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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8일 찾아간 대천 해수욕장.
 8월 18일 찾아간 대천 해수욕장.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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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세상을 달달 볶은 8월 중순, <오마이뉴스> 편집부로부터 난데없는 기사 청탁 하나를 받았다. 대천 해수욕장에서 '자리' 대여 아르바이트를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기삿거리를 제공해준 성의는 고마웠지만, 이번 취재는 굳이 체험하지 않아도 고생길이 훤해 보였다. 그래서 '가만히 누워 있어도 더운 여름날, 웬 고생?'이라고 툴툴 거리며, 단번에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왜일까? 방 안에서 빵빵하게 에어컨을 켜고 눕는 순간, 대천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른거리는 것 아닌가! 젊음의 열기가 넘실거릴 바닷가를 생각하니 그게 또 은근히 고민이 되는 거였다. 머릿속에는 '나는야 바다의 왕자, 당신은 해변의 여인~♪'이라는 <바다의 왕자> 멜로디가 두둥실 떠올랐다. 이대로 푸른 바다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18일 오전 기차를 타고 충동적으로 대천에 당도한 순간,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태풍 뎬무가 지나간 해변엔 뉴스에서 보았던 구름 인파도, 비키니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들도 없었다. 성수기의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수욕장은 '휑~'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그저 막바지 피서를 즐기려는 지각 피서객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대천 해수욕장 12구역, '청춘' 해변에 가다

 대천 해수욕장 '청춘' 가게
 대천 해수욕장 '청춘' 가게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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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30℃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더웠다. 제대로 체험하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왔던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왕 온 거,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굳은 다짐을 하고 왔기에, 결국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오늘의 체험 장소를 찾아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48개 구역으로 나뉜 3.5km의 길고 아름다운 대천 해수욕장 중에 12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일명 '청춘' 해변이었다.

이곳이 청춘 해변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는 이 12구역에 '청춘'이라는 자리 대여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엔 파라솔부터 평상, 튜브, 의자, 빗자루, 아이스박스, 사물 보관함까지 온갖 물품이 갖춰져 있었다.

 김효원(25, 오른쪽), 이종인(25)씨
 김효원(25, 오른쪽), 이종인(25)씨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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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오아시스처럼 보인 이 '청춘가게' 안에는 중년의 남성과 '몸짱' 청년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이 가게의 주인인 박성무(52·12구역장)씨와 40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효원(25), 이종인(25)씨였다.

해변을 벗 삼아 앉아 있는 이들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바다남자'들의 기가 느껴졌지만, 태연스레 다가가 친한 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튜브 대여일 체험하러 온 곽진성입니다."
"네, 그런데 성수기가 지나서 체험거리가 별로 없네요. 성수기 때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곳 대천이 고향이라는 박씨는 벌써 40년이나 대천 바다에서 이 일을 한 왕고참이었다. 계산해 보면 12살 때부터 일을 한 셈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그런 대천 해수욕장의 왕고참 박씨는 성수기 때의 밀물 인파가 그리운 모양이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오늘 사람이 적은 것을 아쉬워했다.

"해수욕장에서 대여 일을 하는 것은 두달이란 기간 동안 햇볕과 싸움을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피서 막바지에 날씨가 좋지 않네요. 성수기 때 대천 해변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얼마 전에 태풍이 오고, 피서의 끝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사람이 적네요."

무엇인가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갈 줄 알았던 대여 가게의 일상, 하지만 태풍이 지난간 뒤라 그런지 피서객은 적었고 가게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10분, 20분, 30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손님 대신 졸음만이 밀려온다. 어느새 박씨마저 평상에 누워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운동권에 '몸짱', 범상치 않은 알바생 2명

 청춘가게의 박성무(52.12구역장)씨
 청춘가게의 박성무(52.12구역장)씨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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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해에 '죠스'라도 나타날까, 바다만 뚫어져라 바다보고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체험이고 뭐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생 김효원, 이종인씨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해변 아르바이트를 찾았는데, 재밌을 것 같은 마음에 해보았습니다. 막상 해보니 성수기 때는 쉴 틈 없이 바쁘고 사람이 없을 때는 심심해서 힘든 아르바이트였지만, 마음껏 바다도 보고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대천 지역에 사는 젊은이겠거니 했던 두 사람. 알고 보니 부천에서 해변 아르바이트를 하러 40일 동안 내려와 있는 거라고 했다. 더욱이 두 사람은 골프며 태권도 등 대학에서 운동을 전공하는 운동권(?) 젊은이, 게다가 '몸짱'. 범상치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 이번 아르바이트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뜨거운 태양과 싸우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춘가게 주인인 박씨네 집에서 40여 일간 숙식을 했다는 두 사람은 이틀 후면,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해변 아르바이트는 비오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일이 없으니까요. 다만 며칠 전에 태풍이 불었을 때는 해일에 다른 가게들이 날아가서 정신이 없었어요. 다행히(?) 저희는 새벽 3시에 나와 일을 해서 피해가 없었죠. 물론 당시엔 죽을 맛이었지만요.(웃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잘 마치고 이번 주에 집에 가네요."

그렇기에 '말년 병장'티를 내며, 대충 일해도 되건만 두 사람은 자신의 아르바이트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성실한 몸짱 청년들의 모습은 지나가던 피서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평상은 O만 원, 파라솔은 O만 원' 등 저마다의 가격에 맞게 피서객들을 청춘 해변으로 끌어오는 두 남자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지나가던 40~50대 주부들이 두 청년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아휴, 젊은이들, 몸 좋네. 사위 삼고 싶어!"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3시 넘자 다시 사람들로 북적

 파라솔을 세우는 이종인(25)씨.
 파라솔을 세우는 이종인(2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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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칭찬에 짧게 미소를 보인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꽂을 구멍을 파느라 여념이 없다. 물론, 한번 파 놓은 것으로 끝이 아니다. 햇볕의 방향에 따라 파라솔을 옮겨 심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지만,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웃옷을 훌러덩 벗어던진 채 땀을 즐기고 있었다. 이씨가 말한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을 해요.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하다 보면 일이 쉬워지잖아요. 지금은 익숙해서 편해요."

그들의 노력으로 완성된 것은 완벽한 파라솔 그늘이었다. 성수기 때에는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쪽방을 연상케 했지만 지금은 널찍하니 호텔 자리가 부럽지 않다. 두 젊은이가 땀으로 마련한 16개의 파라솔은 저마다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손님들을 자주 만나요. 자리를 만들고 있을 때, 고생한다면서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하고, 음식을 주시기도 하죠. 반면에 말을 건네도 대꾸도 안 하는 피서객들을 보면 조금 속이 상하기도 해요. 또 무작정 가격을 깎아달라는 사람을 보면 난감하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인생 경험인 것 같아요."

 손님들에게 튜브를 대여해주는 김효원(25)씨.
 손님들에게 튜브를 대여해주는 김효원(2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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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가게의 한 낮 풍경
 청춘가게의 한 낮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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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인파가 적었던 청춘 해변, 다행히 오후 3시를 넘어서자 점차 피서객이 늘어났다. 피서객들이 늘어날수록 능숙하게 자리를 팔고 튜브를 대여하는 두 젊은이의 수완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씨의 얼굴에서도 웃음꽃이 핀다. 어떤 사람에게는 '40번째 바다'이자,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경험', 그리고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피서지'가 되었을, 대천 해수욕장의 청춘 해변의 하루는 그런 뜨거운 열정 속에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천 해수욕장의 하루를 체험한 내게도 오늘의 고생(?)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죠스, 구름 인파는 없었지만 그보다 멋진, 바다 남자들의 '태양을 이기는 땀방울'을 보았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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