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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런트 이광기가 지난 19일 저녁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아들 잃은 아픔을 딛고 '일과 봉사'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탤런트 이광기가 지난 19일 저녁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아들 잃은 아픔을 딛고 '일과 봉사'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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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울었다. 동공엔 이슬이 맺혔고, 곧이어 닭똥만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가슴에 자식을 묻은 이 남자. 작년 가을,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탤런트 이광기(42)씨다.

신종플루. 그의 아들은 세상에 신종플루에 대한 경각심을 남기고 천사처럼 하늘로 떠났다. 멀쩡하던 아이가 만 하루 만에 먼 길 떠났으니 세상에 남겨진 아비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래도 이 남자, 큰 슬픔을 사랑과 봉사, 웃음으로 이기고 있다. 인생이 180도 바뀌었단다.

고교시절 친구 따라 탤런트 시험 보러갔다 합격해 아역 탤런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군 제대 후엔 록카페에서 8개월간 도박에 미쳤으며, 방배동 포장마차로 인생의 쓴맛도 봤고 돈도 벌었고, <태조 왕건>으로 늦깎이 신인상도 받았다.

그리고, 이 남자. 개그맨보다 더 웃겨 '탤개맨'으로까지 불렸다. <쟁반노래방>으로 예능감 확실히 살려 미친듯이 예능프로 출연하며 방송에서 잘 나갔는데, 별안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을 잃게 됐다. 감기인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애가 죽었다.

포털에서 이광기를 검색하면 4가지로 그의 인생이 분류된다. 연기자, 예능과 노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사회봉사. 지난해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로 그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 사회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티에 직접 봉사활동을 다녀왔고, 월드비전 홍보대사도 맡았다.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미술경매와 전시는 벌써 두 번째 진행 중이다.

스스로 예전의 이광기는 죽었고, 다시 태어난 이광기는 '일과 봉사'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는 하느님께도 그렇게 기도를 올렸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남자. 확실히 예능의 끼는 대단하다. 울다가도 웃는다. 반드시 말끝에 웃음 포인트가 있다. 하느님 얘기를 하면서도 개그할 정도니. 언젠가 대중에게 큰 웃음 줄 날 올 것 같은 예감이 확 온다.

지난 19일 저녁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약 2시간30분여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많이 울었고, 많이 웃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덧 매듭은 아이 이야기로 귀결됐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아버지이자 만능 엔터테이너인 이광기의 사는 이야기, 들을수록 공감 가는 얘기가 많다.  

"하느님도 일보다는 봉사 쪽을 선호하시는 듯"

- <하노이 신부> 이후 5년 만에 KBS 새 아침극 <사랑하길 잘했어>에 캐스팅되셨어요.
"단막극은 5년 만이지만, 연속극은 9년 만이에요. 정통 드라마는 <야인시대> 이후 처음이고. <사랑하길 잘했어(25일 첫방영)>에서 맡은 역할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장남이에요. 밖에선 성공지향, 집에선 우유부단. 전형적인 홈드라마입니다. 복수? 없어요. 아침을 편안히 즐길 만한 드라마예요.

이번 드라마 들어가기 전, 추석 때 아내와 함께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를 했는데, 바로바로 이뤄주시더만요. 후훗. 사실 추석 같은 땐 가족들 만나면 그 속엔 분명 빈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제 집사람이 너무 힘들어해서 그냥 기도원으로 들어갔어요. 기도했죠. 일과 봉사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그런데 무슨 거짓말처럼 기도가 딱 이뤄진 거예요. 20분 만에. 와~ 놀랐어요. 봉사가 딱 들어와 있더구만. 하하. 나눔에 관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역시 하느님도 일보다는 봉사 쪽을 선호하시는 모양이에요. 후훗."

- 원래 독실한 크리스찬이신가요?
"저희 부모님은 불자세요. 열심히 절에 다니시죠. 집안 분위기가 워낙 그러니까 집사람은 저 몰래 혼자 교회에 다녔어요. 저는 그저 '솥뚜껑 신앙인'이었어요. 잠깐 뜨거웠다가 푹 식어 버리는. 그런데 우리 아이 때문에 다시 교회에 열심히 나가게 됐고, 지난 5월부터는 몇 군데 간증도 다녔어요."

 탤런트 이광기가 지난 19일 저녁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신종플루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아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탤런트 이광기가 지난 19일 저녁 고양시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신종플루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아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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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이맘때 신종플루로 아드님을 잃으셨을 때, 전 국민이 애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1주기가 다가오네요.
"아는 선배가 병원 원장인데 우리 아이더러 천사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신종플루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떠났다는 거죠. 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았느냐, 작년 이맘때 하루 200~300명 정도 응급실을 찾았는데 우리 애가 그렇게 된 뒤로는 2000~3000명이 찾아왔다는 거죠. 그렇지만 전... 하필 왜 그게 우리 애가 됐어야 하나, 원망도 많이 했어요."

- 의료사고 대응은 전혀 안하셨는데, 한번 해볼 만한 싸움 아닌가요?
"솔직히 요즘도 문득 다시 한 번 꺼내 싸워볼까 생각은 해요. 수많은 의료인에게 경각심을 주고, 환자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갖도록 해볼까, 생각은 하지요. 그러나 들춰봤자 제 마음만 아플 것 같아요. 우리가 입원했던 병원 응급실, 중환자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벌어진 사건인데, 고통은 저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저도 우리 아이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결국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의료사고로 규정돼 합의금 받으면 또 뭘 하겠어요."

"김태원형이 준 곡은 차마 못 부르겠어요"

- 지난해 세미트로트 '웃자 웃자'로 가수 데뷔도 하셨잖아요. 그 음반 잘 됐나요?
"이 세상 살아가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음반으로 냈었는데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 노래를 할 순 없지만, 온라인에서나마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 '웃자 웃자' 이후 음반을 하나 더 계획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부활의 김태원형이 준 곡이 있어요. 발라드인데, 안 부르려고요. 너무 슬픈 내용이라 그 노래, 제가 끝까지 못 부를 것 같아요. 노래 제목이 '흑백영화'인데 어떤 아픔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사실 우리 부부가 석규 그렇게 된 뒤로 부활의 '생각이 나'를 많이 들었어요. 그 노래 들으면서 많이 울었죠. 그 일 있고난 뒤, 태원이형이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괜히 그런 곡을 너에게 줘서 상처 준 것 같다고. 그건 전혀 아닌데도 형은 공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래서 그냥 형더러 부르라고 했어요. 제가 할 노래는 아닌 것 같아요."

- 개그맨보다 더 웃기다는 평가를 받으시잖아요. 예능출연은 안 하시나요.
"왜요, 해야지요. 내년쯤엔 예능프로도 해야지요. 새로 드라마 들어갔으니 KBS가 절 가만 두겠어요? 드라마 홍보 차원에서라도 예능프로 나가야지요. 고정은 아니어도, 억지로 웃기는 건 아니어도, 생활 토크는 나가서 할 생각이에요."

-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탤런트시험 보러 갔다가 우연히 합격된 거라 들었어요.
"친구놈이 방송국에 탤런트시험 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가주마 하고 따라갔다가 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KBS가 아니고, 한국방송문화예술학원이었던 거예요. 하하. 한국방송... 이러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연기학원이었던 거야. 강부자 선생님 등 KBS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연기자들이 심사위원으로 계시니까 우린 당연히 KBS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하하하하. 

시험에 합격했더니 돈을 내라는 거예요. 학원비죠. 당시 몇십만 원을 냈어요. 그땐 이게 아주 큰돈이었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 학원비를 달라고 했어요. 어차피 제가 상위권 학생도 아니었고, 예체능계라는 느낌이 딱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미술로 상을 많이 받아서 미술 쪽으로 갈 줄 알았고, 또 기타 치는 걸 좋아해서 음악이지 싶었는데, 사실 연기자는 생각 못했거든요."

- 연기학원은 마음에 드셨어요?
"학원비 날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셰익스피어, 대학생들이 읽는 <배우수업>, <연기수업> 수십 번 읽었어요.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버스 탈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읽었어요. 제가 열심히 하니까 학원 원장이 오디션 보게 해준다는 거예요. 지금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학과장이신 최상식 감독이 절 보셨어요. 중학생을 원하는데 너는 너무 나이 들어 보여 안 되겠다! 그때 그분이 KBS 드라마 <보통사람들> 끝내고 아주 인기가 많은 감독이셨거든요.

아, 이게 끝인 모양이구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촌각에 제가 그랬죠. '감독님 저 머리 자르면 어려 보여요!', 밤톨만한 놈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럼 내일 한번 와봐 하시더군요. 머리 깎고 찾아갔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본 주셨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제가 진짜 머리 깎고 올 줄은 몰랐대요. 내가 머리 깎으면 어려 보인다고 했지, 감독님이 깎으라고 하신 적은 없으니까요. 조그마한 놈을 그냥 돌려보내면 상처 받을까봐 제게 작은 배역을 주신 거지요. 그게 KBS 일요아침드라마 <해돋는 언덕(1985)>이었어요. 윤석화, 최재성, 김민자, 추송웅 선생님... 호화캐스팅이었지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4개월 만에 종영돼요. 시청률이 저조해서. (웃음) MBC <한지붕세가족>과 경쟁했거든요.

쫑파티 하는데 왜 그렇게 서러워요? 와~ 민식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난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는데, 뭔가 좀 보여주려고 하니 막 내리네.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갔어요. 홍은동 가려면 광화문에서 73번, 8번 버스 타야 했거든요. 딴 데 가서 타도 되는데 그냥 광화문까지 간 거예요."

- 같이 탤런트시험 보러 갔던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아, 그 친구요? 하하하하. 지금 매니저 해요. 신현준씨 하다가 최근엔 최홍만."

삐끼처럼 살다

 탤런트 이광기.
 탤런트 이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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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제대하곤 방배동에서 포장마차도 끄셨다면서요. 연기생활 관두려고 하신 건가요?
"1992년 5월 제대를 했는데, 지금은 매니저가 된 그 친구가 명지대 앞에서 록카페를 했어요. 그때 제가 거기서 알바 뛰었죠. 주방에서. 방송 일이 없으니까 하하. 그 자식이 나랑 친한데, 아~ 꼭 일을 하면 인건비를 하루치 적게 주는 거예요. 다 주면 관둘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일했는데, 그때 우리 집사람을 만났어요.

제대하고 록카페에서 일하면서 제가 또 카드를 배웠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 도박에 완전 미쳤죠. 소소한 '삥발이'지만, 1000원짜리도 모이면 커지니까 만날 가게에서 밤새는 거예요. 집사람 만날 시간도 없이, 눈 뜨면 카드하고 그랬어요. 후훗.

우리 어머니께서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똥차 한 대를 사줬는데, 자꾸 현금 서비스 받아 도박을 하니 빚이 150만 원 쌓이더라고요. 차 팔고, 그걸로 도박빚 막았죠. 도박에 미쳐서 집사람과도 한때 헤어졌답니다. 아~ 그러고 나니까 정신이 바짝 들더군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집사람이 참 은인이지요.

생각해 보면 제대하고 8개월은 빡세게 도박만 했던 것 같아요. 아주 집중적으로 하하. 물론 150만 원이지만 그 돈이 제겐 1억5000만 원만큼 큰돈이었어요. 여하튼 그 생활을 청산하고 방송국 연예인축구단 총무하면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어요. 근면성실하게 사니 집사람에게 다시 전화가 오더군요. 다시 만났죠. 구애하고 결혼에 골인하려는데 처가에서 반대한다는 거예요.

그때 우리 집사람 대학원 다닐 땐데, 사윗감이 백수면 그렇지 않느냐, 가게라도 해라, 그래서 엄마 집을 담보로 2000만 원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 할 수 있는 건 포장마차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방배동 포장마차를 돌아다니는데 마침 망한 가게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구석져서 통로를 찾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하하. 그래도 공간이 넓어서 95년말 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주고 계약을 했어요. 96년초에 오픈을 했죠. 가게 문을 딱 열었는데 하루 매상 5만 원. 하하하. 사람들이 가게 구멍을 못 찾아들어오니까 매상이 엉망인 거예요.

아~ 이러다간 어머니 집마저 날리겠다 싶어서 작전을 짰지요. 양복을 딱 입고, A4 전단지에 왕의 복장을 한 사진을 놓고, 주인 이광기, 전직 탤런트, 아역탤런트 힘들어 가게 열었으니 도와주세요~ 전단지 들고 다녔어요."

- 탤런트 출신인데 남들 앞에 그 차림으로 선다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무슨 삐끼처럼 그렇게 다녔으니까요. 그러나 돈을 벌겠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새벽까지 영업하고, 수산시장 가서 재료 사오고, 아침 7시에 잠들어 오전 11~12시 사이 일어나 점심시간에 오피스텔단지를 그러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서류가방에 사탕과 전단지 잔뜩 넣고. 하하하하. 영업사원처럼 포장마차 선전을 하고 다니니까 애정을 갖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장사 잘됐습니다. 하루 150만 원, 평균 80만 원 찍었어요. 주방 아줌마와 저, 알바. 딱 셋이 뛰니까 12시간 풀로 돌아쳤지요. 98년까지 근 3년, 빡세게 일했습니다. 그때 번 돈으로 어머니 빚 갚고, 결혼자금 마련했죠."

- 기억에 남는 손님 없으세요?
"그날 주방아줌마가 쉬는 날이었어요. 정신없이 일하는데 김종선 감독님이 오신 거예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오셨다고. <왕과비>에서 도원군 역할을 주셨어요. 드라마 끝나고 칭찬 많이 받았는데, 후속이 없는 거예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아, 역시 이 일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어요. 어떤 선배가 연기는 마약과 같다 그러셨는데 꼭 그런 기분이었어요.

우리 직업이 누군가 날 안 불러주면 일을 못하는 직업이니까요. 많은 선배나 후배도 그런 이유로 이 업계를 떠났다가 다시 또 부름을 받고 심취해서 연기하고 그러잖아요들. 그렇게 살다보면 20~30년 훅 가거든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무명 탤런트로 남지 않을까, 그래서 포장마차를 한 거지요."

이홍렬, 이광기 때문에 소파에서 떨어지다?

 탤런트 이광기.
 탤런트 이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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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계속 포장마차를 운영하신 거예요?
"아니오. 접고, 사촌형님 도움으로 매니지먼트회사를 차렸어요. 조안, 장신영씨가 저희 회사 소속이었지요. 연기 레슨도 열심히 했고 결국 둘 다 중앙대 연영과에 입학했어요. 기뻤습니다. 그런데 매니지먼트라는 게 전문경영인이나 마음이 독한 사람 아니면 참 힘들겠다 싶더군요. 저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많이 흔들렸고. 그러던 차에 <태조 왕건>에 캐스팅돼서 연기에 매진했어요.

그걸로 2001년 신인상을 받았죠. 사실 신인도 아니었지만 기쁘게 받았어요. 대중이 제 이름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그때가 신인이라는 감독님 말씀에 동의가 되더군요. 그때 제가 드라마 홍보 때문에 <쟁반노래방> 나갔는데 이게 또 반응이 괜찮았어요. 하하하.

이홍렬형이 그거 보며 웃다가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얘기를 들었죠. 형이 그러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거니? 떼굴떼굴 굴렀다, 나' 하하. 그러면서 슬슬 예능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 그때 탤개맨이라는 별호도 다셨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시는 선배들이 조언하시기를 연기자는 연기만 해야지 왜 예능을 하니, 그러셨어요. 그러나 대중들은 무거운 사극에서 만나다가 <쟁반노래방>에서 웃기니까 신선하게 다가왔던 모양이에요. 실은 저도 즐겁고 유쾌했어요." 

- 드라마 <해신>에서 섭외가 왔는데 잡혀있던 쇼오락 예능프로가 고정으로 7개나 잡혀 있어서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만일 제가 싱글이었다면 다 팽개치고 <해신> 들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처자식이 달리니까... 촬영 때문에 3개월 중국 가야 한다지, 또 이게 출연료가 7개 프로면 만만치 않거든요. 하하. 짧은 생각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뛰자 했죠. 지금 와서 어떤 선택이 좋았느냐 나빴느냐 얘기 못하지만, 스스로 위안하기로는 내게 주어진 대로, 충실히, 물 흐르는 대로, 들어오는 대로 일을 하자 그랬던 것 같아요. 석규 그렇게 되기 전까지도 제가 일을 많이 했지요."

- 만능 엔터테이너시잖아요. 노래, 연기, 예능 못하시는 게 없는데 그중 가장 소중한 영역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건 없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시 출발하는 기분으로 일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드라마로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뿐이죠. 예능도 했고 나중에 뭐 버라이어티도 하게 되겠지만, 제 작은 소망이라면, 사실 우리 석규는 제가 탤런트라는 걸 몰랐어요. 그냥 방송에 나가 재밌게 얘기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못 봤거든요. 저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고 있고, 또 석규가 하늘에서나마 제가 연기하는 걸 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영적으로 분명히 날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대로 연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 배우들은 꼭 한 번 제대로 된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들 하잖아요. 이광기씬 어떠세요? 워낙 사회봉사를 많이 하셔서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이 되면 좀 그런가요?
"아니오. 요즘 사람들이 제가 악역 맡았다고 해서 진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건 단순 배역일 뿐이다, 이 정도죠. 음... 그러나 전, 사회적 타당성과 도덕성을 갖고 있으면서 인간미가 있는 악역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태조 왕건>에서도 제가 맡았던 신검 역은 악역이었지만 연민의 정을 갖고 보셨던 것 같아요. 또 제대로 아픈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저처럼 마음의 상처가 깊은, 시청자가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원마운트 아트라는 날개를 달다

 소외된 아동들을 위한 자선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이광기씨가 백종기 작가의 '깡통로봇'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마운트, 아트라는 날개를 달다> 주제로 자선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이광기씨가 백종기 작가의 '깡통로봇'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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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아동들을 위한 자선미술전시회를 연다고 들었어요.

"일산 원마운트 전시관에서 '원 마운트(일산), 아트라는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22일부터 한 달간 무료전시(031-905-5444)를 하게 됐어요. 수익금은 전액 월드비전에 후원할 예정입니다. 아이들을 초청해 그림구경도 같이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그럴 생각이에요."

- 주로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나요?
"찰리 한, 지용호, 지호준, 이지현, 이길래, 임안나, 배수영, 김범수, 이재욱, 백종기. 미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죠. 이번 전시에서 팝아트와 회화는 다 배제했어요. 정문에 동으로 만든 호랑이와 사자 조각, LED, 깡통로봇, 동으로 만든 소나무, 붉은 색 계열의 사진 등등 재밌는 작품이 많아요.

또 기존 갤러리를 탈피해서 일반대중들이 쉽게 무료로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거예요. 모델하우스지만 공간 넓고 작품과 전시 볼 만하면 오케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경매는 안해요. 그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건데 이번엔 꼭 판매가 목적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벌써부터 미리 알고 연락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전시는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 기획전시를 맡으면서 받은 기획료가 좀 돼요. 하하. 이걸로 무조건 도네이션(기부) 할 것이고, 혹여 작품이 팔리면 수익금은 무조건 도네이션이에요."

- 스와치 시계를 디자인 한 팝아트작가 키스 해링을 좋아하시나요? 뉴욕에서도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는 문맹퇴치, 반핵, 공공서비스 캠페인에 적극적이어서 어찌 보면 이광기씨와 좀 닮은 면도 있지 않나 싶은데요.
"제가 키스 해링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는 동성애자잖아요! 하하. 그냥 재밌고 존경할 만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좋은 일 많이 했고. 자신의 재능을 어려운 학교에 선물했고, 그게 어마어마한 금액이 됐으니 참 좋은 일이죠. 예쁜 그림으로 아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줬으니까 그 또한 감사한 일이고. 무엇보다 사회공헌은 너무나 존경스러운 수준이지요."

 소외된 아동들을 위한 자선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이광기씨가 이길래 작가의 '작은노송'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마운트, 아트라는 날개를 달다> 주제로 자선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이광기씨가 이길래 작가의 '작은노송'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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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예술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밝은 세상 만들기라고 언급하셨던데 그렇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요즘 작가들을 많이 꼬시고 있습니다. 헤헤. 고아원, 양로원에 가서 예쁜 벽화 좀 그리고 오자. 삭막한 담벼락에 아름다운 벽화를 걸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원하는 색칠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안정감, 편안함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순수예술 쪽은 대중문화예술과 달라서 약간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작가주의 강조하고 그래요. 그러나, 제 생각엔 지금은 21세기, 그런 시대는 끝났다 생각해요. 에코를 강조하고 나눔을 실천해야 복 받는 사회 아니에요? 시대적 조류에 동떨어지지 말자, 이렇게 친한 작가들을 계속 꼬십니다. 재능기부 좀 하시라고. 공공미술, 얼마나 아름다워요? 어느 양로원에 가면 피카소 그림이 있다, 어느 유명작가의 그림이 있다, 얼마나 좋아요?"

-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에겐 작품비를 좀 주셨나요?
"젊은 작가들이니까...., 술 한 잔 사주죠. 하하하."

- 지난 5월 아이티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경매를 해서 1억 원을 모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월드비전을 통해 크리스찬학교를 지을 생각이었어요. 그 돈이면 되거든요. 학교가 다 무너져서 애들이 학교를 못 가니까. 삐까번쩍 이건 아니어도 그럭저럭 학교는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워낙 관세가...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채는 분들이 많아서 아직까진 그냥 두고 있는 상태예요. 꼭 이렇게 어려울 때 중간에서 가로채고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아이티에도 있더군요. 그래서 사실 좀 고민이에요. 사실 제 생각은 학교를 세우고 학교 한켠에 노력해준 작가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기고 싶었어요. 나눔이 감동의 씨앗이 되어 멀리 퍼지면 또 다른 나눔을 낳게 되니까요. 작은 밀알이 커다란 열매를 맺듯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야겠죠!"

- 지난 2월 아이티 지진현장에 직접 다녀오셨잖아요. 뭐가 제일 안타까우셨나요?
"어린이와 남편 잃은 싱글맘들이죠. 워낙 어려운 나라였던 데다 배급마저 원활하지 않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금세 폭동이 일어나요. 우린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먹는 것 때문에 사람 죽는 일이 발생한다니까요. 잘못 나눠주면 칼부림 일어나고. 그래서 배급할 땐 반드시 UN군이 있을 때 딱 나눠주곤 했어요.

요즘은 그나마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어느 나라든 기득권자, 있는 사람들이 NGO 상대로 장사하고, 뱃속 채우고 그럽디다. 아이티 기금 마련한 돈을 갖고 쉽게 못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어요. 차량과 숙소 렌탈 정말 허름한데도 값은 유명호텔 수준이에요. 워낙 다 무너졌으니까요."

"내가 NGO 홍보대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탤런트 이광기.
 탤런트 이광기.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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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에서 새로 얻은 아드님도 피습됐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우리 애가 살았다면 올해 8살이에요. '세손'도 8살이죠. 아이티 고아원에 갔는데, 그곳엔 지진으로 갑자기 부모를 잃게 된 아이들이 많았어요. 강연을 하는데 뭐 애들이 집중하나요? 다 떠들고 난리인데, 얜 딱 앉아서 듣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애가 한두 번 입은 여름옷들을 다 주고 왔는데, 어른들이 배급 때문에 싸우다가 잘못해서 세손이 총에 맞았다는 거예요. 정말 눈물밖에 안 나오더군요. 그래서 하느님을 막 욕했어요. 아니, 분명 아이티에서 일으켜 세워주신다더니 이게 뭐냐고. 거기 통신사정이 안 좋아서 한동안 연락두절이 돼서 무지 걱정을 했는데, 한 NGO 활동가가 사진을 보내줬어요. 온몸에 붕대를 감고 V자 긋고 그 허연 이로 씩 웃고 있더군요. 얼마나 기쁘던지 눈물이 다 났어요."

- 석규군의 사망 이후 인생이 많이 바뀌신 것 같아요.
"180도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가버려 가지고. (눈물) 하루 만에... 정말 석규 때문에 행복했거든요. 정말 제게 가장 소중한... (눈물) 정말 세상에 남기고 간 게 많은 아이예요. 어쩌면 벌써 다른 가정에 축복받는 아이로 다시 태어났을지도 몰라요. 어느 가정에 행복을 주고 있을지 모르죠. (눈물)

사람이 참 그래요. 그 일 있고나니까, 내 삶의 목표가 바뀌었어요. 열심히 내 일 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살다보면 행복한 날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살고 싶어요. 오십이 되든, 육십이 되든, 칠십이 되든, 저도 살면서 분명히 힘든 날이 올 거예요. 그날에 대비해 하느님께서 미리 담금질시켜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제가 NGO 홍보대사를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친구들 만나 놀 시간도 없는데 아이들을 위한 자선미술전시?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우리 아이 얘기를 하며 간증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람들 만나면 제가 그래요, 예전의 이광기는 죽었다. 그리고 지금 새롭게 태어났다. 새 인생 멋지게 살다가 나도 그날이 오면 우리 애 곁으로 가서 아빠 인생 헛되이 살지 않았다, 꼭 얘기하고 싶어요. (눈물)"

- 당시 석규군이 7살이었는데 직접 동화도 썼다고 들었어요.
"동화책을 만들다가 그렇게(눈물). 우리 연지(큰딸)가 쓰고 그린 그림책이 11월에 나와요. 집사람에게 들으니 눈물 난다 하더군요. '바퀴 달린 그림책'이라고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걸 저희가 교화에 오픈하려고 했는데, 집사람이 안 하겠다는 거예요. 석규랑 연지 거 만들어주다 그리 됐으니까. 그래서 제가 설득했죠. 집에만 있으면 뭐 하니, 하자. 그래서 시작을 했는데, 글쎄....(눈물)

첫 번째로 입회원서 쓰러 온 아이가 우리 아들과 너무 닮은 거예요. (눈물) 아이들이 100명 가량 되는데, 반 이상이 우리 아들 또래... (눈물) 그림 다 그린 뒤에 애들 손 씻겨주는데 완전히 석규 손을 씻기는 것 같아서... (눈물) 그래, 이 아이들을 통해 치유하라는 게 하느님이 뜻이겠지... (한동안 눈물) 그저 늘 든든한 믿음을 달라 기도합니다. 집사람과 제가 좌우명을 만들었어요. 나를 위한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나로 살자. 그게 정답 같아요.

그런데 이 말들, 다 편집하실 거죠? 알아요, <오마이뉴스>는 종교잡지 아니니까.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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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입니다. <장윤선의 팟짱> 진행자이기도 해요. 지은 책으로는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 <소셜테이너> 등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기자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모든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