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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씨, 안녕하신가요? <오마이뉴스>는 13일 뗏목을 타고 당신의 편치않은 뱃속으로 들어가 청진기를 들이대려고 700리 뱃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첫날 내성천 회룡포를 지나 삼강주막에서 출발, 상주 경천대까지 내려온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뗏목이 파손돼 부득이하게 뭍으로 올라와 새로운 육상 여행을 시작합니다.

홍수예방, 수질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창자를 파헤치고, 농지리모델링이란 급조된 명분을 내세워 비옥한 땅을 불모지로 만드는 4대강 사업. 당신의 장기를 파헤치는 공정이 30%정도 진행됐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살아있는, 그래서 살릴만한 가치가 충분한 당신의 '생얼'을 그대로 보여줄 예정입니다. 현장 상황은 실시간으로 트위터 등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며, 동영상 기사로도 송고됩니다. 시민기자와 누리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16일 오후 '4대강 사업'이 벌어지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먹이를 찾던 백로들이 굴삭기 작업을 피해 날아오르고 있다.
 16일 오후 '4대강 사업'이 벌어지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먹이를 찾던 백로들이 굴삭기 작업을 피해 날아오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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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열린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준설작업으로 파헤쳐진 곳을 보며 "강은 흘러야한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부 수녀들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강은 흘러야 한다" 눈물의 노래 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열린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준설작업으로 파헤쳐진 곳을 보며 "강은 흘러야한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부 수녀들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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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이명박 대통령이 보면 뭐라고 할지 알아요? 노는 땅!"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노는 땅 '삼락둔치'라.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143만 평이라는 광활한 지역에 고작 습지 같은 생태보전지역, 친환경농법을 하는 농지, 운동장 같은 친수시설이 전부이니. 낙동강 옆이라 침수가 잦지만 도심에서 10분 거리의 나름 '금싸라기 땅'이다. 도로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면 여기에 아파트를 지으면 돈이 얼마라는 생각을 하고도 남겠다.

▲ [현장] 낙동강 삼락둔치 쫓겨나는 농민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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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락의 놀라운 변신... 멱살 잡혀도 "얘기 좀 합시다"

지난 13일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 시작한 낙동강 취재는 강물 따라 흘러흘러 16일 종착지에 다다랐다. 바로 삼락둔치. 세 가지 즐거움(맑은 바람, 저녁 노을, 딸기밭)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트럭이 농산물을 모조리 싣고 갈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 143만 평 삼락은 온통 비닐하우스 천지였다.

"2002년 국가하천도시구간정비사업을 했는데 그 대상이 삼락이었다. 어떻게 할지 이해당사자인 농민들과 NGO, 전문가, 부산시가 모였는데 완전 백지 상태였다. 처음에는 부산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이공원하자고 했다. 디즈니랜드 같은."

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
 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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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의 회고다. 환경단체는 비닐하우스 철거, 농지 축소, 친환경농법을 주장했다. 환경단체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지만 농민들 생각은 달랐다. 

"비닐하우스 없애는 건 농민들도 수긍했다. 그런데 계획을 짜면서 농지가 140만평에서 24만평으로 줄었다. 이렇게 되니 농민들은 농사라도 편하게 짓게 해달라고 했다. 길에 시멘트 포장을 해 달라, 기계들이 갈 수 있게 폭을 넓혀 달라… 안 된다고 했다. 농민들이 사무실 와서 농성하고 점거하고 멱살도 잡았다. 그러다가 결국 농민들이 양보했다. 나중에 도장 찍고 소주 한잔하면서 풀었다."

이 처장은 "공사보다 논의 기간이 더 길었다"고 말했다. 부산시, 부산발전연구원, 민간자문위원, 시민단체, 농민들이 모여 회의만 30여 차례 했다. 보고회와 워크숍도 5회 이상 했다.

땅은 있는데 씨가 안 섰다... 자갈밭을 일군 농민

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둔치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사진이 '우리는 이땅이 지켜지길 소원합니다'는 글과 함께 걸려 있다.
 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둔치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사진이 '우리는 이땅이 지켜지길 소원합니다'는 글과 함께 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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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여성농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여성농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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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농민들이 다시 삼락으로 돌아온 게 2006년. 4년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걸렸다. 농지 24만 평, 친수시설 19만 평, 생태보전지역 100만 평. 이렇게 143만 평의 삼락둔치를 정비하는 데 들어간 돈은 510억 원. 돈도 돈이지만 이후 농민들의 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자갈땅이었다. 여기 들어온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땅고르기만 했다. 자갈 고르고 퇴비 뿌리고. 또 부산시가 미리 농지정리를 해줬는데 엉망이었다. 폐기물 매립하고… 땅은 있는데 씨가 안 섰다. 골병 들었다."

정성철 부산농민회 사무차장은 비닐하우스 단지 때부터 삼락에서 농사를 지었다. 농사에 잔뼈가 굵은 그에게도 이곳에 터를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환경단체는 자재 같은 것도 못 쓰게 하고 최소한의 시설도 못 짓게 했다. 농약을 쓰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삼락을 서서히 바꿔 놨다. 1년 정도 지나자 강 주변 생태보전지역이 자리를 잡았고, 2년이 지나자 자갈투성이 농지도 지력을 회복했다. 부산 지역 엽채류의 30~40%를 삼락둔치가 공급할 정도가 됐다.

또 생태보전지역에는 멸종위기 1급인 큰고니와 큰기러기, 2급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었다. 국내 최대 맹꽁이 서식처라는 명성도 얻게 됐다. 2008년 조사에서는 비오톱 1등급, 생물종 다양성-생물서식조건 1등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너무 훌륭했다. 다들 삼락둔치를 왜 전국적으로 홍보 못하느냐고 했다. 수질도 맑아지고 주민들도 자연과 친해지고 농민들도 친환경농법을 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됐다. 여기처럼 넓은 둔치가 전국에 많지 않아 전파할 기회가 없었다."

이 처장이 자랑스러워하는 삼락둔치는 머지않아 사라진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낙동강폭을 500m로 늘리면서 생태보전지역은 물론이고 농지까지 포함된 것. 

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소밭 부근에서 굴삭기가 땅을 파헤치고 있다.
 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소밭 부근에서 굴삭기가 땅을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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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농민들... 이젠 강원도 산골로 이사할까요?

하원오 부산농민회 회장.
 하원오 부산농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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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다시 들어올 때 농지 줄이고 친환경농법 하는 대신 우리 때까지는 농사를 짓게 해주겠다고 부산시가 약속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하니 도로 내놓으라는 거다. 부산시에 하소연해봤지만 국가에서 하는 일이니까 모른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다."

하원오 부산농민회 회장은 '땅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한다'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삼락둔치의 농민들은 7월 5일부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정성철 부산농민회 사무차장은 "외로운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9월 2일로 농성을 접었다. 부산시가 강제집행을 예고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삼락을 떠나는 농민들 손에 쥐어지는 돈은 보상금 평당 1만2500원에 위로금 5000원을 더해 평당 1만 7500원.

"한 3000평 농사지었는데 농협에 1000만 원 빚 있다. 그거 갚고 나면 3000만 원 정도 남는데 기계 값 같은 장기 외상 털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하원오 부산농민회 회장)
"1420평에서 농사를 지었다. 보상금이 2000만 원 조금 넘는다. 이 돈으로는 강원도 산골을 가든지 저 전라도 아래쪽에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곳도 평당 2만 원이다." (정성철 부산농민회 사무차장)

삼락둔치에서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70명 남짓. 그 중 2000평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23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이곳에는 '부산 삼락둔치 4대강 사업 준설토 적치장'이 들어선다. 하 회장은 4대강 사업이 끝난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확실히 정해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무얼 할 건지 뚜렷한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청소년 야영장 몇 개 만들겠다, 이 정도다. 친환경이라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쫓아내겠다? 그게 이해가 안 된다."

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16일 오후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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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공들인 환경복원, 밀어내는 데는 고작 한달

지금의 삼락둔치를 정비하는 데만 4년이라는 시간과 51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로 돌리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삼락둔치 정비 때는 사회적 소통이 있었다. 특히 이해당사자들끼리. 마지막까지 갈등이 있었지만 잘 극복해 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는 소통이 없다. 지역 특성에 맞게 자율권을 줘야 한다. 그런데 신성불가침 영역 '깊이 6m, 폭 500m, 보', 이거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 서로가 어려워지는 거다." (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

지난 13일 굴착기가 들어왔다. 지금 삼락둔치에는 황망한 얼굴로 서성이는 늙은 농부와 굴착기에도 아랑곳 않고 날아드는 백로떼들이 있다. 생태보전지역은 물론 농지까지 밀어내는 데는 한 달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한다.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둔치에서 열리고 있다.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16일 오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둔치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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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락둔치에서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는 가운데 인부들이 '낙동강살리기 3공구 출입금지' 안내판을 설치하고 있다.
 삼락둔치에서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농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는 가운데 인부들이 '낙동강살리기 3공구 출입금지' 안내판을 설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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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촐한 미사가 열렸다. 이른바 4대강 사업 중단 삼락둔치 수변노지 보존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 가톨릭 신부의 집전 아래 교인들과 수녀들이 참석해 삼락둔치의 안위를 염려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미사에 함께 하지 않았다.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물끄러미 쳐다보며 담배만 피우다가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버럭 소리를 낸다.

"다 죽어 가는데 이제 와 지켜주면 뭐 하노."

농꾼은 땅이 없이는 살 수 없다. 땅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농꾼은 떠나고 굴착기 소리만 가득한 삼락둔치. 먼 훗날 삼락둔치는, 그리고 낙동강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말할 것이다. 다 죽어가는데 이제 와서 지켜준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 '낙동강은 강이다' 특별취재팀(트위터 해시태그 : #낙동강은강이다_)
취재 : 김병기 국장, 김경년 부장, 박순옥-최지용 기자
사진 : 권우성 팀장
동영상 : 박정호-오대양 기자


태그:#4대강, #삼락둔치,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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