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0년 8월 29일 서울 남산 옛 '통감 관저 터'에 경술국치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졌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실행위원회'에서 잘못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세웠다. 서울시는 표석 설치를 허가하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어서 국민 정서상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표석 제막 후 참가한 사람들은 '친일파 청산' 구호를 외쳤다. 국치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친일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를 굳이 들추어 공개하면 좋을 게 뭐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생각 차이 또한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신문 기사를 통해 본 1910년

 

1910년 8월 29일 <대한매일신보> 기사는 찾을 수 없다. 대한제국이 사라진 터에 '대한'이란 명칭을 단 신문은 더 이상 발행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맥 뿐인 국권마저도 일본에 넘겨주고 완전한 식민지 역사가 시작되었다. 국권 상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저항의 길을 걸었지만, 국권 상실에 앞장섰던 이들은 두둑한 은사금과 떵떵대며 살 수 있는 권력을 얻어 희희낙락했다.

 

국권이 상실되던 1910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대한매일신보>와 <경향신문>기사를 통해 생생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재명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이완용의 병실에 문병객이 차고 넘쳐 그가 입원했던 대한의원에서는 면회금지 조치를 내렸던 일, 이완용이 치료와 요양의 목적으로 온양에 머무를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온양 지방의 인력거꾼들의 수입이 급증했다는 일, 이재명 의사가 사형 판결을 받던 법정에서 나도 함께 죽겠다며 대성통곡을 하다 끌려 나간 방청객 이야기….

 

전문 역사학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탓일까, 기사 설명에 깊은 역사적 안목이나 통찰력이 뒷받침 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뽑아낸 기사들은 당시 사회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일본 말로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나오지만, 조선말로 부르면 굼벵이보다 더 느리게 나왔다던 사람 이야기,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국가를 통째로 일본에 가져다 바친 친일파들 주변에 송사리처럼 몰려들던 사람들 이야기 ….

 

"합천군 해인사 곳집에 대장경 원판 십오만 개가 있는데, 이 판은 희귀한 물건이요, 국가의 당당한 보배라. 인도와 중국, 일본의 박학한 교수들이 그 원판 있는 곳을 널리 구하던 바인데, 해인사 주승이 일인 좌등육석과 서로 의논하여 그 원판을 일본으로 운송하여 출판코자 하므로 당국에서 탐지하고 그 희귀한 물건이 혹 흩어질까 염려하여 경관 수 명이 급히 그 지방을 향해 갔다고 한다." - <1910년 오늘은>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그해 242일 기록 중

 

그 외에도 많다. 팔만대장경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실패한 일, 안중근 의사 변호를 꺼려하던 당시 변호사들, 장시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에게 새롭게 징수하던 장세를 둘러싼 갈등, 새로운 통감이 임명되자 어깨에 바람이 나서 덩실대고 살쾡이 같이 웃어대던 이완용, 조중응, 유길준, 송병준, 이용구 등등의 인물들 ….

 

2010년과 닮은 모습들

 

며칠 전 리영희 선생께서 요즘 현실이 경술국치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했다고 들었다. 평생을 당대 현실의 모순과 치열하게 맞섰던 분다운 말씀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 책 <1910년 오늘은>이 떠올랐다. 1910년과 현재의 닮은 모습을 책 속 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한국에 일어 어학의 풍조가 점점 높아져 일어학교는 별같이 벌여 있고 일어를 배우는 사람은 수풀같이 늘어만 간다. 이같이 일어 학교가 많고 일어를 배우는 자가 많은 것은 문명을 수입코자 함인가.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함인가. 물론 개중에는 정의를 세우고자 일어를 배우는 자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노예의 성질을 양성하는 학교요, 학생일 것이다." - 1910년 4월 10일 기사

 

이 기사에서 일어 대신 영어를 넣으면 요즘 세태와 꼭 닮았다. 우리는 '어륀지'를 외치지 않고 영어 공용어를 입 아프게 외치지 않더라도 너도나도 영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매달리고 또 매달린다. 영어학원은 별처럼 늘어나고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수풀같이 늘어만 간다.

 

"대개 오늘날의 서적을 저술하는 자가 저술한 교과서 중에 독립이니, 자유니, 외국이니, 충군이니 하는 정신과 영웅 열사의 사적을 한 마디도 기록치 못하였으니, 이런 교과서가 아무리 발행이 된들 어찌 국민의 정신을 고양시키며 기력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이것 또한 검정해주기를 주저하니 슬프다." (1910년 1월 11일 기사)

 

재작년 한국근현대사 금성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학교 현장에서 몸살을 앓았다. 멀쩡하게 검정 통과되어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던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 운운하며 법적 절차마저 무시한 채 수정을 강요했던 일이 있었다. 다행히 지난 2일 사법부에서 교과부의 교과서 수정 강요가 위법이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요즘 학교 현장에선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2011년 고교입학생)부터 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게 된다. 역사를 배우지 않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는 것이다. 굳이 역사 교과서를 통제하지 않아도 역사 수요자들이 저절로 감소하는 참 좋은 세상이 활짝 열렸다.

 

책을 읽다보면 며칠 전 리영희 선생의 말씀이 가시처럼 아프게 박혀온다.

덧붙이는 글 | 김흥식/서해문집/2010.8/12,500원


1910년 오늘은 -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그 해 242일 기록

김흥식 엮음, 서해문집(2010)


태그:#1910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