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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월 22일), 이른 아침 양산에서 출발해 햇빛 쨍쨍 무덥기까지 한 맑은 날씨 속에서 차를 달려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남쪽 끝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가다가 강원도에 접어들면서 잔뜩 흐렸다. 이내 비를 뿌렸고 짙은 안개 속에서 빗길을 달려 강원도 속초 설악산 밑 설악동 야영장에 도착했다. 8시간 가량 달려와 텐트를 치고 지쳐 잠이 들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이튿날, 날이 하 수상하여 설악산 등산을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시간이 지나도 비는 오지 않고 잔뜩 흐리기만 해 어렵게 용기를 내어 산행을 하기로 했다. 꾸물거리다보니 오전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고, 하는 수 없이 최단 거리라는 오색에서 가는 길을 택했다.


설악산 대청봉까지 닿는 코스는 한계령에서부터 시작해서 가는 길과 장수대, 설악동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우린 오색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대청봉까지 간다. 서둘러 산행준비를 하고 설악동 야영장을 나와 오색까지 차로 달렸다. 꽤 먼 거리를 달렸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빨간 바지를 입은 남자는 어디에?

 

오색탐방지원센터(12:10)에서 시작하는 산행, 여기서는 하산해서 쉬고 있는 사람과 등산을 하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고 있었다. 등산로를 접어들었다. 처음엔 편편한 바윗길이 계곡을 기고 이어지더니 곧 급경사 등산로가 눈앞에 엎드려 있었다. 길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앞으로의 산행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라도 하듯.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 등산로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고개를 한껏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급경사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져 있어 금세 몸은 땀으로 젖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높은 경사길이 눈앞에 높이 솟아 있어 걸음에 탄력이 붙지 않았다.


등산 초입부터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까지 닿기까지 계속되는 급경사오르막길이다. 높은 경사길이라 1㎞를 걷는데 1시간이 걸렸다. 이번처럼 등산초입부터 끝까지 급경사로 된 등산길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길을 따라 하산해 본 사람은 다시는 이쪽 길을 택하지 않는단다. 관절에 무리가 가는 길이다.


 

1시간 20분 정도 급경사 등산로를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니 완경사길이 조금 나왔다. 처음부터 높은 경사 길을 오르다보니 완경사 길은 평지처럼 느껴졌다. 역시 힘든 일을 먼저 하면 나중 일은 뭐든지 수월하게 여겨 지나보다. 여전히 등산로는 평지길 단 한 번도 없고 경사 높은 길로 이어지다가 완경사, 다시 급경사 완경사로 반복되고 있었다.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조망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앞에는 길이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날은 잔뜩 흐리고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게 깔렸다 물러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해발 910m(1:55)에서 잠시 휴식했다. 공원입구에서 1.7km를 걸어올라 왔다. 대청봉까지는 3.3km를 남겨두고 있었다.


대청봉까지 2.7km를 남겨둔 지점에 이르자 폭포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뻥~하고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 바위를 타고 밑으로 밑으로 소리 높여 내리흐르는 계곡 물소리, 그 물길 옆을 지나고 있었다. 가파른 길옆으로 계곡은 옆에 끼고 가는 길이다.


 

나무로 된 높은 계단 길 지나자 급경사 오르막길 꺼이꺼이 올라가고 고도를 높일수록 조그만 앉아 쉬어도 곧 추워졌다. 1110m지점에서 대청봉까지는 2.0km다. 지금 시각 오후 3시 10분.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쳐갔다. 제2쉼터(4:10)다. 여기서 1시간 거리라고 표시 되어 있다. 제2쉼터에서 대청봉(1,708m)까지는 1.3km 남았다.


끝없이 오르막 급경사길 이어지고 지쳐갈 즈음 까꼬막 길 끝나고 완만한 경사길 이어졌다. 많이 지쳤을 때 까꼬막길 끝나고 완만한 흙 바위 길로 이어졌다. 정상까지는 약 500m 남았다.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를 입고 걸어가는 길엔 안개가 자욱했다. 드디어 대청봉 정상이 지척에서 느껴졌다. 대청봉에 가까이 올수록 더 짙은 안개가 자욱해 사물은 안개에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올라갈수록 나무들은 몸을 낮추고 있었다.

 

짙은 비안개 싸여 있는 안개 속에서 무언가 나타날까봐 무섬증이 일순 일어났다. 순간 안개 속에서 갑자기 눈앞에 빨간 바지를 입은 등치 큰 남자가 나타나 앞서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을까. 어디서 오색에서 올라오는 길에서 빨간바지를 본 적이 없는데, 순간 긴장했다.


두툼한 배낭을 짊어지고 짙은 안개 속을 앞서 걷던 남자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벌써 대청봉 정상을 지나 중청대피소까지 닿진 않았을 텐데 대청봉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빨간바지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날까봐 긴장해 두리번거렸다.


그때, 남녀 한 쌍이 활기찬 걸음으로 안개 속을 걸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중청대피소 쪽에서 대청봉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반가웠다. 그들 두 사람과 대청봉 정상에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빨간 바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2년 만에 만난 대청봉, 여전히 안개 속 만남

2년 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을 때도 이렇게 짙은 안개 속에 비까지 내렸다. 이번에도 역시 대청봉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그 진면목을 알 수가 없었다. 야속하기도 하여라. 남에서 북으로 북으로 먼 길 달려와 설악산 대청봉을 만나러 왔건만, 벌써 두 번째 만남에도 안개 속에 굽이굽이 감추고 그 진면목을 여전히 드러내지 않는 대청봉,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반갑다.

짙은 안개 속에 낮게 엎드린 나무들이 보였다. 비바람에 쓸려서 자라고 싶어도 자랄 수 없어 바짝 엎드린 나무들, 그 나무들 속에 하얀 구절초가 보였다. 안개 속에서 하얗게 도드라졌다. 이토록 높은 산상에 핀 들국화는 외롭지도 않은가보다.

 

안개 속을 더듬어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길, 제법 멀었다. 안개 속에서 중청대피소가 어디쯤 있을 것이라 예측만 할 뿐 안개만 자욱했다. 길을 더듬어 걸어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비 소식에 예약을 많이 취소했는지 중청대피소는 사람들로 꽉 차지 않고 조금은 헐렁했다. 혹시 빨간 바지가 있나 보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빨간바지를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지하 1층 취사장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잠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등산 초입부터 대청봉 정상까지 올라오는 시간까지 계속되던 경사 높은 오르막길을 힘들게 걸어왔더니 많이 고단했나보다. 다리가 단단하게 뭉쳤다. 길에서 길로 이어진 설악산 등산, 사진 속에도 안개에 휩싸인 길의 표정밖에 담긴 것이 없었다. 깊은 잠에 떨어졌다.


산행수첩

일시: 2010. 9. 23


등산: 설악산 대청봉(1,708m)

산행기점: 오색(남설악탐방지원센터 오색 분소 400m)(12:10)-대청봉(1,708m)-중청대피소95:45)

특징: 오색-급경사 등산로-완경사 등산로-폭포지난 후 급경사-완경사-대청봉정상

중청대피소: 저녁 9시 소등/ 매점운영: 새벽 6시~저녁 8시까지. 물이 귀함


태그:#설악산, #오색, #대청봉, #중청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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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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