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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은 한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신경언어병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동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쳤으며 현재는 브라질에 체류 중입니다. 마또 그로수 연방대학병원의 열대의학연구소에서 열대 감염성 질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게 된 브라질의 공공의료체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단, 글의 모든 내용은 마또 그로수 주 기준임을 밝혀둡니다. [편집자말]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전염성 질환이 많은 브라질의 경우, 본인의 병 때문에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없는 엄마들을 위한 모유은행이 있습니다. 피를 헌혈하듯이, 엄마 젖을 기증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아픈 아이와 엄마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젖동냥'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에도 2007년 경부터 정부가 아닌 민간 병원 차원에서 시작된 모유은행들이 4개 있습니다만, 외부 지원이 없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유 기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기증량이 턱없이 모자라고, 수혜자에게 실비 차원의 돈(180cc 당 3000원)을 받는 것에 대한 기증자들의 불만이 많아 원활히 운영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유은행 주립 연방대학 병원 내에 있습니다.
▲ 모유은행 주립 연방대학 병원 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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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브라질 마또 그로수에는 3개의 모유은행이 있습니다. 마또 그로수 주가 가장 인구수가 적은 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모유은행 개수도 많지 않습니다만, 바로 옆의 주만 해도 7개의 모유은행이 있다고 합니다. 꾸이아바 시내의 주립 연방대학, Hospital Santa Helena(국립), Hospital Femina(사립) 각각에 모유은행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모유은행 역시 SUS로 운영되는 시설로, 2004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연방대 병원에 있는 모유은행이 나머지 두 곳에서 기증되는 모유를 수집하고, 검사 및 살균처리를 하고 꾸이아바 시내에 있는 각 병원의 수요대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기증된 모유의 양이 아주 많지는 않기 때문에, 주로 저체중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증된 엄마 젖이 쓰여집니다. 모유를 기증받는 가정에서 비용을 부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SUS('O Sistema Único de Saúde)에서 운영하는 모유은행은 필요한 아기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직접 찾아와서 젖을 기증하기도 하지만, 대개 모유기증이 가능한 엄마들은 아기들과 함께 있어서 이동이 불편합니다. 이런 엄마들을 위해 해당 기관의 간호조무사가 직접 집에 찾아갑니다. 먼저 전화로 예약을 해놓으면, 기증자에 대한 스크리닝 테스트를 실시하고 기증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살균처리된 집유통과 유축기를 들고 가서 설명 한 후 일주일마다 냉장고에 모인 모유를 수거해 오는 방식으로 기증이 이루어집니다. 모유 은행 당 상근하는 직원은 간호사 1명, 간호조무사 3명입니다.

이렇게 모인 모유들은 먼저 검사를 통해, 아기들에게 해로운 미생물이 있는지를 보고 폐기처분할 모유를 구분한 후에, 저온살균(Pasteurization) 처리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게 됩니다.

모유은행 아이에게 먹이면 안 되는 미생물이 있는지 검사하고, 폐기처분할 모유를 구별합니다.
▲ 모유은행 아이에게 먹이면 안 되는 미생물이 있는지 검사하고, 폐기처분할 모유를 구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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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은행 저온살균(Pasteurization)을 하는 곳입니다.
▲ 모유은행 저온살균(Pasteurization)을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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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모유의 종류는 C형(7일 이내의 젖), T형(7일- 14일 이내), M형(14일 이후-)의 3가지로 나뉘고, 기증된 모유당 칼로리도 계산해서 차트에 기록됩니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아기에게 어떤 젖을 먹일 것인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공급하게 됩니다. 높은 혹은 낮은 칼로리의 젖, 하루 당 몇 밀리리터 이런 식으로 아이 한 명 당 '모유' 처방전이 작성됩니다.

이렇게 하루당 소비되는 엄마 젖은 수요가 적을 때는 500~600㎖, 많을 때는 1500㎖ 정도입니다. 아기 한 명에게 하루에 공급되는 양은 2㎖ 에서 42㎖ 이구요. 보통 면역력이 약한 저체중 미숙아들을 위한 목적으로 기증된 모유가 쓰여지니까, 예를 들어 800g 체중의 아기에게 필요한 모유의 양은 1㎖를 2시간 간격으로, 하루 총 12㎖가 필요한 셈이거든요.

이렇게 아기의 상태가 호전되고 먹는 모유의 양이 점차 늘어나면 하루 최대 42㎖까지 공급하다가 조제된 분유로 바꿔 먹이게 됩니다. 그리고 한 아기 당 하루에 총 소비하는 양을 모유은행에서도 차트에 기록해 놓습니다.  

모유은행 기증자별 모유의 타입(C, T, M 형)과 기증된 젖의 칼로리가 계산되어 있습니다.
▲ 모유은행 기증자별 모유의 타입(C, T, M 형)과 기증된 젖의 칼로리가 계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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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러나라서 모유은행 성공적으로 운영

그러나 아직도 수요만큼 기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이곳 담당 간호사인 마릴레니는 안타까워했습니다. 모유 기증에 대한 필요나 인식의 부족이라기 보다는, 교육 수준이 낮은 빈민층과 십대의 출산비율이 높고, 모유 수유로 인한 감염 가능성이 있는 임산부(예를들면, 에이즈 환자)들이 많다 보니 필요한 만큼 기증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모유은행 살균처리가 끝나고 냉동보관된 모유들.
▲ 모유은행 살균처리가 끝나고 냉동보관된 모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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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자료 기준으로 브라질은 22개의 주에서 120개의 모유은행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마또 그로수 주의 모유은행이 2004년에 처음 생겼다는 걸 고려하면 10년이 지난 현재는 거의 26개 주 전체에 모유은행이 세워진 셈입니다. 이 모유은행들에서 한 해 약 6만 명의 엄마들이 10만 리터의 모유를 기증하고, 8만 명의 아기들이 다른 엄마들의 젖을 얻어먹었습니다. 브라질 외에도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모유은행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나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Banco de Leche Materno라는 이름으로 남의 아이들에게 젖을 물립니다. 북미에서도 Human Milk Banking Association of North America(HMBANA)라고 하는 모유은행 연합이 있어 미숙아 등에게 필요한 모유를 기증받고 있구요. 그 외에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모유은행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저체중 미숙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2008년 4.88%). 민간병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유은행이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모유 기증자나 수혜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가운데, 모유가 절실히 필요한 엄마들은 인터넷으로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냥, 어찌 됐든 엄마젖을 빨지 못하는 아픈 아기에게 남의 젖을 나눠 먹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WHO나 UNICEF에서도 말하듯이, 모유가 아기에겐 최선의 음식이지만, 만약 엄마 젖을 먹지 못할 경우 가장 좋은 대안은 다른 엄마의 젖이니까요.("The best food for a baby who cannot be breastfed is milk expressed from the mother's breast or from another healthy mother. The best food for any baby whose own mother's milk is not available is the breastmilk of another healthy mother" (UNICEF, p. 48). "Where it is not possible for the biological mother to breast feed, the first alternative, if available, should be the use of human milk from other sources. Human milk banks should be made available in appropriate situations" (Wight, 2001).)

사실 남미에서야 제일 잘 사는 나라이지만, 월드컵 때만 유명해지는 나라 브라질 얘기를 왜 계속 하는지 궁금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냥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 지구 반대편에 있어 사실 관심도 별로 없는 나라 브라질에서 어떤 특정한 부분에서만큼은 우리보다도 진보된 발상으로 만들어내고 운영하는 의료제도에 약간 놀랐습니다.

또 그 이면에 있는 민영의료보험의 그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심심하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의료민영화', 병원의 '영리법인' 이야기에 제 가슴이 답답합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요즘, 전체 인구의 상위 10%가 국가 전체 소득의 47%를 최하위 20%는 2.8%의 소득을 나눠갖는 브라질이 남 얘기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소득의 차이가 내가 입는 옷의 가격 뿐 아니라, 정작 아플 때 받게 되는 진료의 질을 결정하게 되는 그래서 살인적으로 비싼 민영의료보험을 가입하지 못하면 그저 정부에서 해주는 대로 턱 걸고 있어야 하는 슬픈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내 가족의 건강문제에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접근하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보건복지 문제에 대한 마지노선이 돼 버릴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대단한 무엇인가를 하지 않더라도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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