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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일)

안개가 짙게 깔린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 안개로 국내 항공편 무더기 결항 사태를 빚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홀통유원지 앞 바다에 떠 있는 섬들 역시 뽀얀 안개에 덮여 있다. 윤곽이 흐릿하다. 섬과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일체의 경계가 사라져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안개가 깔린 홀통유원지의 바닷가 갯벌은 온통 삽과 호미를 든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날이 좁고 뾰족한 삽으로 갯벌을 파헤치는 사람이 보인다. 낙지를 잡고 있다. 갯벌을 어슬렁거리며 낙지가 숨어 있는 구멍을 찾는다. 해안에서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낙지를 잡을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거의 5분에 한 번꼴로 낙지를 잡아 올린다. 신기하다. 낙지가 이처럼 가까운 해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잡기 힘들다'는 낙지를 삽으로 파헤칠 때마다 어김없이 한 마리씩 잡아 올리는 사람의 솜씨 또한 신기에 가깝다.

갯벌이 가진 생명력과 생산력에 감탄하다

 홀통유원지 아침 안개에 덮인 바닷가 풍경
 홀통유원지 아침 안개에 덮인 바닷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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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통유원지 해변에서 낙지를 잡는 사람
 홀통유원지 해변에서 낙지를 잡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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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면서 먼 바다의 갯벌까지 점점 더 선명한 빛을 드러낸다. 그러는 사이 갯벌 여기저기에 숨어 게와 '운저리'를 잡던 사람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투망으로 운저리를 잡기 시작한 지, 채 3시간이 되지 않아 50여 마리를 잡은 사람도 있다. 운저리처럼 서민적인 물고기도 없다.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다. 갯벌이 가진 생명력과 생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저리는 문절망둥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망둥어는 전세계적으로 6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한국에만 50여 종이 살고 있고, 그 중 '짱뚱어'라고 부르는 말뚝망둥어와 '운저리'라고 부르는 문절망둥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망둥어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이들 2개종을 부르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갯벌을 삽으로 파헤치거나 호미로 긁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육지의 농부들 같다.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 갯벌을 소유주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갯벌을 '가치가 없는 땅'으로 인식해 다른 용도로 전용하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갯벌은 결코 쓸모없는 땅이 아니다. 갯벌은 엄연한 '밭'이다. 그것도 결코 육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땅'이다. 씨를 부리듯 종패도 뿌린다. 그리고 소중히 가꾸고 기른다. 밭이나 다름없다. 그런 갯벌을 흙으로 덮어 논이나 산업단지로 만들어서 그 땅이 가진 가치가 갯벌의 가치를 능가했을까? 그래서 그 가치가 애초 갯벌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몫이 됐을까?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

고기 잡는 것만큼 힘들어 보이는, 미끼 잡기

 목서마을 바닷가 풍경. 썰물 때마다 열리는 바닷가 길.
 목서마을 바닷가 풍경. 썰물 때마다 열리는 바닷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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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통유원지를 나와서는 바로 해제반도를 벗어난다. 해제반도에 들어선 지, 3일만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찾아가는 땅 역시 반도다. 팔자 한번 기구하다. 그 반도는 무안군 운남면으로, 통상 운남반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지역 역시 해제반도와 마찬가지로 무안군과 가느다란 땅줄기 하나로 간신히 연결이 되어 있다.

먼저 운남면으로 들어서기 전에 망운면 목서마을을 지나간다. 그곳의 바닷가에서 한 아저씨를 만난다. 목에 조그만 플라스틱통을 걸고, 손에는 삽을 들고 있다. 플라스틱통이 꼭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곤충 채집 상자 같다. 막 바다에서 나오는 길인데, 무엇을 잡아가지고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플라스틱통 안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 펄과 모래로 뒤범벅이 된 갯지렁이가 잔뜩 들어 있다. 숭어 미끼로 쓰려고 잡았단다. 갯지렁이는 펄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어 잡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갯벌을 깊게 파헤쳐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상에 미끼 잡는 일이 이렇게 힘든데, 숭어는 또 어떻게 잡을까?

조금나루유원지 가는 길에 잠깐 거쳐 가는 외덕마을 앞바다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다 깊숙이 300여m 떨어진 작은 섬까지 바닷길이 열려 있다. 물이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멘트길이 바닷물로 축축하다.

물에 젖어 검은 빛이 감도는 길이 표면은 햇빛을 받아 희끗희끗 하얗게 번득인다. 어딘가 모르게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길이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데다 해초까지 덮여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몇 발자국 옮겨 딛지 못해 다시 되돌아 나온다.

쓰러진 세발낙지 동상,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길

 조금나루유원지 입구. 세발낙지동상이 서 있어야 할 곳에 동상이 없다.
 조금나루유원지 입구. 세발낙지동상이 서 있어야 할 곳에 동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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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나루 유원지는 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시 운저리를 잡고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운저리처럼 친근한 물고기도 없을 것이다. 운저리가 없었다면, 낚시 인구가 지금처럼 많아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안은 세발낙지로 유명한 곳이다. 곳곳에 세발낙지 동상이 서 있다. 조금나루 유원지 입구에도 세발낙지 동상이 있다. 그런데 어찌된 탓인지 동상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넘어뜨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며칠 전에 무안군 어민들이 낙지 문제로 서울시를 항의 방문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낙지가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에겐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동상이 어서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조금나루유원지를 나오면 바로 운남면이다. 운남면은 하나의 거대한 고구마처럼 보인다. 해제면에 비해 해안선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해안선이 단조롭다기보다는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 단조롭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해안도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섬 외곽을 돌아가는 길이 해안선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길이 복잡하지 않은 대신 단조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해안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 다채로운 풍경을 접하기 힘들다. 그런 까닭에 눈에 들어오는 게 대부분 밭, 아니면 논이다.

운남면에서는 유난히 콩밭이 눈에 많이 띈다. 기계를 동원해 콩을 수확하는 장면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길가에도 콩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해제면에서는 조를 수확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이 무렵 지역마다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작물이 모두 다르다는 게 재밌다.

 운남면의 콩밭. 콩을 수확하는 장면
 운남면의 콩밭. 콩을 수확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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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안공항 옆 도로
 무안공항 옆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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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달려, 톱머리해수욕장에 '도착'

운남반도를 벗어나서는 무안공항을 지나 톱머리해수욕장까지 신나게 달려 내려간다. 무안공항을 지나가는 길이 평지에 직선이다. 이런 길을 달려본 게 얼마만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속도를 낸다. 마침 바람마저 뒤에서 불어온다. 한번 맘껏 속도를 내보라고 등을 떠미는 격이다. 페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볍다. 톱머리해수욕장까지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린다.

톱머리해수욕장에 해변 모래사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모래사장이 있어서 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지 알 수 없다. 멀리 모래톱 비슷한 게 보이긴 한다. 그래도 뭔가 많이 부족하다. 알고 보니, 이곳의 모래 해변은 밀물 땐 거의 바닷물에 덮였다가, 썰물 때 드러난다고 한다. 그것도 평범한 해수욕장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넓은 모래사장이다.

 완전히 바닷물에 잠긴 모습의 톱머리해수욕장
 완전히 바닷물에 잠긴 모습의 톱머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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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머리해수욕장 옆 방조제 아래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톱머리해수욕장 옆 방조제 아래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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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꾼이 잡아올린 고기. 검은 등이 숭어.
 낚시꾼이 잡아올린 고기. 검은 등이 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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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아간 톱머리해수욕장은 마침 밀물 때라, 바닷가 여기 저기 낚시꾼들만 보인다.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고, 해수욕장 옆 부두와 제방 아래에도 온통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해변에 그물을 쳤다가 거둬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낚시꾼 한 분이 자신이 잡은 물고기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팔뚝만한 숭어 한 마리와 손바닥 만한 돔이 여러 마리다. 그걸 보려고 주변의 낚시꾼들이 아저씨 곁으로 모여든다. '어이쿠 미처 몰라 뵀다'는 투다. 겉모습은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데, 실력은 고수다. 오늘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새 그걸 다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오늘은 아주 적게 잡은 편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썰물 때는 해수욕을, 밀물 때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 톱머리해수욕장이다. 모래사장 위로 바닷물이 출렁이는 이색적인 광경도 볼 수 있으니, 생각하기에 따라 참 재미있는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해수욕장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자전거를 타고선 압해도 다리를 건널 수 없다니...

 복길선창, 부둣가 위로 부서지는 파도
 복길선창, 부둣가 위로 부서지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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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머리해수욕장에서 목포시까지 가는데 수없이 많은 언덕을 오르내린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주지 않았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 825번 지방도로를 타고 내려가 길을 헷갈릴 염려가 없어서 좋았다. 해가 지기 전에 목포시에 도착한다. 거기서 바로 압해도까지 들어갈지, 아니면 목포시에서 하루를 머물지 결단이 서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 앞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목포에서 압해도를 들어가는 길이 상당히 복잡하다. 목포시 경계선을 넘자마자 도로로 올라탄다는 게 그만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러고도 다시 길을 잘못 들어 대박산이라는 산 정상을 넘어가는 도로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 힘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박산을 내려와서 신호위반 차량을 단속하고 있는 일단의 교통경찰관들과 마주쳤다. 도로 위에서는 교통경찰관들처럼 친절하고 자상한 길 안내자도 없다. 반가운 마음에 씩씩한 목소리로 묻는다.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로 올라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그 질문에 다들 의아한 표정이다. 압해도를 어떻게 가지? 그런 표정이다.

 목포로 들어가기 직전, 멀리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목포로 들어가기 직전, 멀리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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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는 자동차 전용이다. 미처 그걸 알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갈 생각이고, 경찰관들은 자전거가 아닌 다른 탈것을 이용해서 다리를 건널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면서 약간의 혼선이 생긴다.

설왕설래 끝에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오고, 그 다음에 다리를 어떻게 건널지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자동차 전용이라고 해도 모른 척 무식한 척 자전거를 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공개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꼴이 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압해도를 포기한다. 막상 압해도를 포기하고 나니,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증도와 압해도를 서로 맞바꾼 셈이 됐다. 오늘 달린 거리는 102km, 총 누적거리는 1815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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