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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야성학〉
▲ 책겉그림 〈사랑의 야성학〉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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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였던 제자가 미국으로 유학 갔다. 스펙 때문이 아니다. 오래오래 거기서 살려는 까닭이다. 헌데 결혼은 한국의 대학교 커플과 한단다. 그곳의 여대생들도 종종 녀석에게 미끼를 던졌단다. 그때마다 다 거절했단다. 녀석은 여전히 순진남일까? 기독교적인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타입일까?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것일까?

또 한 명의 제자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무척 잘 나갔던 녀석이다. 학교 성적도 매우 좋았다. 훤칠한 키에 매력 있는 얼굴이라 여학생들도 많이 따랐다. 헌데 대학교에 휴학계를 낸 뒤엔 기가 팍 꺾였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2년을 소진한 까닭이다. 중고등학교 때 부렸던 야성적인 객기도 다 시들해졌다. 녀석에겐 취업만이 인생 최대 목표다.

녀석들을 보면서 내 젊은 시절도 되돌아본다. 나는 재밌는 이성교제를 했는지, 여자 애들과 미팅은 많이 했는지, 가슴 속까지 뜨거운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기억에 남는 사랑행각은 몇 번 있다. 그 중 특별한 건 두 번이다. 한 번은 27살 늦깎이 대학생 때고, 다른 한 번은 30대 초반 때다.

전주대학교에 다닐 때 참 매력적인 여학생이 있었다. 얼굴도 근사했고, 말씨도 참 예뻤다. 내 친한 친구에게 속앓이를 했더니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란다. 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저녁 수업이 끝날 무렵 그녀에게 장미꽃을 전해 준 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어떤 진전도 보일 수가 없었다. 낮에는 공사판을 헤매였으니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30대 초반에 만난 여자는 전남 진도에 있는 아가씨였다. 초등학교 보조교사였다. 당시 전주에 살던 나는 광주에 있는 형 차를 빌려 두 차례나 그곳에 내려갔다. 헌데 몇 차례 주고 받은 편지가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중간에 코치하던 목사님 한 분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까닭이었다. 그때 그녀의 집에서 몇날 며칠 죽치려고 다짐도 했었다.

목수정의 〈사랑의 야성학〉을 읽다보니, 미련스런 옛 사랑의 추억들이 떠올라 몇 글자 그적인 것이다. 뭐랄까? 이 책은 바늘 같은 취업구멍 때문에 요즘의 88만 원 젊은 세대들이 야성적인 연애나 사랑을 보여줄 기세가 없다는 것을 꼬집어 준다. 물론 그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란다. 여성들 모두가 1등 신랑감으로 검사출신이나 대그룹 사원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어찌 저돌적인 연애사랑이 일어날 수 있을까.

헌데 재밌는 이야기도 덧붙여 준다. 저돌적인 연애와 사랑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섹스리스 부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남자는 과도한 경쟁력과 업무 강도 때문이고, 여자는 육아 후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그 때문일까? 한국인 남자의 9%와 여자의 7%만이 성생활에 만족한다고 표한 게. 그 때문일까? 우리의 성산업 규모가 20조에 달하는 게.

그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우리나라 19세 미만 청소년의 분만건수가 한 해 2천 건을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단다. 성교육을 뛰어넘어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헌데 우리 기성세대들은 어떨까? 그녀는 기성세대들이 야성을 지배하는 관습을 종교와 교배하여 막대한 권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학교 당국도 명예 실추를 들먹여 임신청소년을 강제 퇴학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죄인취급하는 셈이다.

한때 아이들의 남성과 여성 비율이 5:1이라는 통계가 있었다. 헌데 앞으로는 남자든 여자 아이든 한 명 밖에 낳지 않거나 아예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가 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을까?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태금지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그같은 소극적인 대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마음 놓고 애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임금만 봐도 환할 것 같다. 그 분들은 하루 11시간 노동에 120만 원의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그나마 그것이 개선된 보육제도란다. 그러니 여대생과 젊은 아줌마들이 몇 시간 일하고서도 천 만 원씩 거머쥘 수 있는 룸에 드나든다는 것은 아닐까.

요즘도 옛날처럼 순수한 연애사랑을 꿈꾸는 중고등 학생들이 있을까? 젊은 패기를 앞세워 첫눈에 반한 여대생들에게 길을 막고서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남자들이 있을까? 스펙과 취업과 숱한 경쟁에 치이고 치이는 신자유시대에 그런 일들은 환상으로 끝나지 않을까? 그것이 젊은 남녀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임을 이 책은 낱낱이 일깨워 준다. 한 번 들여다 보길 권한다.


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0)


태그:#야성의 사랑학, #스펙, #취업, # 저돌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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