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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와 저녁으로 해물스파게티를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몹시 느리게 걷는 습관 탓에 지하철 개찰구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멍하니 아래쪽을 주시하며 계단을 향해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몇 십여 미터 앞서가던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며 뒷걸음질로 걷고 있다.

'사창가' 맞은 편에 산다는 것

길음역 지하철 연결 통로 너머로는 아직 사창가가 존재한다
 길음역 지하철 연결 통로 너머로는 아직 사창가가 존재한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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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 남자의 손은 자신의 바지 지퍼로 내려가 있었고 급기야 자신의 그곳을 잡은 채 웃고 있다. 금테안경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는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자의 미소를 지었다. 살다보면 어떤 순간은 지나치게 충격적이어서 침착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나는 '사창가' 맞은 편에 살고 있다. 일명 미아리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골목이 시작하는 곳. 구서라벌 고등학교가 위치했던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주택가이다.
길음역을 이용하는 이곳 주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지하철 연결 통로를 지나야 한다. 유리막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1998년 종암경찰서장으로 취임해 대대적인 윤락행위 단속으로 주목을 받았던 전 김강자 서장을 기억한다. 2000년 1월,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청소년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불법 성매매업소를 단속하기 전까지 그 지하철 너머의 형광색 조명 빛은 밤마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8년 전, 난 이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이사를 왔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그곳이 집창촌이라는 사실을 이사 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생기고 단속이 강화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드러내지 않게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늦은 밤이나 새벽 집창촌 앞 도로에 불법 주차되어있는 차를 쉽게 볼 수 있으며, 그곳에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취객들이 모여드는 것이 현실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낮 집창촌 앞에서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방금 하차한 할아버지 손님이 그 연세에도 계속 이곳을 드나드는 이유가 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살다보면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얘기를 들어야 할 때도 있으며 술 취한 남자가 비정상적인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10만원을 주겠다며 말을 건네는 현실과도 마주쳐야 했다.

밤늦은 시각에 이곳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 상책이란 것을 안다. 아니, 어디든 밤늦은 시각에 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외출 후 늦은 시각에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 날도 있고 그런 날이면 다른 곳보다 좀 더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늦은 시각 지하철에서 내리면 뛰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어떤 때는 먼 길을 걷더라도 차가 다니는 큰 도로의 길로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다.

무용지물로 존재하는 성매매방지법

'청소년 출입금지구역'과 붙어있는 지하철 연결통로
 '청소년 출입금지구역'과 붙어있는 지하철 연결통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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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논란거리를 삼는다고 할지 모르겠다. 성범죄나 성매매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 나의 이야기가 사소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집창촌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성매매방지법이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집창촌 단속은 더 많은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풍선효과로 인해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범위가 주택단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단속을 피해 보이지 않는 더 많은 방법으로 성매매가 이루진다는 보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성매매방지법이 생기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암암리에 거래되는 성매매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인 분위기도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성매매에 관한한 풀리지 않은 많은 문제들 가운데 분명한 것은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인 집창촌이 주택가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 집 앞에만 없으면 된다는 식의 말이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주택가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엔 뭐가 있나요?

길음역 주위엔 입시종합학원이 있어 학생들의 출입도 잦은 편이다. 그곳을 지나는 중학교 1학년의 남학생이 한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은 질문의 글을 보면, 마음이 쓰다.

안녕하세요. 저는 중1 학생입니다. 제 학원이 길음역 주변에 있습니다. 그래서 길음역으로 많이 다닙니다. 그런데 길음역 주변에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라는 곳이 있더군요. 옛날엔 그 곳에 관해 별 생각 안했는데 요즘 들어 왜 모두 통행금지도 아니라 청소년만 통행금지 인가 궁금합니다. 그 곳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건가요?

앞으로 자라서 혼자 이곳을 지나치게 될 내 어린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성매매방지법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고 존재하는 성매매와 성범죄를 막기 위한 단계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태그:#성매매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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