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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쟁쟁하다. 중국의 존재감이 전에 없이 커지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시점도 적절하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의 초안집필자이자 '화평굴기(和平掘起,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 제안자인 정비젠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네오콤'(neo-com, 중국판 네오콘)의 대표주자 옌쉐퉁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백악관의 심장을 꿰뚫은 사나이'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사회를 본 2004년 중국공산당 정치국 학습에서 각각 세계정치 구조와 세계경제 구조에 대해 강연한 친야칭 외교학원 상무부원장과 장위옌 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장, 대북강경파 장롄구이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중국의 최고 한반도전문가로 꼽히는 치바오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한반도연구실 주임, 전형적 도광양회(韜光養晦,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198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파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등 등 외교·안보분야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대표적인 학자 21명이 망라돼 있다.

 옌쉐퉁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과 대담하고 있는 문정인 교수.
 옌쉐퉁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과 대담하고 있는 문정인 교수.
ⓒ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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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59)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베이징대에 초빙교수로 나가 있던 지난해 하반기 이들과 대담한 내용을 모아,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2만원)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중국대학의 교수로 있는 한 한국인 인사는 "책 내용은 살펴봐야겠지만, 중국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정받는 인사들을 모은 것은 분명하다. 문 교수가 인맥을 자랑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국에선 드물게 '국제적 마당발'로 불린다. 남한의 학자와 관료 중 유일하게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석했던 그는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당시 북한 조문단의 방문과 이명박 대통령 면담 성사에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그는 연세대로 오기 전에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다보스포럼의 미래한국아젠다위원회 위원장, 중국 개혁개방포럼 국제고문,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소국, 중국은 대국... 한미동맹 강화한다고 한국을 두려워할 것 같나"

문 교수에 따르면, 그가 대담한 중국학자들 중 정계진출을 준비하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미리 원고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덕에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리커창 같은) 기술관료들은 자기들도 왜, 어떻게 지도자가 됐는지 잘 모르고 있다", "조화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중국지도부는 미국의 지도자들과 다르다"는 등 중국 지식인들의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인식과 각종 현안에 대한 속내가 상당히 드러나 있다. 사회통제 시스템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중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상, 중국이 한국을 정확히는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시종 한국의 자제를 강조하고, 7월 서해 한미연합훈련 때는 관영 <환구시보>등 중국언론이 '망령', '보복' 등의 격한 표현으로 한국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전략·가치 동맹을 강조하면서 중국으로부턴 경제적 이득만 챙기려는 것이 한국의 대중 외교목표인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의 저자 자칭궈 교수의 질문이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돈 벌 생각만 한다는 불만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치동맹'으로 올라간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은 대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가치동맹에는 냉전적 이데올로기 색채가 난다. 한국 내에서 이명박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은 아직도 이데올로기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가치동맹의 표적은 중국과 북한 아닌가? 중국은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올해 한국에 보인 태도를 예고한 듯하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한다고 (중국이) 한국을 두려워할 것 같은가, 이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솔직한 발언의 주인공은 중국 외교계의 대부로 불리는 첸지첸 전 부총리에 이어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이 된 왕지쓰다.

그는 "한국은 소국이고 중국이나 미국은 큰 나라다. 어떻게 작은 나라가 중국이나 미국 같은 대국을 이간질해서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도 한다.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한국은 소국, 중국은 대국'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동맹의 한계를 규정하는 말도 나온다. 주펑 베이징대 교수는 "한국이 미일 주도의 MD(역내미사일방어체제)에 가입한다면 중국은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다. MD는 한중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북한에 대한 태도도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냈다. 북한(김일성종합대)과 남한(통일연구원, 세종연구원)에서 모두 연구한 경험이 있는 치바오량 중국현대국제관계원 한반도연구원 주임은 "비핵목표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 정확히는 북한 붕괴 방지 중 한반도 안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장샤오밍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북한 핵무기가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할 수 있다"고도 했다.

"대북관계 악화되면 중국 레버리지 없어져"

<중국의 내일을 묻다>
 <중국의 내일을 묻다>
ⓒ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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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중국이 한국처럼 북한과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중국의 우세가 어디에 있나. 우리도 한국이나 다를 바 없게 된다. 대북관계가 악화된다면 중국은 더 이상의 레버리지가 없어진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은 북한이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많은 대북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동포애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급변사태, 즉 '김정일 체제 붕괴론'에 대해서는 대북강경파인 장롄구이 교수도 고개를 내젓는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정치·경제·무력 제재를 동시 또는 점진적으로 가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붕괴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보고 북핵문제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충고한다.

GDP(국내총생산)에서 일본을 누르고 세계경제 2인자로 올라 G-2시대를 더욱 명확히 한 중국은 어떤 세계전략을 구상하고 있을까. G-2시대라는 용어는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부담감과 함께 피할 수 없는 길이므로 적극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화평굴기'와 '대국굴기'(大國掘起, 큰 나라로 우뚝 선다)' 노선 사이에 선 중국의 고민이 읽힌다.

문 교수가 '당대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평가한 정비졘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은 자신이 주창한 '화평굴기'가 중국위협론과 붕괴론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제국적 야망을 가진 대국굴기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야칭 중국 국제관계학회 부회장은 "패권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로 같은 생각을 표현했다.

반면 '중국의 네오콘'인 네오콤으로 꼽히는 옌쉐퉁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중국의 선택은 '패도'(覇道)밖에 없으며, 중국이 대국으로 굴기하는 것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화평굴기와 대국굴기 사이에 서 있는 중국

그러나 화평굴기가 중국의 기본전략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적극적인 세계전략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진찬룽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 지도부가 '불출사'(不出事)의 자세, 즉 내부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두고 대외적으로는 사고예방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전망한다. 친야칭 중국 국제관계학회 부회장 역시 "중국이 대외적인 대전략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대외부분은 국내부분을 보완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13억 인구로 곱셈을 하면 중국의 국력은 세계적이지만, 13억으로 GDP를 나눠보면 국민 개인당 소득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문 교수는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봐야 한다'(以中國 親中國)고 강조한다. 미국이 '황화론'(黃禍論)을 강조하고 한국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내재적인 접근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많은 국가의 중국전문가나 언론인들은 중국을 '조금 나은 북한'(a better North Korea)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평가한다"는 친야칭 외교학원 상무부원장의 말을 전한다.

중국을 둘러싼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현대중국의 혁명적 문화, 전통중국 문화, 그리고 서구문화가 혼재해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어느 문화도 지배적 지위를 갖지는 못할 것이고, 이 세 개의 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미래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갈 것이다"(친야칭 부원장)라는 대목이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력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뤄내고 다시 자본주의를 전면 수용해 '성공'하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길을 가고 있는 중국의 고민과 변화상을 짚을 수 있는 유용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태그:#문정인, #중국, #화평굴기, #대국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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