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우긴 했지만 도저히 어르신으로 대접할 수 없는 '꼰대 노인'들도 더러 있다. 지난 14일 오전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다가 그런 꼰대 노인들을 만났다.

이분들 처음엔 자기들끼리 큰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분들의 시선이 앞에 서 있던 20대 여성에게 꽂히더니 그 중 한 노인이 버럭 하며 한 마디 톡 쏘아 붙였다.

"어 이봐 아가씨 엉덩이에서 핸드폰 빠지겠어. 그러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요즘 젊은이들은 물자 귀한 줄을 몰라."

상황이 이쯤 되자 필자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아가씨의 엉덩이 쪽을 향하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길이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뒷주머니엔 노인이 목소리를 높여 지적한 바로 그 문제의 핸드폰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핸드폰이 당장 주머니에서 빠져나올 만큼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설령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고해도 옷이 워낙 꽉 조여서 즉시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가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졸지에 꾸지람을 당한 것이 무안했는지 잠시후 "네 죄송합니다"하며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그 노인이 불만이었던 것은 어쩌면 그녀의 핸드폰이 아니라 그녀의 짧은 반바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 정도였다. 

상황은 여기서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노인들의 거친 입담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대체 좋은 말을 귀담아 듣질 않아"하며 아가씨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화제가 정치로 옮겨 갔다.

"TV에서 노무현 김대중 나오면 꺼버린다"

"노무현 김대중 개### 나쁜 ##"
"난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노무현 김대중이만 나오면 꺼버려"
"노무현이가 65세 이상 일자리 다 없애 버려서 노인들은 일자리도 없어. 늙으면 다 굶어죽어야 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나 방금 전 젊은 여성에게 호통을 치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이 노인의 말을 요약해 보면 결국 '젊은 사람들이 두 분 좌파 대통령을 뽑아 놓는 바람에 나라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노인의 막말에 주위 사람들 얼굴도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노무현과 김대중의 지지자였던 필자도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노인도 특별히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는, 그로인해 피해의식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는 소시민에 불과할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런 몰지각한 노인들이 노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급추락 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마당에 노인에 대한 적개심까지 생긴다면 사회는 점점 더 척박해지지 않을까.


태그:#지하철 꼰대노인, #꼰대 노인, #경로사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