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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이라고 쓰인 송시열의 글씨에요~!
 낙화암이라고 쓰인 송시열의 글씨에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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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뽁... 뽁... 뽁... 뽁... 총... 총... 총... 총...' 내가 걸을 때마다 뽁... 뽁... 소리를 내던 뽁뽁이 신발을 신고 찾았던 곳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무릎싸개도 하고 있었다. 아마 두세 살 쯤 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중학교 3학년이 돼서 다시 찾았다.

백제문화가 살아있는 부여 낙화암이다. 엄마께서는 뽁뽁이 신발을 신고 올랐던 낙화암을 이렇게 다시 찾으니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낙화암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어릴 적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을 뿐....

그 낙화암에 갔다. 백마강을 떠다니던 황포돛배를 타고서... 낙화암은 '백제가 무너지던 날(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충절과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이라고 입장권에 써있었다.

낙화암 해질무렵이에요~!!!
 낙화암 해질무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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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에서 삼천궁녀들이 떨어지는 장면이에요...
고란사 건물벽에 그려져 있었어요...
 낙화암에서 삼천궁녀들이 떨어지는 장면이에요... 고란사 건물벽에 그려져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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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은 절벽 위에 있었다. 그 절벽을 넝쿨식물이 감싸고 있어서 멋스럽게 보였다. 계단을 따라 낙화암으로 올라가는데 살구빛깔 노을이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다. 더 몽환적이고 멋진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 올라갈수록 다리 근육이 당겼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낙화암까지 먼 길도 아닌데 멀게만 느껴졌다. '왜 백제 궁녀들은 이런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가지고 우리를 힘들게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다가 내가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낙화암을 내 피로 물들일 것 같기도 했다. 낙화암 절벽에 아직도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말도 있던데... 혼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건 그만큼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마강에 노을이 비칠 때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어요.
예쁘죠?!?!
 백마강에 노을이 비칠 때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어요. 예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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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낙화암에 올라보니, 오르면서 흘린 땀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마강 줄기가 아름다웠다. 자줏빛 노을에 비단같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과 황포돛배가 어우러져 멋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적에게 쫓겨 생을 마감한 궁녀들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이런 멋진 곳에서 뛰어내려 조금은 위로가 되었겠지? 익어가는 저녁 노을과 살구빛깔로 물들어가는 비단결 같은 강물에...

낙화암의 저녁 노을을 보며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삼천 궁녀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낙화암으로 오르면서 원망했던 궁녀들이 이번에는 대단해 보였다. 애국심도 그렇고... 절개를 지키려는 마음도 그렇고...

낙화암에서 내려오는 길, 아빠가 황포돛배에서 흥얼거리시던 노래가 떠올랐다. '백마강 달밤에... 고란사의 종소리가...' 슬프면서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랫말이었다. 노을 지는 풍경도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멋졌다.

백마강에서 황포돛배를 타며 추억을 한컷 담았어요.
 백마강에서 황포돛배를 타며 추억을 한컷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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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배에 타서 지나가는 황포돛배를 찍었어요^^
 황포돛배에 타서 지나가는 황포돛배를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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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슬비 기자는 광주동신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태그:#낙화암, #부여, #고란사, #백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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