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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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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 침체로 정부가 DTI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했다. 아파트 담보로 전보다 빚을 많이 낼 수 있으니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다.

앞으로의 부동산 방향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전망도 쏟아진다. 나에게 아파트와 DTI는 듣고 싶지 않은 용어 중의 하나다. 아픈 기억에 머무를 수 없어 잊고 살자며 고쳐 잡은 마음을 다시 엉망으로 만든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면역력이 생겨 괜찮겠지 했지만 쉽지 않다. 만성이다. 현실이고 삶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나에게 잘못된 만남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다. 어찌 보면 '잘못된 만남'이라기보다는 '잘못한 만남'이 맞을 것 같다. 우연히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선택이라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다. 내 결정이기 때문에 운명적(?) 만남이기도 하다. 욕심과 판단 미스였다. 결국 60세가 되어서야 온전히 내 집이 될 아파트와의 인연 이야기를 풀어 본다.

'빚 없이 살자'의 종언... 아파트를 샀다

나는 원래 시골 출신이라 조금 우습지만 '빚 없이 살자'가 삶의 지표였다. 빚 내 농사 짓고 수확해서 빚 갚고... 악순환의 연속인 부모님의 빠듯한 삶에서 난 자유롭고 싶었다.

결혼 초기 반지하 신혼방을 선택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지금도 아내한테 미안하다). 열심히 맞벌이하면서 아이들 키웠다. 결혼 10년 동안 여섯 번을 이사했고, 이사에 지쳐 안착하고 싶을 즈음에 조그마한 아파트와 첫 인연을 맺었다.

2002년의 일이다. 그때는 잠실 재건축이 시작돼 전세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동산마다 전세가 동이나 마땅한 전세를 구할 수 없었다. 층수나 구조, 방향, 수리 정도 등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최상층인 25층에 전세가 나왔다는 부동산의 전화를 받고 밤 늦은 시간에 뛰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계약하려 하는데, 내 뒤로 집을 본 사람이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미 전에 살던 집 주인과 전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상태. 정말 그때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아저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전세를 구하려던 송파구 가락동의 24평짜리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괜한 오기까지 발동해 더했다. 거기에 이사 일정 때문에 살 수밖에 없었다. 가진 돈을 모두 모으니 그 아파트 값의 절반이 모자랐다.

그렇게 해서 '빚 없이 살자'는 삶의 지표가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것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말이다.

아내 월급은 빚털이에 올인... 그래도 고공행진에 "하하, 호호"         

대한민국 부동산의 상징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대한민국 부동산의 상징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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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아내의 월급은 빚 갚는 데 쓰고 내 월급은 생활비로 쓰는 생활이 시작됐다. 아파트에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해야 하나? 속내는 쓰렸지만 그래도 내 아파트를 장만했으니 뿌듯한 마음도 교차했다. 아파트는 우리 가족한테 꿈과 같았다. 가정이 완성된 것과 같은. 그것도 모자랄 때는 "맞벌이에 딸 둘을 키우니 안전하니 됐어"라는 자기 위안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파트, 아파트 이야기만 나왔다. 얼마가 올랐느니, 재건축이 어떠니, 청약통장이 어떠니...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우리 아파트 시세를 보니 6개월 만에 많이 올랐다. 그리고 또 오르고...

아파트가 아니라 주식 시세판 같았다. 매주 주식 시세판 보듯 아파트 시세를 보며 "하하, 호호" 쾌재를 불렀다. 이자가 불어나는 것은 생각도 안 했다. 빚은 빚이 아니라 투자였다는 새로운 경제관(?)까지 생겼다. 거기에다 알 수 없는 배짱까지...

날개 단 아파트 값... 한 시간마다 올랐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빚은 제자리인 데다가 우리 아파트만 오르는 것도 아니고 갈 길만 더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커가고 방 하나가 더 필요해지니 흔히 '갈아타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큰 아파트를 보니 그 아파트는 더 올랐다. 갈아타기만 더 힘들어졌다. 당시 소형은 인기가 없었고 중대형이 날개를 달고 올랐다. 상대적 소외감까지 들었다. 소형은 잘 나가지도 않았다. 빚에 더 큰 빚을 내야 하는 상황. 과감하게 결단(?)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쉽지 않아, 아파트를 보고도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중간에 두 번 정도 하락기가 있었다).

2006년 가을로 기억된다. 애들 때문에 조금 큰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고민 끝에 일단 집을 내놓았다. 지금 갈아타지 않으면 영영 갈아탈 수 없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부동산에서 오랜만에 매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갈 만한 곳은 더 오르고 해서, 일단 기다리려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할 수 없었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 결국 부동산의 전화 설득에 계약서를 썼다. 그때 아파트값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건교부 장관이 신도시 건설로 아파트 고공행진을 잡아보겠다고 공언하던 시점이었다. 판교 분양에서 떨어진 실수요자들까지 가세했다.

매매 계약 다음날부터 집을 알아보는데,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마다 가격이 오를 만큼 급등세 시점이었다. 집을 팔았으니 살 집은 찾아야 하고... 암담했다. '팔고 사라'는 전문가들의 '룰'을 따랐다. 살 집을 보고 바로 내려와 부동산에서 계약서 쓰려고 기다리는데 집주인이 그 사이 2천만 원을 올려 달라고 해 접기도 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리집은 더블 딥... 월급이 오르지 않는 한 회복 불가능

이판사판. 빨리 구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지금 살고 있는 오금동의 31평 아파트에 가서 급하게 계약서를 썼다. 앞으로 지하철 연장선이 개통되면 '더블 역세권'이 되고 공원도 가까워 오를 일만 있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강추'도 한 몫 했다. 지금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 아저씨는 요즘도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피하지만 내가 가서 인사한다. 내 결정인 것을 아저씨 잘못은 아니다.

DTI에 따라 최대한 담보 대출을 하고도 모자라 나와 아내 신용대출을 추가로 해야 할 만큼 벅찬 금액이었다. 30년 상환으로 하고 싶었는데 20년밖에 안 됐다. 당시 2006년 말 건교부 장관이 아파트값 잡겠다고 신도시 발표를 했다. 하지만 신도시로 발표된 검단 신도시가 강남권을 대체할 수 없다는 시장 반응으로 오히려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뛰는 아파트 값에 이미 집은 팔았고 경황이 없는 데다 부화뇌동하면서 선택한 잘못이었다. 주머니 사정은 잊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무모함까지 거들었다. 일이 안 되려면 그렇듯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이사를 한 게 2006년 11월경의 일이었다. 아파트를 산 뒤 보름 정도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던 우리 아파트는 내가 산 가격에 2/3 수준까지 밀렸다가 지금도 내가 산 가격으로 돌아올 기미가 없다. 어차피 한 채. 올라도 팔 수 없고 내려도 팔 수 없는데, 팍팍 조여 오는 생활비는 그리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저축하는 재미 잊은 지 오래... 금융통화위 열리는 날엔 '콩당콩당'

2007년 초부터 정부의 연이은 대책으로 집값 거품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졌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2007년 초부터 정부의 연이은 대책으로 집값 거품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졌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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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때문에 "안 돼"가 많아졌다. 여행, 외식, 학원 모두 최소한의 범위에서 해결한다. 부부가 근처 공원을 저녁마다 한 바퀴 걷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애들이 커가면서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상당 부분을 인터넷 강의로 대체하고 있다.

돈 벌어 저축하는 재미도 잊은 지 오래다. 금융통화위원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금리 오를까 가슴이 쿵쾅쿵쾅~ 요즘은 '동결'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행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 아내에게 묻는다.

"이렇게 60까지 살아야 하는데, 사업해서 목돈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이고 살아야 하는데, 팔고 전세 갈까?"

아내는 아무 대답도 없다. 답을 듣자고 해서 묻는 말도 아니다. 답답해 혼자 독백하듯 떠들면서 60세의 우리 부부를 상상해본다. 지금 삶도 중요한데... 60세 이후를 생각해서 건강이나 챙겨야겠다. 그때는 다시 빚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아파트는 부부 공동 소유이지만, 공동 소유자가 또 하나 있는 것과 같다. 인심(?) 좋은 은행이다. 금리라도 올라가면 투잡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못 버티면 무모한 결정이 빚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부도 부동산 시장을 살리고 서민도 살려야 한다. 부동산 살리자고 서민을 빚의 구렁텅이로 유혹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잘못된 만남' 기사 응모글입니다.



태그:#아파트, #부동산, #인연, #삶,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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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쓰고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삶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스치는 사소한 삶에도 얼마다 깊고 따뜻한 의미가 있는지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는 이야기와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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