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光郞)이라고 일본적인 이름으로 고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좀 더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 이광수 <창씨와 나> 매일신보 1940.02.20

'나는 천황의 신민,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라며 천황의 신하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이광수는 8·15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단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의 고백'이란 글로 자신의 친일행위가 민족을 위한 행위였노라 변명한다. '일제의 잔학한 통치 아래서 우리 민족의 고통과 피해를 줄일 방도를 찾은 것이 결국 친일행위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친일재산에서 역사를 배우다> 겉그림
 <친일재산에서 역사를 배우다> 겉그림
ⓒ 리북

관련사진보기

이광수의 이런 변명은 어처구니없게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민족개량주의(일제강점기, 힘이 없는 상태로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으로 민족성을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가 일제강점하 친일파 일반인들의 친일 논리가 된 것처럼 해방 후 친일파들의 변명이 되고 나아가 오늘날 뉴 라이트와 같은 보수 세력들의 친일 변명 논리가 되고 있다.

그들은 변명한(했)다. "일제의 탄압과 협박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협력했다. 겉으로만 친일을 했지 뒤로는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모두 다 독립운동을 지원하기위한 위장이었다. 일본이 주는 작위를 거절하면 후환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다. 공립보통학교 신설이나 보수에 재정을 지원했고, 흉년에 소작료를 받지 않는 등 지역사회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라고, 참으로 파렴치하고 비루한 변명이다.

그리고 주장한다. "경제성장만 이루었으면 친일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일본 육사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다"고.

이들의 이와 같은 궤변들은 한 시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을 넘어 역사 인식이 부족한 일부 대중들로부터 "쓸데없이 과거 일을 들추지 마라"와 같은 친일청산 반대논리와 "일본 놈들이 작정하고 죽이겠다는 데야 그 누군들 견딜 수 있었겠어? 아마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일본에 협력했을지도…" 따위와 같은 공감을 이끌기도 한다.

친일청산 반대의 논리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그럴 듯한 것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전쟁 범죄 등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여럿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도 나치 전범을 찾아내 형사처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아예 나치 청산을 과거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현재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문제로까지 보고 있다. 그리하여 친나치를 표방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병합된 기간은 7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오스트리아도 나치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6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나치 청산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친일 청산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물며 우리의 경우 해방이 된 뒤 60년 이상 사실상 친일청산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책속에서

<친일재산에서 역사를 배우다>(리북 펴냄)는 반민족친일행위의 대가이자 부끄러운 역사적 장물인 친일재산의 형성과 국가귀속에 이르기까지 친일과 친일 청산 관련 그간의 노력들과 논쟁들을 다룬다. 지난해 발간된 '친일인명사전'과 그 맥을 같이한다.

저자(엮은이)는 2006년 7월 13일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설치되어 4년간 친일재산을 조사하여 국가에 귀속시키는 업무를 수행한 후 지난 7월 12일에 해체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이 책은 위원회가 그간 수행한 것들을 일반인들이 읽기 쉽도록 엮은 것이다.

▲대표적인 친일파들은 누구누구? 그 행적들은? ▲송병준 후손 등 대표적인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찾기와 그 현황 및 반발 및 그 논리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및 경술구적 ▲친일의 대가로 받은 은사금이나 재산, 직위 등의 현황 ▲뉴라이트 그들의 되먹지 못한 친일논리 ▲친일을 위장한 여러 단체들과 그 활동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파렴치하고 비루한 변명과 뻔뻔한 주장 ▲친일청산 왜 해야만 하는가 ▲어떤 재산이 친일재산이며 어떻게 얼마나 찾았나? 등등.

한마디로 지금 반드시 친일 청산을 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와 함께 그간 우리사회에서 논의되고 노력해 온 친일 관련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지난해, 온갖 우여곡절 끝에 시민의 힘으로 발간할 수 있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 스토리'도 눈길을 끈다.(아래 박스 기사 참고)

"친일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제의 식민통치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친일을 한 대신에 일제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받았다. 친일재산이 바로 그것이다. 친일재산으로 이들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릴 때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 마지막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버리고 만주행 열차를 타고 일본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때 해외로 이주한 재러 재중 재일 동포의 이산 문제는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다." - 책속에서

역사를 말할 때 만약이란 가정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친일파의 도움이 없었다면 100년 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책을 통해 만나는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들은 '오히려 더 설쳤다'는 생각이 거듭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친일 청산을 지금 하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 친일 청산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할까. 친일 청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책은 이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그간 잘 알려진 친일파들은 물론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들의 행적까지 낱낱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부디 많아져 친일 청산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더 이상 설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한다. 아울러 이 책이 하루빨리 친일청산을 마무리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속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 스토리 중에서
'지난 연말, 대한민국의 국회에서 '친일파 인명사전'편찬사업의 예산전액을 삭감했다는 뉴스를 듣고, 분개하다 못해 너무 슬펐습니다. (…) 국가기관인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몰역사적인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남은 것은 살아있는 국민의 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올곧은 역사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나서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요? 마치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광화문을 뒤덮었듯이.'

이는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네티즌이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에 올린 댓글이다. 이 글이 올라가자마자 이에 호응하는 댓글이 줄을 잇기 시작했으며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열화와 같은 여론에 따라 '친일인명사전편찬 네티즌의 힘으로'라는 제목을 내걸고 국민모금운동을 시작하였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모금운동에 폭발적으로 참여하였다. 모금 시작 4일 만에 모금액이 1억원을 돌파하였으며 모금 시작 11일만인 1월 19일 국회에서 삭감된 예산액인 5억원을 달성하였다. 이후로도 모금은 이어져 8월 25일 기준으로 모두 3만 3천여 명이 참여하여 7억 5천만 원이 모금되었다.

국민모금운동 과정에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있었다. 1월 15일에는 행정자치부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모금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네티즌의 항의로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행자부 장관은 뒤늦게 공문 발송사실을 보고받고 자신도 성금을 보냈다면서 공문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국민모금운동의 절차상 문제는 1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모금허용안이 통과되어 해소할 수 있었다.

국민성금 모금운동은 모금액수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월 27일에는 MBC에서 '친일파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국민적 열기에 힘입어 친일인명사전 편찬과는 별도로 정부 차원의 친일청산 작업인「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었다. 이렇게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정부차원의 친일청산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친일청산 문제를 넘어서 과거사 전반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에서 전개해온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이 정부 차원의 괴거사 정리 사업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시민사회에서 괴거사 정리를 추진한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디고 할지라도 그리고 지난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다시금 들추어내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지라도 이를 이대로 덮고 넘어가서는 올바른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힘이 마침내 대한민국을 움직인 것이다. - 책속에서 

덧붙이는 글 | 친일재산에서 역사를 배우다|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엮은이)|리북|2010-06-30|값:13,000원



친일재산에서 역사를 배우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엮음, 리북(2010)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