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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강화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우리나라 해안선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달리는데, 그 길이 때로는 시멘트로 다진 농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흙과 자갈이 뒤섞인 비포장 길이 되기도 한다.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 농로에 들어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끔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차례 헤맸다. 그래도 비포장 길은 나름 운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닷가 갯벌에 제방을 쌓고 그 위로 길을 낸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런데 이 길이 비가 내리던 때 곤죽이 된 상태로 차들이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울퉁불퉁 난장판이 되어 있다. 그나마 산악자전거를 타고 왔기 망정이지, 미니벨로나 사이클을 타고 왔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뻔했다.

 

길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과감히 진입했다. 가다 못 가면 돌아가면 되지, 정 힘들면 끌고서라도 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나머지, 결국 하루를 더 강화도에서 묵게 됐다. 운치 얘기를 했는데, 길이 너무 험해 그런 거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갯고랑 깊은 뻘을 보면서, 머릿속에 자꾸 선지가 떠올랐다. 한 점 뚝 떼서 자글자글 국을 끓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물게 상쾌한 아침... 시작은 좋았다

 

강화읍에서는 잘 자고 일어났다. 드물게 상쾌한 아침이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때만 해도 어제에 이어 오늘 또 하루도 순조로운 여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서는 무언가 허전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곳을 관리하는 아저씨를 만나서는 강화도에서 고인돌 유적지를 가꾸고 보살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양념 삼아 들었다.


강화도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 내 앞에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걸어갔다. 눈여겨 볼 것이 탁자식 고인돌 1기뿐이지만, 그 앞에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 드물고, 안내소도 없고 문화해설사도 없던 예전의 썰렁한 유적지가 아니다. 강화도에는 모두 150여 기의 고인돌이 산재한다.


고인돌 유적지 앞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대식 건물 한 채가 들어서고 있다. 강화읍 갑곶리 강화대교 근처에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이 옮겨올 자리란다. 고인돌축제가 개최되는 10월 말 개관 예정이라는데, 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강화도 서쪽 해안 최북단에 있는 창후리 선착장까지 유쾌한 여행이었다. 도로가에 포도나무가 즐비했다. 포도가 제철인지 갓 딴 포도를 상자에 담는 주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도로 위로 싱그러운 웃음소리와 달콤한 포도 향기가 넘실거렸다.


창후리 선착장 앞에서는 한 어르신에게서 사진병으로 군대에 다녀온 자식 이야기를 들었다. 지나가는 객을 붙잡고 자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르신이 남 같지 않다. 그때 아주 잠깐,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강화도 사람들의 이 친근한 인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창후리 선착장에서 다시 군인과 마주쳤다. 선착장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긴 설명에 들어갔다. 그의 말에 민간통제선, 사진촬영금지, 사전교육 등의 용어가 들어 있다. 나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같은 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군인이 안쓰러워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해주고 뒤로 물러섰다. 여기서 교동도 들어가는 배를 탄다. 섬 주민이 아닌, 일반인들은 '사전교육'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창후리 어판장 좌판에는 마른 새우가 풍성했다. 모두 그곳 어부들이 직접 잡아 말린, 순수 국내산이다. 한동안 그곳에서 주민들이 온갖 잡다한 바다 생물 사이에서 잔 새우를 골라내는 작업을 지켜봤다. 콩알을 세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나서는 됫박에 담아 파는 수만 마리 새우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저 새우 한 마리 한 마리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새우 한 마리 하찮게 볼 일이 아니다. 등 굽은 새우 뒤에 등 굽은 어민이 있엇다.

 

'사생결단' '스릴만점' 본방은 농로에서 벌어졌다 
 

이제 조금 즐겁다 싶었던 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자. 앞서 얘기한 농로와 비포장 길이 바로 창후리 선착장 부근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길을 못 찾아 3km 가량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잘못 든 걸 깨닫고 다시 되돌아갔다. 내가 한낮 땡볕 아래서 같은 수고를 두 번 되풀이한 건, 그곳에서 무언가 색다른 풍경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농로와 비포장 길에서 시간을 지체한 일은 앞서 얘기한 대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바닷가 제방 위 '비포장 길'에서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하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그냥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사생결단 스릴만점 자전거여행의 본방은 '농로'에서 벌어졌다.


비포장 길에서 내려와 농로에서 유유자적 길찾기 게임을 하고 있을 때다. 농로에도 막다른 길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깨달았다.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한 무더기의 개똥을 발견하고 일순 긴장했다. 설마 여기에까지 개들이 드나드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깟 개똥이 무서워 도망갈 내가 아니었다.


막다른 길임을 알고 돌아설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개떼가 출몰했다. 비로소 근처에 다 쓰러져 가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잡동사니에 파묻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런 막다른 길에서 나 홀로 개떼와의 조우라니, 참 볼썽사납게 됐다. 자전거를 탄 나를 발견한 개들이 맹렬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돌려 개 무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장딴지를 물어뜯을 기세다. 피하기 힘든 일이다.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섰다. 지금까지 개에게 쫓긴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오늘처럼 개떼에게 둘러싸이기는 처음이다. 검은 놈, 흰 놈, 바둑무늬가 있는 놈, 다리가 짧은 놈, 몸통에 비해 머리가 유난히 큰 놈, 쓰레기 더미 위로 머리만 달랑 올려놓고 눈치를 보느라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 참 다양한 구성 인자를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나마 녀석들 모두가 하나같이 덩치가 작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한 놈이 내 퇴로를 막는 걸 보고 재빨리 헬멧을 벗어 들었다. 여차하면 헬멧이라도 휘두를 생각이었다. 헬멧을 손에 든 게 효과가 있었던지 내 뒤를 막고 선 놈이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한 풀 기가 꺾인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따라오면 다시 멈춰서고, 그러다 몇 발 다시 뒤로 물러서고 하면서 녀석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 싶을 때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되돌아 나오는데, 그 길 여기 저기 개똥 투성이다. 여기가 자신들의 구역임을 확실히 해둔 셈인데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예전에 '개주인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자전거 추격자임을 자임하는 개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글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을 겪고 나니 정말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누렁이가 내 다리에 주둥이를 들이대려는 순간...

 

이날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낙조마을을 지나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마주쳤다. 언덕 위로 가까스로 올라섰을 때, 앞에 목끈이 없는 덩치 큰 누렁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농로에서 당한 일의 재판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언덕 아래 역시 급경사였다. 언덕 아래로 질주하는 자전거여행자를 따라올 개는 없다.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걸 본 누렁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달려왔다. 이때 겁먹지 않고 대범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누렁이가 내 다리에 주둥이를 들이대려고 하는 찰라, 다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다행히 부딪치지 않았다. 녀석도 내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마지막 순간에 몸을 움츠렸다.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왔다. 뒤도 안 보고 달아났다. 도대체 누가 저런 덩치 큰 개를 도로에 풀어놓고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 한참 달려와서야 녀석의 콧중배기를 걷어차지 못한 걸 후회했다. 강화도에는 유난히 풀어 키우는 개들이 많아 보인다. 다 좋은 일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개를 좀 더 잘 관리해야 하지 않나? '반려견'이 '짐승'이 되어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사진으로도 100% 다 잡아내기 힘든 명장면

 

오늘 여행의 백미는 선수선착장에서 바라다 본 바닷가 풍경이었다. 선수선착장에 서서 바다 건너 외포리가 건너다보이는데 그 풍경이 가히 절경이었다. 무슨 조화 속인지 바다 위로 옥빛 물띠가 길게 지나가고 있었다. 서해 바다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물빛이다. 외포리 마을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외포리를 둘러싼 산과 바다와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선두리 선착장에서 바라다본 갯벌 풍경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해가 지면서, 갯벌을 뒤덮은 함초가 금가루라도 뿌려놓은 듯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100% 다 잡아내기 힘든 장면이다. 그 모두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풍경이다. 보는 사람마다 감정도 다르다. 언제 또 같은 풍경을 보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마침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던 건 큰 행운이다.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 유일의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완전히 물이 빠진 뒤였다. 모래사장이 바닷가에 좁은 띠를 형성하고 있다. 바닷물은 보이지 않고 갯벌만 끝 간 데 없이 바라다 보일 뿐이다. 뻘을 적실 물은 있어도, 몸을 담글 물이 없다. 그런데도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닷가 송림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닷바람이 무척 서늘하다. 더위를 충분히 식히고도 남는다. 이럴 땐 바다에 들어섰다 뻘 범벅이 되느니, 차라리 바람으로 멱을 감는 게 더 깔끔하고 시원할 수도 있겠다.

 

강화도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섬이 둘이다. 동감도와 황산도로 모두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둘 다 무척 작은 섬이다. 동검도에는 자전거 타기 좋은 해안도로가 있다. 마을 중간 안쪽 길을 지나 서쪽 해안으로 내려가면 된다. 동검도에서는 어떤 길이든 남쪽 끝으로 내려가지 않는 게 좋다. 막다른 길인 데다 언덕이 높고 가팔라 되돌아 나오는 데 무척 힘이 든다.


동검도보다 더 작은 황산도는 섬 전체가 음식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 활어회마을이 형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들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난 서더리탕을 참 맛있게 먹었다.


강화도 동남쪽에 언덕이 꽤 많은 편이다. 황청리에서 외포리로 넘어가는 언덕이 비교적 길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동안 수고한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 선수선착장에서 선두리선착장까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다만 그냥 죽으라는 법이 없어서 고개가 높은 만큼 경치도 뛰어나다.


태그:#고인돌, #외포리, #창후리, #동막해수욕장, #동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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