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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천국을 만들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첫 강렬한 느낌이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세계 최대의 빈국인 에티오피아에서 어슴푸레 동이 트는 광경을 보면서 난 내 얼굴이 덜컹거리는 버스 창문에 붙어버리는 줄 알았다.

 

수단과의 국경마을인 메타마에서 버스를 타고 곤다르로 향하는 길은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의 상태는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창문 밖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온통 무한한 가능성으로 덮여있는 초록들, 목동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염소들, 소 떼들, 태곳적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은 나무들. 그리고 인공적이지 않은 사람들. 물론 너무나도 인공적이지 않아서, 아직도 극빈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승객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발 밑에서 꼬꼬댁거리는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으며, 가끔은 처량한 운명이 짐작되는 염소가 타기도 한다. 그렇게 새벽 5시에 모인 승객들이 함께 반나절은 달려야 나의 다음 행선지인 곤다르(Gondar)에 닿는다. 곤다르는 소규모의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흙집이지만 오밀조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집마다 색색깔의 페인트로 칠해놓아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같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유럽의 어느 고대 성을 상상케 할 만한, 16세기의 파실(Fasil Ghebbi) 성도 존재해서 그 성에서 혼자 고즈넉히 산책을 하다 보면 꼭 중세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실 성 같은 경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상식과는 많이 달라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견고하고 튼튼한 여느 유럽 성에 못지 않은 그 위용을 보자면 지금은 세계적 빈국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의, 역사의 순환이 느껴진다.

 

곤다르에 막 도착해 피곤했던 나는 '돌아다닐 것 없이 그냥 쉽게 찾자!'라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여행서적의 제일 첫 줄에 나와있던 숙박업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여행책자가 만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 물가며 장소들의 오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이번 경우처럼 없어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을 머물 나의 보금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안녕? 여행 중이니? "

 

내 옆방에 머무는 듯 한 금발머리의 유순한 인상의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 안녕? 응. 지금 막 곤다르에 도착했어. "

 "웰컴! 반가워. 스위스에서 온 메리헨이라고 해."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는 메리헨의 동행이라는 데이빗까지 서로를 소개했다. 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메리헨은 아디스 아바바(에티오피아의 수도)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한달간 하다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에티오피아를 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그녀의 동행 데이빗은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 스위스로 입양되어, 에티오피아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사실, 우리가 시미엔 마운틴을 갈 생각이거든. 사라 괜찮으면 너 같이 가자. 네 계획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셋이 가면 가격도 함께 부담해서 좀 더 저렴할 것 같구… 한 번 고려해봐."

 

난, 지금 나에게 그렇게 제안해 준, 메리헨과 데이빗에게 깊은 맘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하고 있다. 고작 하루의 트래킹이었지만 당시의 내 계획엔 없었으므로 한 사람의 부담금 70달러라는 돈을 쓸지 말지는 꽤 큰 고민이었다. 메리엔과 데이빗이 그렇게 같이 가자고 채근하지 않았다면 난 시미엔 마운틴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나중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그 시미엔 마운틴. 물론 몰랐다면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 자체도 들지 않았겠지만 몰라서 아무 생각 없는 것보다, 알아서 미래를 갈망하는 것이 나에겐 더 맞는 듯싶다. 열심히 땅을 파며 뭘 먹고 있는 개코원숭이(Baboon)들. 1미터 앞까지 가기까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 사람인데 나 좀 쳐다봐주지…'라는 생각에 살짝 섭섭해지는 순간이다.

 

태고 적부터 그대로 있어왔던 것 같은 나무들, 걷는 도중 만날 수 있는 목동아이들과 염소들, 내 바로 앞의 까마득한 낭떠러지와 매트리스처럼 깔린 구름들…. 시미엔 마운틴은 진정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하게 있어서 인간이 크지 않음을, 다른 우주 만물과 함께 존재하는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매개체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는 늘 그런 생각에 겸허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외래어나 지명의 경우, 소리나는 발음으로 기재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부재 중으로 인해 오랜만에 기사 전합니다. 


태그:#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시미엔, #종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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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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