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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반올림 활동가들이 '반도체의 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백혈병과 암에 쓰러져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9일 반올림 활동가들이 '반도체의 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백혈병과 암에 쓰러져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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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1962~1997) 나이 35세, 위암으로 죽다.'
'최혜련(1976~1995) 나이 19세, 백혈병으로 죽다.'
'박진혁(1977~2005) 나이 28세, 백혈병으로 죽다.'

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 하얀 방진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 위에 차례대로 누웠다. 그 위에 피를 상징하는 붉은 장미가 뿌려졌고 그들의 등 뒤에는 묘비에나 새겨지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모두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과 각종 암에 결려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이름이다.

 29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후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가 세번째 산재신청을 위해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29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후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가 세번째 산재신청을 위해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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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활동가들은 "성장중심, 기업중심, 경쟁력중심, 이윤중심의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다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알리는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어머니의 절규가 들린다.

"우리 딸이 고등학교도 졸업하기도 전에 들어간 공장에서 병신이 돼 나왔다. 사물은 4개로 보이고, 걷지도 못하고, 맛을 느끼지도 못한다. 뇌종양 수술을 했지만 다 잘라내면 죽는다고 해서 다 치료하지도 못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냐고' 소리치는 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다. 한혜경씨는 1996년 삼성전자 LCD 회로기판을 만드는 사업장에 입사해 납땜하는 일을 6년 동안 했다. 그 후 2005년 뇌종양에 걸렸다. 휠체어를 탄 딸 옆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는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10월 29일은 '피로 물든' 반도체의 날

 29일 '반도체의 날'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올림 활동가가 손플랫카드를 들고 있다.
 29일 '반도체의 날'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올림 활동가가 손플랫카드를 들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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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63빌딩 건물 안에서는 1992년 10월 29일 반도체 수출액 100억 달러 돌파를 기념해 2008년부터 정부가 지정한 '반도체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이고 무역수지 흑자의 주역인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축하하는 날이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며 반도체 산업의 실제 주역이었던 현장의 노동자들은 초대 받지 못한 파티였다.

반올림은 이러한 '반도체의 날'을 규탄하며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청원운동'의 결과를 발표하고 100만 서명운동 돌입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형병과 암, 희귀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을 기리며 이날을 '피로 물든 반도체의 날'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아시아 산업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운동' 등과 함께 '국제청원운동'을 펼쳤다.

기자회견에서 반올림은 "초일류 기업 삼성에 입사했다는 자부심에 부풀었던 젊은 노동자들은 얼마 못가서 고통스러운 투병과 죽음을 맞이했다"며 "하지만 삼성은 한 마디 사과는커녕, 철저히 외면했고 정부 역시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보듬어야 할 책임을 방기한 채 침묵함으로써 삼성을 편드는데 몰두해왔다"고 비판했다.

반올림은 "국제청원운동에 서명한 세계 50여 개국, 7천여 명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삼성의 책임을 공식 촉구한다"며 "우리의 요구에 계속 침묵한다면 이 서명운동은 더 크고 강하게 전 세계로 번져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삼성이 직업병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할 때까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들과 죽어간 노동자들이 인정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쟁취할 때까지 100만 명 청원운동을 전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삼성전자(반도체·LCD) 등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에 걸린 사람은 총 59명으로 이미 사망한 사람만 30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백혈병뿐만 아니라 난소암, 자궁암 등에 걸린 사례도 늘고 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에서 일한 젊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과 이들의 암 사망 패턴이 미국 IBM 반도체 공장 등 세계 각국의 전자산업체들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산업재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으며 정부도 수차례 산재보험 심사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 또 나온다"...뇌종양 한혜경씨, 산재보험 재심사 청구

한편, 기자회견에 앞서 한혜경씨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국민연금공단에 세 번째 산재보험 재심사를 청구했다.

한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입사한 후 생리불순과 피부 질환을 앓다가 입사 3년 차에는 아예 월경이 없어졌다. 몸이 더 버티지 못해 결국 퇴사한 한씨는 2005년 10월 뇌종양으로 쓰러졌고 수술을 받았지만 보행장애 1급, 시력장애 1급, 언어장애 1급의 장애를 선고 받았다.

재심사 청구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씨는 불편한 말투로 "내가 왜 이래야 하냐. 삼성에서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나 같은 사람 또 나온다"며 "근로복지 공단 나와!"라고 오열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한씨는 지난해 3월 근로복지공단에 첫 번째 산재 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역학조사 결과 업무관련성이 낮다는 이유와 의학적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승인 됐다. 이후 한 차례 더 산재 신청을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불승인 통지를 받았다.

반올림은 이에 "역학조사를 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납, 유기용제의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노출 수준이 높지 않아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산재 신청 당시 한혜경씨가 일했던 현장은 폐쇄돼 노출 수준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내세운 "의학적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도 반박했다. 산업재해보상보건법에 따른 법원의 판례는 명백한 의학적 입증이 아니라 업무와 질병간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 추단(미루어 판단)되는 정도만 돼도 인과관계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노동자 보호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법원보다 못한 협소한 기준으로 계속 산재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며 "세 번째 청구에서는 의학적 입증을 운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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