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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난리다. 경술국치 100년의 해라고. 그에 따른 특집 프로그램들도 줄을 잇는다.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우리가 일본에 강제적으로 병합된 수치스런 해였으니. 우리나라 땅도 수탈당하고, 이름과 말씨까지 빼앗기지 않았던가. 그러니 누군들 구한말의 치욕을 떠올리고 싶겠는가.

 

솔직히 그때 우리는 일본에 힘없이 졌다. 무엇보다도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청나라를 꺾은 일제가 그토록 당당한 이유도 그에 있었다. 하지만 동학농민들과 유생들도 들고 일어나지 않았던가. 뒤늦은 아관파천의 지략도 자주권 회복의 일환에 있지 않았던가. 무력이 없으면 외교적 지략이라도 발휘해야 했건만 그마저도 빈약했다.

 

진실과 미래,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에서 기획하고 김남수·윤종배·이제은·최병택·홍동현이 공동으로 엮어, 휴머니스트에서 펴낸 <100년 전의 한국사>는 왜 우리가 100년 전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새김질 하게 한다. 치욕스런 그 나날들로부터 또 다시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 이 땅의 미래 주역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건 뭘까? 갑신정변의 세력들이다. 그들은 갑오개혁과는 달리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의 주역이라 이 책은 평한다. 김옥균으로 대표되는 갑신정변 주체 세력들은 청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문벌을 폐지하고, 왕권을 제한하고, 인민평등권을 실현하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갑오개혁과 대동소이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일제의 내정간섭과는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고 못을 박는다.

 

"제2차 러일협약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일본 정부가 기다리던 한국병합의 '적당한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1910년 5월 30일 데라우치가 통감에 임명되면서 병합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했다. 데라우치는 내각서기관장, 법제국장관, 외무성 정무국장을 중심으로 '일한병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해 6월 3일 병합 이후 한국 통치에 대한 구체적인 시정방침을 결정했다. 7월 24일 서울에 부임한 데라우치는 이완용 총리대신에게 병합에 관한 각서를 교부하고 조약안에 관한 협상을 개시해 8월 22일 병합조약에 조인했다."(176쪽)

 

이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 경술국치가 바로 그 조약체결에 있었으니. 이에 순응한 조선인은 누구였나? 1905년 11월의 '을사늑약'에 동조한 을사5적에서부터, 1907년 7월의 '정미7조약'에 동조한 정미7적, 그리고 1910년 8월 '한국병합조약'에 동조한 경술9적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인터넷만 치면 금방 그들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때 그들이 엄청난 권력과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재산 다툼도 아직 진행형이라니, 진정 낯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

 

이 책의 장점은 질문 문항들을 청소년들한테서 직접 가져 온 것들이란 점이다. 이어 역사학자들은 그 질문을 강제병합의 관점으로 써내려갔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의 목차에는 청소년과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를 통해 모은 질문을 짜임새 있게 적혀 있다. 제목만 봐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 눈에 짚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 뭐랄까? 2%로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내용이 어렵지 않고, 질문도 연대별로 구성돼 있어서 좋긴 하지만 새로운 시선과 해석이 없다. 내용에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도표와 사진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경술국치를 겪은 치욕의 씨줄과 날줄을 엮으려는 의욕은 높이 살만하지만, 다른 근대사 책들과 차별화된 점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의 한국사 100년을 내다봐야 할게 있다면 뭘까? 미국은 옛 일본처럼 시시각각 우리를 옥죄고 있고, 일본은 경제회복을 위한 숨통을 고르고 있고, 중국은 미국에 대항할 만한 군사력을 준비하고 있고, 러시아도 쥐죽은 듯 그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때 100년 전의 한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자주권을 갖추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경제력과 군사력, 그것은 우리의 근간이 되는 항목이다. 거기에 북한과의 3단계 통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 외교적 지략이 바로 그것이다.

 

그걸 생각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하수인 노릇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외교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4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초석이요, 언제나 그건 유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경술국치 100년의 해에 깨닫는 역사인식이지 않을까?


100년 전의 한국사 - 미래 100년을 위해 과거 100년을 질문한다

김남수 외 엮음, 진실과미래.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기획, 이이화 감수, 휴머니스트(2010)


태그:#경술국치 100년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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