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가 주최하는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영화대축제 포스터. 이 행사에 대해 독립영화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한다협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아래 한다협)가 G20 성공기원 영화대축제(일명 G20 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한 것을 놓고 영화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독립영화 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이 상영 목록에 오른 것에 반발해 상영 취소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 영화칼럼니스트가 이 행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한다협'이 이를 반박하는 등 공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G20 성공기원 영화대축제(아래 G20 영화제)는 G20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각 나라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한다협에 따르면 10월 28일~11월 3일까지 50여 편의 작품이 광화문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와 신촌 아트레온 등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개막작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이며, 미국영화 <프레셔스>, 중국 영화 <색계>, 아일랜드 영화 <원스>, 한국 독립영화 <반두비>와 <은하해방전선> 등이 상영목록에 올라 있다.
영화제를 주최하는 '한다협'은 2009년 11월 13일 설립된 단체로 지난 1월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및 '독립영화 전용관' 운영자 공모에서 독립영화 전용관 운영자로 선정됐다. 독립영화 피디였던 최공재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로 선정된 '시민영상문화기구' 장원재씨가 자문위원을 맡고 있어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된다. 당시 한다협은 '상업영화는 문화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 독립영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이념' 안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그러나 당시 2년 이상 안정된 운영을 펼친 기존 독립영화관 운영자를 제치고 급조된 지 2달여 만에 한다협이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돼 '심사 과정의 불공정성'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법원으로부터 '심사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이 일은 안팎의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조희문 영진위원장이 공모 심사 개입 의혹을 받으며 영화인들로부터 불신임을 받게 된 출발점이 됐다.
지난 2월 한국 영화아카데미출신 독립영화 감독들은 한다협이 운영하는 독립영화관 시네마루 앞에서 '자신들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1인 시위를 벌였고, 주요 독립영화 배급 제작사들은 지금도 한다협이 운영하는 시네마루에서의 상영을 거부하고 있다.
감독들 "G20 영화제 내 작품 상영된다니 불쾌하다"
그런데 독립영화관에서 정부의 행사를 홍보하는 영화제가 치러진다는 소식에 독립영화인들은 어이가 없다면서 발끈하는 모습이다. 독립영화 성격에 맞지 않는 행사라는 것으로 상영 목록에 작품이 올라 있는 감독들은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센터 소장은 자신의 트위터(@amenic_tweet)에서 독립영화관이 정부 정책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개탄하고 상영 결정 취소와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작품 상영 중단 등을 요구했다.
'좋은 의미로 구축한 독립영화 공공라이브러리가 정부의 정책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구나. G20 성공기원 영화제 따위에서 상영하라고 구축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가 아니란다!! 영진위는 사업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행사에 대한 작품 상영 결정을 취소하라! 그리고 한다협은 영화제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감독들의 작품 상영은 중단하라!'원 소장에 따르면 G20 영화제에 상영되는 작품들 중 일부 독립영화들은 공공적인 영화 활성화를 위해 영진위와 제작 배급사들이 구축한 라이브러리를 통해 제공되는데, 라이브러리를 구성한 목적이 정부의 정책 홍보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으로 감독들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윤성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 <은하해방전선>이 상영작 목록에 올라있는 것에 트위터(@ysimock)를 통해 '뭐 이런 재수 없는 기획이 있군요. 얘네들 이거 허락받고 프로그래밍 하긴 한건가요? 혹 다른 관계자를 통해 허락받았다면 저는 보이코트'라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영화제라 부르기도 민망한, 듣도 보도 못한 G20 성공기원 어쩌구에 저희 영화 상영하지 않습니다. 알아보니 상영문의조차 없이 멋대로 프로그램을 올린 듯. 그렇다면 과정이 오류, 구성도 오류, 제 생각엔 존재가 오류'윤성호 감독은 일단 판권을 갖고 있는 영진위에 자신의 영화가 G20 영화제에 상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 또한 "내 작품이 상영된다는 것이 불쾌하다"며 배급사를 통해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주>의 이송희일 감독은 트위터(@leesongheeil)에서 '조희문 영진위 체제에 의해 세팅된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성공개최 기원 영화대축제', 어느 나라 독립영화가 자본가들의 치어걸 노릇을 자임하나? 쪽팔리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영작인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에 주식으로 큰 돈을 날리고 벼랑 끝에 내몰린 가정을 그린 작품 <불안>으로 참여했다.
"G20 영화제, 왜 독립영화전용관서?" vs. "상영관만 제공하는 것"
이에 앞서 영화 칼럼니스트 오동진씨 역시 지난 12일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기고한 글에서 "영화판의 일부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자꾸 뒤로 가려 한다"며 "G20을 위한 영화제가 한국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지, 이걸 꼭 한국 제1의 독립영화전용관이라고 하는 시네마루에서 할 일인지, 영진위는 하다하다 별일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다협 최공재 이사장은 13일 한다협 명의로 낸 반박문에서 "시네마루가 독립영화전용관에 맞지 않는 영화제를 준비한 것처럼 확인도 없이 매도한다"며 "이 영화제가 무슨 근거로 영화판을 뒤로 돌리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 이 영화제의 후원명칭만 사용하고 있는 영진위까지 걸고 넘어지며 영화계의 현안을 말하면서 왜 그 상급기관으로 후원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문광부는 건드리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이어 '영화제 하나가 그 영화계의 현안과 상관이 있어야 된다면 다른 영화제가 열리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하나의 이슈에 따라서 관객들에게 재미있고, 질 좋은 영화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만든 영화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G20 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허은도 한다협 고문은 18일 전화통화에서 "시네마루에서 영화제를 주최한다면 그런 비판을 들을 수 있지만 한다협에서 주최하고 시네마루는 상영관으로 제공될 뿐인데, 마치 시네마루가 주최하는 것으로 오도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시네마루'의 운영주체가 '한다협'이고 영화계 인사들이 '한다협'과 '시네마루'를 하나로 보는 것에 대해 허은도씨는 하나가 아닌 별개라는 입장이었다. 그는 '한다협 안의 여러 팀 중에 시네마루 운영팀이 있을 뿐 영화제 개최는 시네마루와 상관이 없고 오직 한다협이 주관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상영관만 제공해 주는 시네마루가 대관료를 받느냐는 질문에 허씨는 "그렇지 않다"며 "학생들이나 독립영화 쇼케이스 등에는 무료 대관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방식과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독립영화 진영 인사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다협이 시네마루를 운영하는 단체인데, 한다협과 시네마루가 무슨 큰 차이가 있냐는 것이다. 한다협과 시네마루를 별개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광부·영진위 후원 없이, G20 준비위원회서만 지원
▲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가 지난 3월말에 처음 만들었다고 밝힌 'G20 영화제 기획안'. 영진위의 후원을 받고 임권택 감독을 홍보대사로 선정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 성하훈
▲ 지난 3월 'G20 영화제'를 구상하며 만들었다는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기획안 내용 중 일부 ⓒ 성하훈
허은도씨에 따르면 G20 영화제는 지난 3월말 경 한-EU 단편 교류전을 하면서 한다협 안에서 제안이 나왔다. 4월 말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 접촉해 확답을 받은 후 영진위에 후원을 요청했으나 후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이후에 문광부와 영진위는 후원 명칭에 이름만 올리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영화제 예산은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받는 6000만 원이 전부이며 이 비용을 갖고 50여 편을 상영해야 돼 손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영화계 주변에서는 지난 여름 'G20 영화제'에 대한 기획안 문건이 나돌기도 했는데, 허씨는 이 문건이 "지난 3월 말에 G20 영화제를 구상하면서 작성된 문건"이라고 밝혔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G20영화제는 한다협 최공재씨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기획서는 영진위에서도 곤란하다고 퇴짜 맞아 폐기했고, 기획서와는 무관하게 한다협-씨네마루 등에서 자체적으로 몇 개 상영관(아트레온 등)에서 할 예정으로 안다"고 전했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도 "예산 지원은 전혀 하지 않고 명칭 후원만 할 뿐"이라며 "영진위는 공익성에 배제되지 않는 행사에는 일반적으로 명칭 후원을 한다"고 말했다.
허씨는 G20 영화제에 독립영화인들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해 "이런 영화제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왜 정치적으로 개입시키냐?"며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G20 성공 기원한다면서 'G20 시선 반대' 작품들 상영?
▲ 돈으로 상징되는 자본과 물질주의의 폐해를 비꼰 영화 <황금시대> ⓒ KT&G 상상마당
영화제 상영작 내용도 논란이다. 상영 목록에 올라온 영화들의 성격 자체가 G20 정상회의와 안 어울리는 작품이라며 난센스라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
공공 재산권과 지적 재산권 강화 등이 G20에 담겨 있는데, 공공라이브러리에 있는 작품을 감독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상영하겠다는 것은 이에 반하는 행동 아니냐고 한 감독은 말했다.
더욱이 상영되는 작품들 중에는 황금만능시대 물질주의를 비판한 <황금시대>나 외국인 노동자들 문제를 다룬 <반두비> 등이 있는 등 G20 정상회의가 지향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감독들이 상영을 원치 않고 있는 영화는 이들 영화 외에 <허수아비들의 땅>과 <은하해방전선> 등 모두 4편이다.
<은하해방전선>과 <황금시대> 등 자신이 참여한 작품이 2편이나 들어가 있는 윤성호 감독은 "한마디로 G20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영화제에서 G20의 시선을 반대하는 작품들이 상영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며 "웃긴 영화제"라고 비꼬았다.
윤 감독은 또한 "벨기에 다르덴 형제의 작품도 있던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노동자들에 대한 영화로 G20의 방향과 다르다. 아무런 생각이나 개념도 없이 무조건 영화만 상영하면 된다는 인식 같다"고 덧붙였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센터 소장도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이 G20 성공을 기원하는 영화로 가당키나 하냐"면서 "이들 영화를 상영하려 하는 것은 아마도 한다협이 다양한 작품들을 공평 타당하게 상영했다는 근거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