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러시아 성장 영화 <리턴> 포스터

러시아 성장 영화 <리턴> 포스터 ⓒ 렌 필름


어린 시절 사내아이라면 한 번 쯤 선언했던 말이 있습니다.

"난 커서 엄마랑 결혼할 거야!"

엄마를 독점하고 싶은 이 욕망은 자연스레 아버지에 대한 질투와 경쟁으로 이어져 아버지가 벗어 놓은 신발과 윗도리를 경이로운 눈으로 살피는 한편 남근을 찬 남자로서 아버지와 자신의 동일체를 확인하고, 아버지와 대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 사이라면 누구나 겪어 왔던 오래된 이 질문에 응답한 영화가 있습니다. 장대한 러시아의 풍광을 배경으로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로 '남자'를 찾아가는 큰 아들과 경계심으로 부글거리지만 점차 유대감을 갖는 작은 아들, 이 둘이 어떻게 아버지를 극복하고 남자가 될 준비를 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한 한 편의 성장영화 <리턴>(2003년 작)입니다.

신인 감독의 첫 영화임에도 제60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리턴>은 부자간의 '관계의 소통'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마치 돈 벌어오는 기계와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 채 소 닭 보듯 뻘쭘해진 오늘날 우리들의 부자관계가 정상이냐고 힐난하듯이.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 온 아버지와 떠나는 여행

영화는 눈이 시리게 펼쳐진 호수 위 까마득한 망루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 내리는 소년들의 모습으로 오프닝을 엽니다. 남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소년들이 하나 둘 뛰어 내리고 형 안드레이(블라디미르 가린)가 동생 이반(이반 도브론라보프)에게 자신을 뒤따라 뛰어내리라는 말을 남기고 몸을 던집니다. 하지만 얼어붙은 이반은 꼼짝도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합니다.

영화의 이 장면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형 안드레이와 의심 많고 쟁쟁거리는 동생 이반이 어떤 계기를 통해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해 가는지를 상징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 거리며 놀다 집으로 돌아 온 어느 날, "아빠가 자고 있으니 소란 피우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는 엄마의 말을 통해 그 상징은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이럴 수가? 방문을 열어 보니 덩치가 산만한 웬 남자가 곯아 떨어져 있습니다. 형제는 계단을 뛰어올라 다락방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낡은 사진첩 사진 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맞아, 저 사람이야!" 아버지(콘스탄틴 라브로넨코)가 12년 만에 불쑥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버지와 떠나는 일주일간의 여행이 시작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형제간의 '관계 방정식'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안드레이는 쩔쩔매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며 고분거리는 반면 이반은 의심이 가득 찬 실눈을 치켜세우며 사사건건 반항합니다. 낚시 여행의 목적지인 정체모를 섬으로 근접할수록 형제 사이에 불협화음은 불거지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갈등의 골은 깊어지면서 생전 처음 떠난 세 부자의 여행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리턴>은 얼핏 아버지의 귀환을 뜻하는가 싶지만 아닙니다. 낮선 아버지와 떠난 여행을 통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의 귀환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리턴'이 또 다른 떠남으로 이어지고 두 아들의 '리턴'은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2년이라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짙게 드리워졌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소년에서 남자'로 자신의 인생을 개간하기 시작하는 두 아들의 성장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여백의 미를 통해 부자관계에 대해 성찰하다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떠난 의문투성이 여행에서 낚시를 하는 안드레이와 이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형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간다.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떠난 의문투성이 여행에서 낚시를 하는 안드레이와 이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형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간다. ⓒ 렌 필름


<리턴>은 공석이었던 아버지의 자리가 채워지면서 생기는 갈등과 혼란을 전제로 하지만 드라마의 통상적인 스토리텔링을 거부합니다. '왜 아버지는 12년 전에 떠났던 걸까,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또 뭘까, 뭐 하는 사람일까, 은밀하게 만나는 저 사람은 누굴까? 우리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형제가 품는 이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시작된 일주일간의 여행 또한 부자간의 화해를 위한 것인지 또 다른 결말을 위한 것인지 전혀 힌트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12년 만에 조우한 아버지와의 어색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시간을 통해 두 아들이 어떻게 한 뼘 한 뼘씩 성장해가는 지를 밀도 있게 그려 냅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결말과 비극에 대한 복선을 깔아 놓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두 형제가 아버지를 처음 보는 장면입니다. 침대에 누워 퍼지게 자고 있는 아버지를 발밑에서 찍은 이 장면은 마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부활을 준비 중인 예수와 닮은 모습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재현됩니다.

이 같은 복선은 영화가 거대한 성서적 알레고리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버지의 사진이 성화들 사이에 꽂혀 있는 거나, 두 형제의 이름과 성격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실한 믿음의 아브라함과 신의 뜻에 의심이 가득했던 이반과 비슷하며, 일주일간의 여행이 창세기에서 신이 세계를 창조했던 7일과 일치한다거나, 12년 만에 돌아 온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기 직전 식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는 모습은 예수와 12명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런 기독교적 아이콘과 비유의 장치들에 대해 답을 내 놓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둘러싼 '대체 왜?' 라는 질문에도 명징한 해설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그 여백만큼 부자관계에 대한 '생각의 창고'를 풍성하게 개방합니다. 수렁에 빠진 차를 꺼내는 법을 배우면서, 약속시간을 어겼다고 두들겨 맞아 코피를 흘리면서, 관심을 끌기 위해 투정부리다 장대비 속에 내팽개쳐지는 대목 등을 통해 과연 아버지와 아들간의 소통하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묵직하게 조명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극복하고 남자가 될 준비를 하는 소년들

아버지는 맏아들인 안드레이에게 깡패에게 빼앗긴 돈을 어떻게 찾아오는지, 식당에서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빗속 운전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가르쳐 줍니다. 안드레이는 꾸중과 칭찬을 받으면서 엄마에게서 배울 수 없는 세상살이에 대한 학습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지갑과 자동차 핸들을 건네받으며 남자임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장자에게 모든 재산과 기술을 물려주듯이.

반면 이반은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합니다. 이반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잘했다, 이반"이라는 칭찬을 듣지 못한데 연유합니다. 즉, 이반의 아버지에 대한 투쟁은 형 안드레이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쓰는 것과 무늬만 다를 뿐 실상은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아버지에 대한 선망과 부정이 뒤섞인 두 아들의 서로 다른 딜레마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모습을 바싹 뒤쫓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또한 영화 속 부자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12년간의 공백을 제외하곤 말이지요. 너무 건조하지 않냐고요? 사실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달라진 모습 그대로 제 자리를 찾아 '리턴'하는 것이 보통의 부자관계입니다. 다만 <리턴>은 바로 그 지점에서 두 형제가 어떻게 아버지와 화해하고 소년에서 남자의 길로 나서지는 그 통과의레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숨 가쁘게 펼쳐 놓습니다.

소년에서 남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통과 제의

 여행의 종착지인 섬을 향해 노를 저어가는 아버지. 섬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형제가 통과제의를 하는 곳이자 아버지와 또 다른 리턴을 준비하는 곳이다.

여행의 종착지인 섬을 향해 노를 저어가는 아버지. 섬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형제가 통과제의를 하는 곳이자 아버지와 또 다른 리턴을 준비하는 곳이다. ⓒ 렌 필름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여행의 종착지인 외딴 섬에서도 아버지의 하수상한 행동은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낡은 오두막 바닥을 파헤쳐 여행의 목적처럼 보이는 작은 상자를 찾아낸 뒤 돌아갈 채비를 서두릅니다. '대체 저 놈의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안드레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이반은 아버지가 아끼는 칼을 훔친 뒤 정해진 시간 내에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정면도전합니다. 아버지에게 칼을 들고 맞대거리하다 울며 도망가던 이반은 위험한 망루에 올라가고 뒤 따르던 아버지도 망루에 올라가다 떨어져 죽습니다.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던 안드레이는 아버지가 죽는 순간 곧 아버지를 대신합니다.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반에게 생전의 아버지처럼 간결하고 짧은 어투로 명령합니다. 아버지가 섬으로 들어올 때 가르쳐준 방식대로 섬 밖으로 탈출해 집으로 되돌아가는 안드레이의 모습은 아버지의 현신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망루에서 뛰어 내리지도 내려오지도 못한 채 엄마가 올 때까지 벌벌 떨고 있던 이반 역시 아버지에 대한 도전 끝에 까마득히 높은 망루를 기어 올라가며 자신을 옥죄어 왔던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경쟁자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한편 혹독한 성장통을 치러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아버지의 시신과 작은 상자를 수장시키는 두 형제를 통해 12년 동안의 공백에 종지부를 찍고 영원의 안식처에 잠드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리턴'을 선사합니다. 이제 아버지는 다시는 귀환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두 형제가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제의를 거치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귀환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안드레이와 이반에게는 망루에 오르는 일보다 더 혹독하고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다는 이렇게 힘든 것이며, 하나의 벽을 넘으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벽이 등장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갈 그 자리에 아버지는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형제는 더 이상 아버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재회와 이별이라는 삶의 리턴 속에 두 형제가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소년에서 어른으로 접어들며 여행을 출발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즉 '남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리턴>은 여행을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안드레이와 이반의 모습을 통해 비록 아버지는 죽었지만 그와 함께 한 짧은 시간과 유전자는 '리턴'해 두 아들과 함께 영원히 동거한다는 것을 엔딩 크레딧을 올리며 확인시켜 줍니다.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들이 바빴던 만큼 헤어짐 조차 아쉬웠던 한가위. 최장 9일 간의 연휴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다가도 달리 '방콕'을 벗어날 작전이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다 극장영화까지 시들하다? 그런 당신에게 아들(아버지)과 함께 퍼질러 앉아 벙긋이 웃을 수 있는 DVD <리턴>을 추천합니다.

리턴 아버지와 아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러시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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