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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장관이 자신의 블로그(강금실의 서재)에 올린 사진(좌측부터 강금실 전 장관, 김영란 전 대법관, 조배숙 국회의원)
 강금실 전 장관이 자신의 블로그(강금실의 서재)에 올린 사진(좌측부터 강금실 전 장관, 김영란 전 대법관, 조배숙 국회의원)
ⓒ 강금실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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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과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인 강금실 전 장관 그리고 최초의 여성 검사인 조배숙 민주당 의원이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경기여고(63회)와 서울법대 동기동창들로 지난달 24일 6년 임기만료로 퇴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퇴임을 기념해 동창생들이 모여 식사 자리를 가진 것.

강금실 전 장관이 6일 자신의 블로그(강금실의 서재)에 올린 모임 사진을 보면 비슷한 스타일의 옷차림도 눈의 띄고, 특히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V를 그리며 포즈를 취한 것도 인상적이다.

고향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부산이고, 강금실 전 장관이 제주이고, 조배숙 의원이 전북 익산으로 서로 다르지만 1972년 나란히 당시 최고 명문여고인 경기여고에 입학했다.

1975년 고교졸업 후 나란히 서울대 법대에 합격해 다닐 적에는 서로 여고동창 사이인데다 법대 내에 여학생이 드물어 항상 붙어 다닐 정도로 절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시험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4학년 때인 1978년 가장 먼저 합격(사시20회)했고, 뒤이어 조배숙 의원이 사시 22회에, 강금실 전 장관이 사시 23회에 각각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대법관 퇴임한 김영란은 누구?

1981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김 전 대법관은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7월 당시 최종영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 제청돼 영예로운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40대이자 까마득한 후배인 김영란 부장판사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이름을 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당시 대법관으로 유력시되던 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사시 12회)과 맏언니 판사로 여성 최초라는 각종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영애 춘천지법원장(사시 13회)은 사표를 제출했다.

6년 임기의 대법관직을 수행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활동을 하지 않겠다.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공언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전관예우의 폐단'을 걱정했던 시민들에게는 안도의 마음이, 후배 법관들에게는 '아름다운 선배 법관'을 가졌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 것"이라며 경의를 표시하는 편지를 보냈고, 박찬종 변호사는 "대법관 지낸 변호사는 전관예우 덕에 3년 안에 100억 버는 법조재벌 된다"며 "(그럼에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김영란 대법관의) 포기 결단에 박수... 박수"라고 찬사를 보냈다.

김영란 대법관은 퇴임식에서도 "제가 경험한 대법관의 자리는 출세의 자리도 아니었고, 법관들의 승진자리도 아니었다"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거기에서 바람직한 최선의 길을 찾는 고뇌의 자리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 강금실은 누구?

강금실 전 장관은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수료 후 1983년 서울남부지원 판사로 사법부에 발을 내딛은 후 13년 동안 법복을 입었다.

특히 최초의 여성 형사단독 판사 기록을 갖고 있는 강 전 장관은 서슬 퍼런 5·6공 당시 불법시위 혐의로 체포돼 즉심에 회부된 대학생들을 줄줄이 석방한 것은 그의 상징처럼 회자되고 있다.

또 1993년 소장 판사들의 '사법개혁건의서'를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가 2000년 법무법인 지평을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취임한다. 여성이 로펌 대표변호사를 맡은 것은 강 전 장관이 최초이다.

또 2000년에는 여성 최초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부회장이 됐고, 특히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으로 깜짝 발탁돼 화제를 낳았다.

장관 취임 초기 검찰고위인사 문제로 인사파동을 겪는 과정에서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노무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서 똑 부러지는 언변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솔직하고 자유로운 언행과 톡톡 튀는 패션감각 등으로 팬카페가 생기고, 이른바 '강효리(강금실+이효리)'라는 애칭을 얻으며 스타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렸다.

2003년 8월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한국인 리더' 1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관 퇴임 후인 2004년 12월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인권대사에 임명돼 인권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 여성 최초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시 열린우리당의 낮은 정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72시간 유세를 강행하는 '정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현재는 법무법인 '원'의 구성원변호사로, 한국인권재단의 이사로 활동 중이다.

조배숙은 누구?

조배숙 민주당 의원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수료 후 1982년 국내 최초로 여성 검사로 임관했다. 4년간 검사 생활을 하다가 1986년 수원지법 판사로 자리를 옮겨 10년간 판사 생활을 했다.

1995년 변호사로 개업 후 6년 동안 여성변호사회장을 역임했고, 2001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16대 비례대표 승계)했다. 17대에는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당선됐고, 열린우리당 최고위원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8대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영란, #강금실, #조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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