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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강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돌아 간다.
 '하회마을'은 강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돌아 간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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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8월 1일 브라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들은 '하회와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특히 하회마을에 대한 국내외 관광객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서 진행되는 보 건설과 준설 작업 등이 하회마을의 경관을 훼손시킬 경우, 세계유산에 등재되자마자 곧바로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낙동강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큰 S자를 그리며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가는 데서 이름이 붙은 하회(河回)마을은 낙동강의 최상류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회마을 경관 훼손될 경우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 우려

현재 유네스코는 세계유산목록에 오른 유산일지라도 유산을 훼손시키는 등 보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세계유산목록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일례로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역사와 자연환경 등을 감안하지 않고 관광사업을 위해 현대식 다리를 지었다는 이유로 지난 2009년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된 바 있다.

유네스코가 별도로 관리하는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
 유네스코가 별도로 관리하는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
ⓒ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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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네스코는 세계유산목록에 오른 유산 중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도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은 전쟁으로 파괴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미국의 '옐로 스톤 국립공원',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 등 2009년 7월 기준으로 모두 31점이 있다.

유네스코가 밝힌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따르면, 세계유산에 등재된 연도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곧바로 이름을 올린 안타까운 유산들이 꽤 있다.

페루의 '찬찬 고고유적지대(Chan Chan Archaeological Zone)'(1986년 세계유산목록 등재 및 위험목록 등재), 아프가니스탄의 '얌의 첨탑과 고고학적 유적(Minaret and Archaeological Remains of Jam)'(2002년), 이라크의 '아슈르(Ashur(Qal'at Sherqat))'(2003년), 이란의 '밤 지역과 문화경관(Bam and its Cultural Landscape)'(2004) 등은 힘겹게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로 그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도 이름이 오른 경우이다.

이라크 세계유산 '아슈르', 댐 사업으로 '위험에 처한 유산' 관리

이 중 이라크의 '아슈르'는 유네스코가 꼽은 대표적인 '위험에 처한 유산'이다. 다음은 '아슈르'에 대한 유네스코의 설명이다.

"고대 도시 아슈르는 북부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있으며, 천수 농업과 관개 농업의 경계 기점에 있다. 아슈르 도시의 기원은 BC 3천년으로 올라간다. BC 14세기부터 9세기까지 도시 국가와 무역 거점으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이자 앗시리아 왕조의 첫 수도였다. 또, 아슈르 신과 관련된 앗시리아인들의 종교 중심지이기도 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파괴했으나, 1~2세기 페르시아시대에 재건됐다.

이라크 전쟁 전 아슈르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당시 대규모 댐 사업으로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될 위협을 안고 있었다. 현 정부가 댐 사업을 중지했으나,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재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고 향후 댐 건설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올렸다."

'위험에 처한 유산'인 이라크의 '아슈르' 유적은 댐 건설로 인해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
 '위험에 처한 유산'인 이라크의 '아슈르' 유적은 댐 건설로 인해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
ⓒ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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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아슈르'가 특별한 것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티그리스강' 유역에 놓여 있다는 데 있다. 세계의 4대 문명 발상지인 이집트(나일강),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인더스강), 황하(황하강) 문명 등의 공통점은 모두 큰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데 있다.

한국도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4대강을 끼고 수천 년 간 역사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댐 사업으로 역사 유적이 훼손될 위험에 처한 이라크의 '아슈르'는 '4대강 사업'으로 주변 경관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하회마을'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하회마을은 위험에 처한 이라크의 '아슈르'를 참고해야

지난 3일 <경향신문>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하회마을 하류 4.5㎞ 지점에 '구담보'가 건설되면 하회마을의 수위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까지 건설돼 모래 유출량이 줄어 모래톱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보도했다.

"하회보를 없앴지만 그 아래 구담보로 인해 보 상류에 물이 정체될 수 있고 이 경우 백사장에 개흙이 쌓일 수 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

"4대강 사업을 하게 되면 하회마을처럼 물이 휘감는 마을형태(물도리동)와 모래톱은 대부분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역설적 상황."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구담보 건설로 상류 측에 미치는 수위 영향 범위가 2.2㎞에 불과해 보 건설지점에서 5.1㎞ 떨어진 하회마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하회마을은 내성천(낙동강 지류하천) 합류점보다 23.4㎞ 상류에 있어 하회마을 모래톱과 내성천은 전혀 별개"라고 밝혔다(<매일신문>).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 가치는 개발 가치 넘어서

전문가와 정부가 '하회마을'을 놓고 벌이는 이 같은 대립은 얼핏 보면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사소한 다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유산으로서 보존의 가치는 개발의 가치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World Heritage)'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1960년 이집트 정부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강의 상류에 '아스완하이댐'을 건설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의 학자들과 관련 인사들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한 세계적인 '누비아 유적'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았고, 결국 유네스코가 이를 옮겨 보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72년 11월 1일 제17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 참가한 각국의 대표자와 전문가들은 누비아 유적과 같은 소중한 인류의 유산이 인간의 부주의로 파괴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서로 돕기 위하여 '세계유산협약(The World Heritage Convention)'을 제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업은 이처럼 국가 간 협약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세계유산으로서 하회마을의 보존 가치가 개발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정부도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하회마을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시민단체와 문화재청 등의 지적에 따라, 4대강 사업에 포함됐던 하회마을 앞의 '하회보'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하회마을 주변은 세계유산에 등재됐음에도 현재 준설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강변 양쪽으로 자전거 도로도 건설할 예정이어서 경관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하회마을 아래쪽으로 '구담보'가 들어서고, 위쪽으로 '영주댐'이 세워지게 되면 낙동강의 흐름 자체에 변화가 생겨 모래톱 등 하회마을의 경관은 이래저래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세계유산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국내외 관련 전문가들의 폭넓은 참여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유산 하회마을'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회마을은 지난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린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세계유산목록에 오를 수 있었다. 오랜 과정에서 경상북도와 안동시, 문화재청, 국내 전문가들의 협조는 물론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와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등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치밀한 사전답사와 조사가 뒷받침되었다.

이렇듯, 하나의 세계유산은 유산이 처한 환경 등을 샅샅이 파헤쳐서 조사한 뒤 등재 이후 보존 관리 대책까지 꼼꼼하게 평가하고 나서야 등재를 결정한다. 세계유산이 세계적으로 그 등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세계적인 보편성과 함께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유성룡의 <징비록>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부근에서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부근에서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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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한 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냈던 유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병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뼈아픈 역사를 직접 겪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에 대한 쓰라린 반성으로 7년간의 기록을 직접 써서 후대에 <징비록(懲毖錄)>을 전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을 담고 있다.

'하회마을'은 4대강 사업에 마지막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부는 4대강을 무조건 파헤치고 막기 전에, 지자체와 주민, 국내외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을 듣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유네스코가 몇 년에 걸쳐 심사숙고하며 세계유산을 판단하는 것처럼.

지금 병산서원 앞에서는 준설 공사가 한창이다. 유성룡 선생이 이 4대강 사업을 보고 있다면 뭐라 말했을까. 애석하게도 <징비록>의 내용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役患)"는 '징비' 의미 그대로.


태그:#하회마을, #세계유산, #4대강 사업, #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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