 수 있는 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갓 신혼살림을 시작한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입장으로 가계의 수입원 대부분이 나의 월급에 기대어 있어 1000만 원은 결코 적지 않은 목돈이었다.

아내는 이 기회에 직장 가까운 인천으로 이사 가는 건 어떻겠냐고 이야기한다. 오류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건 이곳이 나의 회사와 아내의 학교 가운데 지점이기 때문이었는데, 어차피 육아 때문에 아내가 학교를 쉬는 터, 굳이 오류동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지라 아이가 아빠 얼굴 잊어버리겠노라며, 집이 가까우면 그래도 서로 얼굴 볼 시간은 많아지지 않겠냐는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전세금으로는 오류동 이외의 서울 지역에 전세로 들어가겠다고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등하는 전셋값을 감안하면 차라리 지금의 전세금으로 인천에서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게 빠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인천으로의 이사를 선뜻 결심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나의 직장이 변화무쌍한 탓에 내가 언제까지 인천에 있을지, 언제 서울 본사로 올라갈지 모르는 일이었고 내가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닐지 역시 의문이기 때문이었다. 기회만 된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 나로서는 인천으로의 이사가 현실 순응의 징표 같기만 했다. 직장인의 신분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회의감과 불안함이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지켜 보건대 회사와 집이 가까운 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비록 퇴근은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더라도 필요에 의해 그만큼 차출되어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고, 영업상 접대라도 하는 날이라면 회사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직장 상사의 대리운전을 해야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나 겨우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도 아쉬운 일일 수밖에. 과연 인천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차라리 대출해서 집을 사라고요? "개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울적한 마음에 술 한 잔 기울이는데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이 기회에 차라리 집을 사는 건 어때? 전셋값은 오르지만 집값은 떨어지잖아."
"무슨 소리야. 올려달라는 전셋값도 구하기 어려운데, 집을 어떻게 사라고."

"요즘 정부에서 DTI 완화다 뭐다 하면서 대출 싸게 해 주잖아. 너희 전셋값이면 지금처럼 아파트는 못 사도 빌라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어. 특히 화곡동 너희 집 주변의 빌라를 사. 요즘 재개발 추진 중이잖아. 저번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까치산역에 찾아왔었다며. 구청장이 대통령이랑 사진 찍고, 그거 등에 업고 재개발 꼭 추진될 거라며 떠들고 다닌다더라."

"개뿔. 어머니, 아버지한테도 괜히 재개발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난데 무슨. 재개발 안 돼. 미분양이 이렇게 속출하고 있는데 무슨 재개발이야. 혹여 재개발 된다고 하더라도 또 이사 가야 하잖아. 집 안 사. 그냥 이대로 있다가 장기 임대주택이나 하나 대여할래."

친구의 말처럼 대출을 받아 덜컥 집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주위를 돌아보면 정부의 장밋빛 공약과는 달리 처참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퇴근하면서 보는 게 청라 지구의 텅텅 빈 아파트들이고,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스산하기만 한 가정오거리의 빈 건물들이지 않은가.

그 뿐인가. 과거 기사에도 썼듯이 고향 영종하늘도시의 아파트에서 살겠다고 은행대출까지 내서 분양을 받았지만 막상 영종하늘도시 개발이 보류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은행대출 이자에 허덕이던 박 주임. 그는 최근에야 비로소 자가 아파트를 팔고 대출 원금을 갚은 뒤 집 가까운 곳에 전세로 들어갔다. 하지만 집값이 대책 없이 떨어진 덕에 생길 손해는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이와 같은 현실로 미루어볼 때, 현재 대출해서 집을 사는 행위는 매우 미련한 짓임에 분명하다. 비록 정부는 계속해서 국민들을 부추기고 있지만 하나의 기만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이상 앞으로의 수요량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공급량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서구처럼 장기임대주택 제도가 일반화되겠지.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그때까지 집을 사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날이 올까마는 재개발의 유혹에서 모든 사람들이 벗어나는 날, 우리의 주택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 청라지구의 많은 아파트들은 장기임대주택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겠는가.

집 사려고 부은 청약저축, 전셋값으로

청약저축과 예금, 부금의 기능을 모두 합친 주택청약종합저축이 12일 가입자 수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우리은행 주택청약종합통장.
 청약저축과 예금, 부금의 기능을 모두 합친 주택청약종합저축이 12일 가입자 수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우리은행 주택청약종합통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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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현상 유지를 결정한 우리 부부. 그러나 이와 같은 결심을 크게 도운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첫째가 아직 돌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우리에게 찾아온 또 다른 생명. 아내는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더 이상 이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집계약이 끝나는 12월, 뱃속에 아이를 품고 갓 돌을 넘긴 아이와 이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셋값 인상분 1000만 원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묶어둔 돈을 탈탈 털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물망에 오른 자금은 물론 청약저축이었다. 아파트 분양이라도 받아보겠다고 결혼 전인 2006년부터 부은 것이지만, 청약자금이야말로 집값은 떨어지고 전셋값만 올라가는 미분양이 횡행하는 현재 가장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집을 살 수 있을까? 또 언제까지 전셋값 걱정을 해야할까? 부디 정부는 토건족들 배 불릴 생각만 하지 말고, 서민들의 애환이나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태그:#전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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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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