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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주에 있는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Candi Borobudur)와 힌두사원인 쁘람바난(Candi Prambanan, 1991년 유네스코 지정), 전통그림자 인형극인 와양(Wayang)과 전통검인 끄리스(Kris, 2003년), 올 10월 2일에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기업인 바띡(Batik)까지 인도네시아는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후보로 등록된 대나무로 만든 전통악기인 앙꿀룽(Angkulung)이라든가, 전통 가면인 또뼁(Topeng)을 사용한 또뼁춤처럼 인도네시아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준비 중인 문화유산들을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이다. 다만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인도네시아에 살지 않는 한 쉽게 접해 볼 기회가 없고,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도 학교 수업을 통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세계문화유산이 인도네시아에 있다. 바로 자바원인 발굴지이다. 이곳은 1995년에 후보로 등재된 후, 그 다음해에 곧바로 지역명에 따라 '상이란 원시인 유적지(Sangiran Early Man Site)'란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593호로 공포되었다.

세계문화유적지 상이란 박물관 주차장에 놓인 자바 원인 두상
▲ 상이란 박물관, 자바원인 세계문화유적지 상이란 박물관 주차장에 놓인 자바 원인 두상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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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95년부터 97년까지 상이란 원시인 유적지와 불과 2시간 거리에 살았다. 덕택에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한 뉴스도 심심찮게 들어봤었고, 그럴 때마다 상이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사를 피력할 때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은 "뭐하러? 볼 거 없어!"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굳이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볼 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상이란이라는 지역이 시골 깡촌이고, 볼 거라곤 고작해야 가구용 목재로 쓰이는 자띠(Jati, 티크목) 밖에 없다는 말로 동행을 거부하곤 했었다. 사실 상이란이 위치한 스라겐(Sragen) 지역엔 강 이름이 자띠인 곳도 있고, 마을 이름 자체가 자띠인 곳도 있다.

잎이 넓은 자띠나무가 박물관 주위에 조림돼 있다.
▲ 자띠나무-티크목 조림단지 잎이 넓은 자띠나무가 박물관 주위에 조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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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5년 동안 입맛만 다시고 찾지 못했던 '상이란 세계문화 유적지'를 올 여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족자카르타에서 봉고를 타고 두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은 세계문화유산 '상이란 박물관'이었다. 늘 들어왔던 자티 나무는 쓸만한 나무는 이미 상당수가 벌채가 되었는지 목재로 쓰기에는 아직은 작은 나무들만이 박물관 입구부터 주위에 가지런히 식재되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굴곡이 심한 시골 외길을 따라 들어선 박물관은 성벽처럼 높게 올린 출입문을 지나자, 달랑 승용차 한 대가 주차돼 있는 주차장이 나왔다.

어째 휑뎅그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한가로이 그늘에 앉아 문자를 보내고 있는 이에게 말을 걸어 박물관 입구를 물어보았다. 손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올라가자, 세계문화유산을 보관 중인 박물관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조도와 아무런 안내가 없다는 사실에 순간 당황했다. 관람객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큐레이터는커녕 안내나 경비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다.

방향을 묻기 위해 길바닥에 한가로이 앉아 문자를 보내는 학생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보니 블랙베리다.
▲ 길바닥에 앉아 문자 보내는 학생 방향을 묻기 위해 길바닥에 한가로이 앉아 문자를 보내는 학생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보니 블랙베리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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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황당했던 것은 입구로부터 제1관람실을 나오기까지 벽에 적힌 설명과 전시 중인 전시물품 앞에 적힌 글들을 읽고, 사진을 찍고 지나는데도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제1 관람실을 지나 제2 관람실로 가자, 공사중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고, 바로 옆에 경비인지 장사꾼인지 두 명이 책을 펴놓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먼저 방명록에 기명할 것을 요구하더니 '상이란 박물관'이라는 표제의 인도네시아어 소책자를 살 것을 권했다. 방명록을 통해 일본, 네델란드, 미국, 독일 등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왔다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몇 장을 한참 뒤적여 봤지만, 대한민국에서 왔다 갔다는 기록은 없었다.

방문인 성명과 함께 국적, 방문인원 등을 기재하고 있다.
▲ 방명록 방문인 성명과 함께 국적, 방문인원 등을 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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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기분에도 소책자를 한 권 사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며 지역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들은 세계문화유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여행객들에게 얼마간의 이윤이 남는지 모르지만, 소책자도 팔 수 있고, 비가 오면 땅에서 나오는 화석 조각들을 캐내서 팔수도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 정도였다. 이러한 입장은 책을 팔던 사람들이나 주차장 옆에서 자신들이 땅에서 캐낸 화석을 팔던 사람들이나 같은 입장이었다.

어찌됐든 소책자에는 상이란 박물관의 역사를 먼저 기록하고 있었는데, 박물관이 건립되기까지 상당 기간 동안 중앙정부에서 외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자에 의하면, 상이란 박물관은 독일의 진화인류학자인 본 케닉스발트(Von Koenigswald, 1902-1982)의 연구조사로부터 시작한다. 본 케닉스발트는 1930년대(35-39)에 인도네시아인 또또 마르소노(Toto Marsono)의 도움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또또는 매일 케닉스발트의 지시를 받고 상이란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화석뼈를 찾도록 했다. 그 결과 상이란 지역 주민들은 해당 분야에서 유의미한 화석이 된 많은 뼈들을 채굴했다고 한다.

직립원인까지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모형
▲ 진화과정 직립원인까지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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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케닉스발트가 상이란에서 연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오늘날 우리가 자바원인으로 알고 있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화석을 발견한 네델란드인 E.뒤부아의 발표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신기했던 것은 E. 뒤부아에 대한 언급이 박물관 소개 책자에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자바원인은 자바 섬에서 발견된 50만~100만 년 전인 '플레이스토세(홍적세)' 시기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으로 1891년 솔로강 유역에서 E. 뒤부아에 의하여 최초로 발견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1974년 최초로 박물관이 문을 열었을 때, 박물관 이름은 지질학 용어를 따서, '플레이스토세(홍적세) 박물관'이라고 명명되기도 했었다.

뒤보아는 자신이 발견한 두개골을 처음에는 원숭이(Pithekos)와 사람(antropos)의 중간인 직립원인이라는 뜻의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원인이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아종으로 분류되어 호모 에렉투스 에렉투스(Homo erectus erectus)라는 학명으로 불린다.

피테칸트로푸스 호모 에렉투스라고 쓰여 있고, 상이란 지역에서 70만 년 전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 상이란 지역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 복제품 피테칸트로푸스 호모 에렉투스라고 쓰여 있고, 상이란 지역에서 70만 년 전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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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39년까지 뒤보아가 화석을 발견했던 지역에서 화석 발굴 작업을 직접 했던 케닉스발트는, 오랜 시간 수많은 발굴 작업을 통해 "듀보아가 발견한 두 어금니는 오랑우탄의 것이며, 앞의 어금니와 대퇴골은 사람의 것이고, 치아는 원숭이의 것이다."라고 판정하고, "자바원인은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상이란 지역에서의 연구 활동을 접는다.

그 결과 채굴된 화석들 중 매우 중요한 화석들로 여겨져 본 케닉스발트의 연구실로 옮겨진 것을 뺀 나머지는 여전히 지역 마을회관에 쌓여 방치되게 된다. 그러나 연구진들이 귀국한 후에도 마을회관에는 더 많은 화석들이 쌓여갔고, 이것이 상이란 박물관이 태동된 배경이라고 한다.

그렇게 방치되던 화석들은 1983년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좀 더 규모가 큰 박물관이 건립되며, 박물관에 자리를 잡게 된다. 상이란 박물관은 현재 1만3898개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또한 화석들은 매해 우기 때마다 더해지고 있는데, 이는 상이란 지역 땅은 우기 때마다 침식을 일으키며, 땅 속 화석들을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물관에 있는 화석들은 인류 화석 외에 가축, 식물, 돌, 지층, 석기 시대 유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단, 자바원인이라는 말을 만든 E.뒤보아나 그의 발표를 검토하며 연구했던 본 케닉스발트가 유의미한 화석들을 자신들의 나라로 가져갔기 때문에, 현재 상이란 박물관에 보관된 8개 직립원인의 두개골은 모두 복제품들이다.

그런 이유인지, 진화론을 거부하는 이슬람의 종교적인 이유인지 몰라도, 상이란 박물관은 학계의 명명이 바뀐 지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바원인을 소개하는 두개골에 여전히 호모 에렉투스가 아닌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고 적힌 안내판을 게시하는 등, 박물관 운영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쉽게 알게 해 준다.

원인 두개골 복제품들
▲ 두개골 복제품 원인 두개골 복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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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분 동안 박물관을 돌아보고, 책을 팔고 화석을 파는 지역주민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외에는 15년을 벼르고 찾아간 장에서 건진 것이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배우기 시작할 때, 직접 찾아가 볼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장소를 직접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는 사실에 위안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방치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세계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오는 길목엔, 자띠 나무만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볼 거 없어. 자띠 밖에!"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태그:#자바원인, #인도네시아, #세계문화유산, #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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