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상민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상민. ⓒ 삼성썬더스 홈페이지


최근 은퇴한 이상민(전 삼성)은 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프로무대에서 그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바로 KCC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던 때였다. 상무 제대 후 97년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처음 데뷔한 이래 KCC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년간 이상민은 KCC를 상징하던 선수였고, 3번의 우승과 꼴찌에 이르기까지 팀의 흥망성쇠를 함께해 온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하지만 KCC와 작별해야 하는 순간은 석연치않았다. 자의가 아닌 100% 타의에 의하여 2007년 뜻하지 않은 이적파동에 휩쓸리며 정든 소속팀을 떠나 공교롭게도 라이벌이던 서울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상민은 당시 FA 자격을 얻었음에도 당초 예상보다 낮은 몸값으로 KCC와 재계약했다. 정든 소팀과도 의리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해 FA 최대어이자 KCC가 영입을 추진하던 대학후배 서장훈과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기 위하여 스스로 몸값을 낮추는 희생을 감수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상민-서장훈과 모두 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KCC는 삼성에 제시해야 할 보호선수 명단에 이상민을 제외하는 선택을 내렸고, 삼성은 망설임 없이 이상민을 선택했다. KCC의 무리한 선수영입에 대한 욕심과 삼성과의 막후 협상실패가 원인이었다. 평생 KCC 한 팀에서만 뛰었던 이상민으로서는 큰 충격을 받고 한때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삼성의 설득 끝에 코트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삼성 입단 기자회견에서 이상민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삼성과 KCC는 새로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며 대결 때마다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라이벌 구도는 서장훈의 전자랜드 이적과 이상민이 은퇴한 올해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음을 추슬러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상민은 삼성에서 오래가지 않아 ´명품 식스맨´으로 부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식스맨이지만 사실상 승부처마다 경기를 주름잡았던 이상민의 활약은 ´회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삼성을 일약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으로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삼성에서 한 차례 우승을 더 차지하고 명예롭게 은퇴하겠다던 이상민의 꿈은 아쉽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2007-08시즌에는 김주성이 버틴 원주 동부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이듬해와 마지막 시즌에는 공교롭게도 2년 연속 옛 친정팀 전주 KCC의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마지막 우승을 위하여 투혼을 불사른 이상민이었지만 결국 세월의 한계를 절감하고 지난 시즌이 끝난뒤 은퇴를 선언했다. 2009년 다시 FA 자격을 획득했을 때는 친정팀 KCC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상민은 이미  KCC와의 인연은 끝났다며 미련을 가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에서 열어주기로 했던 성대한 공식 은퇴식마저 마다한 채 이상민은 오랜시간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과 조촐한 은퇴식만을 가진 후 조용히 그렇게 코트를 떠났다.

이상민은 쿨하게 농구인생을 정리했지만, 그에 대한 예우는 은퇴 후에도 농구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친정팀인 KCC와 마지막 소속팀이던 삼성, 어느 쪽에서 영구결번을 해줄 것인가도 문제였다. KBL을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은퇴하는데 그만한 예우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과 KCC 구단은 합의 끝에 결국 KCC에서 이상민의 등번호인 11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농구를 위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공헌을 했고, 특히 KCC에서 10년을 활약하며 3번의 우승과 왕조 건설의 토대를 구축했던 프랜차이즈스타에 대한 당연한 예의였다.

그리고 지난 17일 프로농구 전주 홈 개막전 경기 시작 30분 전, 이상민의 영구결번행사가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경기 상대가 바로 이상민의 마지막 소속팀이던 서울 삼성이었다. 이상민으로 인하여 울고 웃었던 두 팀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지만, 정작 이상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은퇴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오는 이상민은 이날 영구결번식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주인공이 빠진 영구결번식이라는 점에서 '반쪽 행사'에 그쳤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2007년 이후 계속되었던 KCC와 이상민간의 악연에 작은 종지부를 찍고, 불편하게 팀을 떠나야 했던 프랜차이즈 스타의 '명예'가 복권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프로농구사에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행복했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이상민의 현역시절 모습을 그리는 영상의 마지막에 담긴 문구는 많은 팬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상민은 비록 코트를 떠났지만, 그의 등번호 11번은 돌아와 이제 농구 역사의 전설적인 한 페이지로 제자리를 찾았다. KCC와 전주의 농구역사가 계속되는 한, 팬들은 이제 영원히 이상민과 11번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농구 이상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