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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정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정치에 어떤 가치와 정책을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여러 갈래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정치의 대변신을 위한 토론과 논쟁을 시작한다. 진보에서 자유주의까지 함께하는 '무지개 정치'의 길을 묻는다. 이 글은 제1부 전략논의를 마무리하는 기사다. 곧이어 제2부 '의제와 담론' 편이 이어진다. [편집자말]
100만 민란 프로젝트가 호응을 얻고 있다.
 100만 민란 프로젝트가 호응을 얻고 있다.
ⓒ 국민의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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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의민주주의에 맞는 정당을 세우고 이 용광로 속에서 제대로 된 경선을 통과하는 사람이 인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야권에 인물이 없다고? 수구는? 일대일로 붙여보자. 박근혜만 못할까, 김문수만 못할까. 문제는 틀이다. 틀이 없으니 인물도 안 보이는 게다. 야5당은 스스로 판을 못 짠다. 국민이 짜줘야 한다."

날마다 길거리에서 시민과 만나며 '야권단일정당'을 모색 중인 영화배우 문성근(57)씨의 말이다. 2002년 노사모로 뛰었던 그가 2012년 권력교체기엔 야권단일정당으로 국민적 '대안' 만들기에 나섰다. 새로운 정치의 길 찾기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0월 15일 현재 2만5252명이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오마이뉴스>와 첫 인터뷰를 한 뒤 46일만의 일이다. 그 수가 최소 10년 이상 시민운동을 해온 웬만한 시민단체 회원 못지않다.

'유쾌한 민란 프로젝트'에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민란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인 '우리리서치'가 지난 7일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의뢰로 전국의 성인남녀 1005명을 상대로 ARS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벌인 결과, 한나라당에 맞서는 야권의 단일정당이 만들어진다면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그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0.2%는 야권단일정당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야권단일정당이 만들어지면 가입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당원으로 가입하겠다"(5.6%)거나 "당원 가입은 어렵지만, 지지하겠다"(64.6%)고 밝혔다. 가입도 지지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29.7%에 그쳤으니, 70%가 넘는 국민들이 '야권단일정당'을 지지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국민참여 경선으로 야권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면?'이란 물음에는 "참여하겠다"(47.1%)와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지지하겠다"(38.3%)는 응답이 85.4%를 차지했다. 여야가 '1:1 대결구도'를 형성한다면 대선에선 52.5% : 31.0%로, 총선에서는 55.3% : 29.1%로 야권 단일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가 많았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야권이 합치면 국민은 찍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상황은 어떤가. 백가쟁명이다. 우선 야권에 정당이 5개나 된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수십 도토리가 굴러도 수박 하나 못 당한다는 속담처럼, 야권에 흩어진 5개 정당이 아무리 선전한다한들 '보수대통합' 한나라당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와 박근혜 전 대표가 10월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들의 만찬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8월 21일 회동 이후 둘 사이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이명박 대통령와 박근혜 전 대표가 10월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들의 만찬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8월 21일 회동 이후 둘 사이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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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보수쪽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미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8.21 박근혜-이명박 회동'의 결과가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양자 간에 '권력재창출'을 위한 교감이 오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2012년 집권을 위한 보수대통합 논의와 함께 개헌까지 언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미 김종인 전 청와대 수석을 비롯한 핵심참모들을 한 축으로 '복지정책'의 얼개를 짜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부각됐던 '친환경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에서 진보진영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아버지의 최종 꿈이 복지국가였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도 이 같은 의지는 확인된다.

그러나 진보는 전략과 담론, 인물 모두 논의만 무성한 상태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만들어놓은 '친환경 무상급식' 담론이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키긴 했지만 현재로선 특별히 눈에 띄는 진보의 담론과 정책은 없어 보인다. 있다면 '건강보험 하나로' 정도다.

빅텐트, 진보대통합, 야권단일정당... 진보는 어디로?

지방선거 이후 진보진영에서 가장 뜨거웠던 전략부터 살펴보자. 빅텐트론, 진보대통합정당론, 야권단일정당론 등 논의는 무성하나 하나로 모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정치권에 미국 민주당 모델인 '빅텐트론'을 화두로 던졌지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486 정치의 핵심 브레인인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빅텐트론'에 동의하는 정도다.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이유는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것.

2012년 민주진보진영의 집권전략
 2012년 민주진보진영의 집권전략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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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빅텐트론'에 대해 "한국정치의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한국의 정당구조는 보수(한나라당)-개혁적 자유주의(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진보(민노, 진보신당)로 3분할돼 있는데 이를 둘로 나눠 규합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의 퇴행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을 제외한 비민주 진보대통합정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학영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도 조희연 교수와 맥을 같이한다. 다만 "헤어졌던 진보정당들이 다시 통합하기엔 아직 서먹하니 진보적 시민운동가들이 함께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보탰다.

진보대통합정당론. 이 역시 현실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하나의 정당 안에서 공존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 시각이 '비민주 진보대통합정당론'의 이유다.  

야권단일정당론은 기존 정당의 기득권 포기라는 문제가 있다. 각자 쥐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고 '제3지대 벌판'에서 '야권단일정당'을 하겠다고 나설 정당이 있겠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호남 기득권 세력이 '다 놓고 한 데 뭉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얘기다. 문성근씨가 총대를 메고 거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이건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

국민은 야권이 한나라당과 '1 : 1 구도'를 만든다면 찍어줄 의사가 있다. 적어도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정당은 국민의 요구대로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합칠 준비는 돼 있지 않다.  협쳐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게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반대중이 함께 하는 '시민정치조직' 모델은 불가능한 꿈일까.

1987년 5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당시 민통련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등이 주축이 돼서 각 사회운동진영과 종교계, 학생운동조직 등이 광범위하게 결합해 결성한 단체다. 세칭 '국본'으로 불린 이 단체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이었고 6월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사실상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킨, 정치적 구심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빅텐트론'을 주장한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말대로 '시민정치조직'이 87년 민주동맹을 2012년 복지동맹으로 전환하는 매개체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어떨까.

시민사회연대회의는 최근 2012년 권력교체기에 앞선 '전략논의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정치개혁위원회'를 꾸리고 이 안에서 선거법과 정당법 등의 제도개혁 논의부터 시민정치운동에 대한 전략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연대회의가 정치개혁위원회를 꾸리는 까닭

부패정치인에게 경고 카드를 보여주고 있는 총선연대 포스터.
 부패정치인에게 경고 카드를 보여주고 있는 총선연대 포스터.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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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가 과거보다 발 빠르게 '정치개혁위원회'를 출범하고 전략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2002년과 2007년 두 번의 중대 선거 국면에서 나타났던 '시민운동 무용론'을 막아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00년 시민사회운동은 총선연대 낙선운동으로 정치권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졌다. 이 불복종운동으로 수많은 부패정치인들이 퇴출됐다. 물론 이명박정부 이후 살아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시민운동진영은 2002년과 2007년 대선 때 경선자금 공개나 부정선거 단속, 매니페스토 같은 형태의 아주 소극적인 운동방식에 머물렀다. 그러나 다가오는 권력교체기엔 적어도 '낙선운동'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충격파를 던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오성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2012년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며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보여줬던 선거연합의 실험을 바탕으로 통합과 연대의 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유권자 운동을 기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갈 수도 있다. 정책능력이 있는 시민사회운동진영과 대중행동단 성격이 짙은 '민란 프로젝트'가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것도 한 방법일 될 수 있다. 시민사회연대회의 바깥에 국본과 같은 형태의 시민정치조직을 꾸리고 그 안에 '민란프로젝트'와 시민사회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 전문가집단, 누리꾼단체, 원로, 정치권 등이 망라돼 '1 : 1 구도 만들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1987년 국본 형태의 거대 시민정치조직이 만들어지고 이 안에서 국민참여경선이 치러진다면 이를 마다할 야권의 대선후보가 있겠다는 것이다.  '시민정치조직'이 국민참여경선의 내용과 절차를 정하고 이에 따라 정치일정이 진행된다면 야권의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의외로 쉬워질 수 있다.

꿈 같은 얘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란 프로젝트'와 '시민사회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는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진보의 무수한 전략논의는 어쩌면 하나의 '시민정치기구'로 수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누가 이 거대한 그림의 총대를 메고, 조각의 퍼즐을 맞춰갈 것인가다.

선거가 임박하면 '빅텐트'가 됐든, '야권단일정당'이 됐든, '진보대통합정당'이 됐든 결국 하나로 수렴될 것이라고 말했던 문성근씨의 전망이 현실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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